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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사마 jemisama Apr 14. 2024

온도별 추천사케

열 번째 악기

> 차게 마시는 사케와 뜨겁게 마시는 사케가 따로 있다고? 



어릴 때 친척집에 제사가 있어 아버지를 종종 따라가면 아버지는 늘 종이 케이스로 된 정종 한 병을 가져가셨습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데워서 내어 주시고 제사가 끝나면 그 술로 음복을 하셨습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정종이라는 술은 데워서 마시는 술이구나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45년 출시된 백화수복 - 홈페이지 인용


그리고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는 이 정종이라는 술을 주류업체가 대중화시키기 위해서 청하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했습니다. 


그 콘셉트가 '차고 깨끗한 청하'였습니다. 데워서 마시는 문화에선 유통도 그렇지만 대중화시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청하 주막이다 청하 전문점이다 하여 한때 엄청나게 유행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이 기억을 지금의 사케로 대입해 보면 바로 아츠칸의 문화가 전달된 것이 아닌가 유추해 봅니다. 그 당시 어떤 식으로 데웠는지는 알기가 어렵지만, 일본에 오랜 시간 지내다 보니 자주 그때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츠칸을 만드는 전용 용기 (큰 용기에 뜨거운 물을 넣고, 작은 용기에 사케를 넣어 데우는 방식)


술이라는 게 마시는 사람이 즐기고 좋아하면 그게 바로 정답이 되기 때문에 음용 방법에 있어서 이게 옳고 저게 그르다고 얘기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와인도 온도에 민감해서 손의 온도가 글라스에 전달되지 않도록 목을 길게 만들고, 음식도 식기 전에 먹는 것처럼 사케도 최적의 온도를 찾아서 최고의 맛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은 섭씨 10-14도가 좋다고 하고 레드 와인은 섭씨 15-20 사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와인 셀러도 그 온도에 맞춰서 제작이 되곤 합니다. 


사케 전용 셀러 - 사쿠라제작소 홈페이지 인용


재미난 사실은 그렇게 종류가 많지 않고 다소 비싸긴 하지만 사케 전용 냉장고도 있다는 것입니다. 열처리를 하지 않은 나마자케가 유행하면서 최근에 제조되기 시작된 듯한데 와인 셀러보다는 온도가 더 차갑게 내려갈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온도별 사케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먼저 온도대에 따라 사케를 부르는 호칭이 바뀝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자카야나 대중 주점에서 이 호칭을 그대로 쓰고 있지는 않지만 알아두면 좋은 정보입니다. 


하기의 표를 보고 하나씩 들어가고자 합니다. 


히에(冷え)는 차가움, 히야(冷や)는 상온, 칸(燗)은 데워서 마시는 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ㅎ'에 해당하는 하히후헤호(はひふへほ)는 앞에 단어가 붙게 되어 합성어가 될 때 바비부베보(ばびぶべぼ)가 됩니다. 


유키(雪)는 눈, 하나(花)는 꽃, 스즈(涼)는 시원함, 히나타(日向)는 햇볕이 닿는 양지, 히토하다(人肌)는 사람의 피부, 누루(ぬる)는 미지근함, 죠(上)는 상급, 아츠(熱)는 뜨거움, 토비키리(飛び切り)는 특출함 또는 펄쩍 뛰는 모양을 말합니다. 


이 단어들을 합성하면 상기의 표가 이해되실 겁니다. 


레이슈(冷酒)와 아츠칸(熱燗) - 산타츠 인용


기본적으로 차게 해서 마시는 사케를 레이슈(冷酒)라고 합니다. 그리고 상온을 히야(冷や)라고 하고, 데워서 마시는 술을 칸(燗) 또는 칸자케(燗酒)라고 합니다. 


칸은 일반적으로 아츠칸(熱燗)이라는 이름이 더 알려져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아츠칸은 50도의 사케로 칸의 한 종류이지만 칸을 아츠칸으로 대부분 얘기하곤 합니다. 


* 레이슈와 히야


다시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레이슈는 크게 3가지로 나뉩니다. 


