영화 <하프> 리뷰
2015년 6월 26일,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미국이 모든 주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것. 1989년 덴마크가 처음으로 동성 연인의 동거를 법적으로 보호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성 21개국의 나라가 동성 결혼을 허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성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논쟁이 다시 한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된다. LGBT-L은 레즈비언(Lesbian), G는 게이(Gay), B는 양성애자(Bisexual), T는 트랜스젠더(Transgender)-로 일컬어지는 성 소주자들에 대한 인식과 생활환경 개선에 대한 움직임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역시 최근 들어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연예인 홍석천. 게이로 커밍아웃 한 이후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그가 이제는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조금씩 성 소수자에 대한 마음을 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 김세연 감독이 영화 <하프>를 통해 성 소수자들에 대한 적나라한 시선을 그려냈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어릴 적부터 자신이 여자라고 믿어 온 민아(안용준 분)는 민수라는 이름을 버리고 트랜스젠더 바에서 민아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옛 애인에게 구타를 당하는 직장 동료 유리(진혜경 분)를 구하려다 우연히 사람을 죽이고 만 민아. 살인죄로 기소당한 민아를 받아 주는 곳은 하나도 없고 민아를 변호하려는 변호사 기주(정유석 분) 역시 민아보다는 자신의 앞길을 먼저 걱정한다. 차가운 시선으로 민아를 동물원 원숭이 취급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슬픈 몸부림이 시작된다.
<대니쉬걸>(2015)이나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2014), <하이힐>(2013)에는 모두 여장을 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수많은 여장 남자를 앞세운 영화들이 여장이라는 요소를 웃음으로만 사용한 것과 달리 이 세 편의 영화는 신체적으로는 남자지만 정신적으로 여자로 살고 싶어 하는 내적 욕망과 사회적 시선이 부딪혀 갈등하는 인간적인 고뇌를 담고 있다. 반대로 <소년은 울지 않는다>(1999)는 여자지만 본인을 남자로 꾸미고 살아가는 소녀의 삶을 그리며 그녀가 겪는 어려움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신체적인 성과 내가 인지하는 성이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인지부조화는 본인에게도 혼란을 주지만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 역시 그들을 힘들게 만든다.
극 중 민아 역시 트랜스젠더, 즉 본인의 성 정체성을 여자라고 생각하여 여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이다. 성 소수자에 대한 이해는 그 개념들과 구분을 확실히 하는 것부터 출발하는데 이 점을 고려한다면 김세연 감독의 영화 <하프>는 매우 진보적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오로지 민아 본인의 성 정체성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성 소수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매우 협소하다. 예를 들어 방송에서 게이를 내보낼 경우 꼭 여성스러운 몸짓과 말투로 과장되게 표현하는데 이는 성 정체성과 성적 취향을 오해한 결과다. 게이라고 해도 모두가 여성스러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 정체성과 성적인 취향은 매우 다른 것인데 영화 <하프>는 민아를 게이가 아닌 오로지 여자로 직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이러한 진보적인 시선은 현재 해외의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 역시 반영한다. 현재 해외에서는 LGBT 중 T를 성 LGBT 표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레즈비언이나 게이, 양성애자가 성적 취향을 나타내는 단어인 것과 달리 트랜스젠더는 성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들이 스스로를 여성 혹은 남성이라 생각하여 이성을 좋아하는 것은 오히려 이성애자의 성향과 부합한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영화 <하프>는 제법 정확한 성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갈등과 이를 극복하려는 애달픈 발버둥을 정확히 비추고 있다.
그리고 이 발버둥을 아무것도 아닌 일 취급하는 사회는 무섭기까지 하다. 트랜스젠더라는 기삿거리에 목이 매여 민아의 감정은 신경도 안 쓰는 기자들, 트랜스젠더를 자식으로 두었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가족들, 또한 세상에 나갈 것이 두려워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트랜스젠더들. 이는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태원 어느 골목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단지 내 일이 아니라고 우리가 외면해 왔을 뿐. 혹은 이런 시선이 두려워 드러내지 않고 있거나. 모두가 ‘자아 찾기’, ‘자기 계발’을 외치는 이 시대에 남들보다 조금 뒤에서 정체성 찾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우리 땅 위에 함께 숨 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주는 사회적 시선. 그저 남들처럼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갔던 한 인간이 보내는 호소의 메시지, 영화 <하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