섭씨 5도의 유키비에는 눈처럼 차갑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향을 최대한 억제시키고 샤프한 맛을 재현해 줍니다. 



10도의 하나비에는 꽃처럼 차갑다는 뜻으로 보이지만 벚꽃이 피는 시기인 3~4월의 온도를 얘기합니다. 기상정보에서도 이상기온으로 10도 전후로 추워질 경우 하나비에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사쿠라비에(桜冷え)라고도 합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꽃샘추위의 온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15도의 스즈비에는 시원하게 차다는 뜻인데 냉장고에서 꺼낸 뒤 상온에서 10분 정도 지난 정도의 온도대입니다. 시릴 정도로 차갑지는 않으면서 화려한 향이 슬슬 올라오는 온도대입니다. 

 

히야(冷や)는 '차가울 랭'자가 들어가 있지만, 20도 전후의 상온을 얘기합니다. 냉장고가 없던 아주 옛날에 데워서 먹던 술의 상대되는 개념이 상온이었기에 이 표현을 쓰게 된 겁니다. 



* 칸(燗)


칸은 가장 온도대별 호칭이 많은데 6가지 정도로 나뉩니다. 



30도의 히나타칸은 양지의 햇볕처럼 따끈따끈하고 부드러운 온도라 한잔 마시면 부드럽고 사케의 향이 살짝 배어 나오는 정도입니다.


35도의 히토하다칸은 사람의 피부온도와 비슷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슬슬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느낌으로 향이 부풀어 오르고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40도의 누루칸은 미지근한 느낌의 사케를 말합니다. 뜨거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온도대이며 알코올이 사람의 온도와 비슷할수록 체내에 바로 흡수되기에 히토하다칸이 가장 취기가 빨리 찾아온다고 봐야 합니다. 


아츠칸 - 사카나바루 인용


45도의 죠칸은 다소 상위 등급의 뜨거운 온도를 말하고, 아츠칸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온도대입니다. 즉, 45도에서 50도 사이가 향과 감칠맛이 가장 잘 구현된다고 합니다. 


50도의 아츠칸은 말 그대로 뜨거운 사케를 말하며 추운 날씨에 음미보다 몸을 데우는 기능적으로도 훌륭한 사케입니다. 추운 몸을 녹이는 사케 한잔이 바로 이 온도대입니다.  


55도의 토비키리칸은 맨손으로 잡기가 어려운 온도대라 너무 뜨거워서 펄쩍 뛴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라이가 뛰어올라 칼을 베는 모습을 토비키리라고 하는데 그 형상을 뜻하기도 하지만 특출하다 월등하다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사케는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주로 종이팩으로 판매되는 저렴한 사케인 후츠슈(普通酒)와 정미비율과 양조알코올 첨가 유무로 8가지로 명명되는 사케의 고급버전인 특정명칭주, 그리고 양조방식에 따라서 키모토 야마하이 나마자케 등으로 나뉘는데 그 구분별로 추천 음용온도를 소개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마시는 사케 라벨에 이 표기들이 적혀있기에 참고하기에 아주 편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케를 즐기는 목적과 맛의 구별 감각은 저마다 다 다르기에 어디까지나 하기 그림은 참고하시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님을 재차 강조드립니다. 



최근 한국에서 많이 드시는 사케들이 주로 쥰마이다이긴죠, 쥰마이긴죠, 나마자케에 다 몰려 계실 겁니다. 


닷사이, 타테노카와만 하더라도 오로지 쥰마이다이긴죠만 만들고, 핫카이산도 최소 쥰마이긴죠급 이상만 만들고 있어서 그 라인업 위주로 참고하시는 게 많이 도움 되실 겁니다. 


상기 표를 보시면 가장 추천하는 온도대는 종류에 크게 관계없이 15도 대의 스즈비에가 가장 많습니다. 


쥰마이다이긴죠와 쥰마이긴죠는 가능하면 데워 마시는 술로는 적합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로 혼죠조 계열과 후츠슈 계열을 데워서 마시는 술로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고급술은 데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십시오. 



나마자케는 열처리 안 했으니 당연히 아직 효모가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냉장보관을 해야 하고 당연히 차게 해서 드시는 게 최적인 온도가 됩니다. 최근의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사케들이 대부분 쥰마이다이긴죠 또는 쥰마이긴죠이면서 또 나마자케이기에 차게 해서 드시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온도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칸으로 마시는 아츠칸 종류는 다 맛이 없는 것이냐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양조알코올 없이 쌀로만 빚은 쥰마이슈나 전통 양조방식인 키모토와 야마하이도 칸으로 마시면 아주 훌륭한 맛이 납니다. 


사케를 따뜻하게 함으로써 상온이나 냉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섬세한 맛과 향기가 돋보이기 때문에 사케의 감칠맛과 개성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 칸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아츠칸 전용으로 칸자케 콘테스트 금상을 수상한 나루토타이


일반 후츠슈를 데워서 마실 때는 맛의 음미보다는 추운 겨울에 몸을 데우는 기능적인 부분에 많이 기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칸 전용으로 나오는 술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 술들은 절대 조심해야 하는 것이 차게 해서 드시면 대부분 맛이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꼭 칸 전문 사케는 데워 드시기를 강력 추천드립니다. 




레이슈는 냉장 보관만 하면 크게 어려움이 없는데, 집에서 아츠칸(50도)을 만드는 방법을 간단히 알려드립니다. 


* 냄비에 물로 끓여서 아츠칸을 만드는 방법 


1. 돗쿠리를 준비하셔서 사케를 90%까지 채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키쿠스이 주조 인용

2. 이때 입구를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랩으로 씌어주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키쿠스이 주조 인용

3. 냄비에 돗쿠리를 넣어서 물을 돗쿠리의 절반이 잠길 정도만 붓고 돗쿠리는 다시 빼내고 끓입니다. 즉 물 양을 맞추기 위해서 돗쿠리를 넣었던 겁니다.

키쿠스이 주조 인용

4. 물이 끓으면 일단 불을 끄고 다시 돗쿠리를 넣습니다. 

키쿠스이 주조 인용

5. 돗쿠리의 술이 입구까지 올라오면 돗쿠리를 냄비에서 빼냅니다. 


키쿠스이 주조 인용

6. 돗쿠리의 바닥을 만져봤을 때 살짝 뜨겁다고 느낄 때가 딱 알맞은 온도입니다.  최대한 물을 끓여서 원하는 칸 온도대로 가능하면 2~3분 안에 빨리 이 작업을 끝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키쿠스이 주조 인용



* 전자레인지로 아츠칸을 만드는 방법


전자레인지는 갑자기 열이 급속도로 올라가기에 그렇게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방법은 하기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1. 180ml인 이치고 돗쿠리인 경우는 500w의 전자레인지로 약 40초간 데웁니다. 

키쿠스이 주조 인용

2. 입구는 마찬가지로 랩 등으로 싸서 데우시는 게 좋습니다. 전자레인지로는 35도 전후의 히토하다칸 정도까지만 추천드립니다. 더 뜨거워지면 화상의 우려가 있는 데다 원하는 맛을 구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전자레인지의 경우는 골고루 온도가 데워지는 것이 아니기에 반드시 조금 흔들어서 온도를 균등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절대 조심하셔야 하는 것이 반드시 전자레인지에 대응이 되는 돗쿠리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외로 사케가 이토록 즐길 수 있는 온도대의 다양함에 놀라고, 그 구현되는 맛의 다양함에 다시 놀랍니다. 단순히 어느 날 마신 사케가 고급지지 않은 후츠슈였거나, 칸에 맞는 사케를 레이슈로 드셨거나 쥰마이다이긴죠를 데워드셨거나 여러 이유로 베스트가 아닌 방법으로 드셨을 경우도 분명 있을 겁니다. 


나하고는 사케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전에 한번 적정 음용온도대도 한번 파악하면 같은 사케도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기에 다시 한번 자신과 맞는 사케를 찾아보는 것도 상당한 즐거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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