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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사마 jemisama Apr 10. 2024

이자카야에서의 사케 주문

아홉 번째 악기

> 사케는 병으로 안 판다고? 그럼 어떻게 시켜?



한국에서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하면, 단순히 브랜드 3개 정도 중에서 어떤 브랜드를 드릴까요라고 합니다. 그것마저도 번거롭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케는 좀 다릅니다. 물론 하이볼이나 나마비루 정도라면 경우가 비슷하지만 사케의 세계는 정말 넓고 깊습니다. 


제대로 된 사케 전문점에 가면 100가지 정도의 사케를 준비한 곳도 있는데 일반적인 사케를 마실 수 있는 이자카야라면 대략 10개 정도는 대부분 구비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가게 입장에서는 큰 업소용 냉장고 하나 준비해 놓고, 1.8리터의 잇쇼빙을 10병 정도 넣어놓고 손님을 기다립니다. 


그 많은 사케 중 하나를 골랐다면 이제는 주문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단순히 병 채로 시켜서 그 자리에서 다 마셔버린다면 어려운 문제는 아닌데, 일본에서 그런 판매 방식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간혹 술고래인 한국 관광객들이 그런 주문을 하곤 하는데, 가게는 상당히 당혹해합니다. 그런 주문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세상 그 어디보다 융통성 없는 일본인이기에 메뉴에 없는 주문은 거절하고 맙니다. 


일본의 이자카야는 가게에 들어가면 일단 노미모노(알코올과 논알코오을 포함한 드링크류)를 주문받습니다. 

아직 메뉴 파악이 안 되었으니, '토리아에즈 비루'라는 마치 인사와 같은 관용구로 맥주 한잔 시켜놓고 천천히 요리와 술 등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골가게라든지 이미 사케가 파악되었다면 바로 사케를 주문하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맥주나 하이볼 또는 물 등으로 충분히 목을 축인 뒤 사케가 오면 제대로 감별하고 음미하실 것을 추천합니다. 단순히 알코올의 취기를 원한다면 굳이 양 적고 비싼 사케를 마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사케 전문점에 가면 간혹 시간을 정해놓고, 사케를 노미호다이(알코올음료 무한리필)로 주문받는 곳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모든 종류의 알코올을 마실 수 있는 노미호다이와는 달리 사케 노미호다이는 가성비가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지만 이것저것 비교 시음할 수 있고 추억을 남기기 위한 의도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사케 주문 시에는 메뉴를 충분히 봐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자기가 가는 단골만 고집하는 이유가 가게마다 요리도 다르지만 주문방법이 다르고 가게의 규칙이 다르기 때문에 새 가게를 찾아서 파악하고 적응하는데 피곤하고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기 돈 내고 먹는데 이방인 취급받는 것이 싫은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가게 역시 단골손님에게는 더욱더 친절하고 서비스 요리도 가끔 내어주곤 하는 등 손님과 가게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어차피 올 사람은 찾아오고 정해져 있기에 간판이 화려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일본 음식점 간판이 심심하고 허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금 저렴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90ml의 가격

메뉴에 특별한 표기가 없다면 기본적으로는 180ml의 이치고(1合)의 가격입니다. 프리미엄 사케를 내어놓는 가게나 노미호다이 등의 다소 예외적인 가게에는 반드시 90ml, 60ml 등의 표기가 적혀있습니다. 


기본은 이치고이므로 1인용 돗쿠리로 담아서 가져오거나, 잔을 갖다 주곤 병을 들고 직접 따라주기도 합니다. 이치고마스에다가 작은 잔을 넣어놓고는 일부러 이치고마스에까지 넘치도록 부어주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곳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말에 의하면 그게 당연한 것인데 최근의 이자카야가 너무 정이 없다고도 얘기합니다. 


한 번에 두 사람이 같은 메뉴를 시킬 때는 니고(2合)용 돗쿠리에 오쵸코 2개를 달라고 하면 됩니다. 



최근의 이자카야는 대부분 돗쿠리로 가져오더라도 병과 라벨을 기념으로 찍고 싶다고 하면 병을 가져와서 사진을 찍게 해 줍니다. 


기록이 남고 여러 스토리가 생기기 때문에 여행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데다 일단 병을 가져다준다는 건 사케 전문점이며, 서비스 수준이 높다는 걸 예상할 수 있어서 입장 시 사케 병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좋습니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실제 해당 사케가 없으면서 주문을 받고 저렴한 사케로 바꿔서 가져오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에 진품 확인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인기 있는 브랜드는 주문은 폭주하는데, 잇쇼빙(1.8리터) 몇 병씩 들어오기 때문에 금방 소진되어 가게 입장에선 저런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특히 관광객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사케는 막걸리와 같은 양조주라 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성분이 많이 들어있어 증류주인 소주, 위스키 보다 더 취기가 빨리 옵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낮아서 마시는 양도 많아지게 됩니다.

특히 아츠칸 같은 따뜻한 사케는 온도가 체온과 비슷해서 체내에 바로 흡수되기 때문에 더욱 빨리 취하게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차게 해서 마시는 술이 체내에서 체온과 같아질 때까지 바로 흡수하지 못해 늦게 취하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아츠칸이 빨리 취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에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 잔소리와 히야자케는 나중에 온다. (親父の意見と冷や酒はあとから効く)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 잔소리도 이해하게 되고, 차가운 술도 시간이 지나서야 취한다는 말을 재치 있게 풀어놓은 말 같습니다. 



소량을 마실 때는 크게 관계가 없으나 대량으로 연속적으로 마셔야 한다면 중간중간에 물을 마셔 주는 것이 좋습니다. 


가게에서도 알아서 가져다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일본어로는 야와라기 미즈(和らぎ水)라고 하며 체내에서 취기가 늦게 오도록 도와줍니다.

다른 표현으로 체이사(チェイサー), 오미즈(お水), 오히야(お冷)라는 표현도 가능하니 알아두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면 사케바에 가더라도 좋은 정보와 좋은 사케가 있어도 다 캐치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아쉬운 장면이 간혹 있는데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주문이 가능하고 초급 일본어가 된다는 가정하에 일본인들도 잘 모르고 헷갈려하는 사케에 관한 간단한 상식을 몇 가지 알려드립니다. 


사케를 잘 모르면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추천받을 때 나오는 단어들은 최소한 캐치를 해야 할 것입니다. 



1. 카라구치(辛口)와 아마구치(甘口)


사케에 있어서 카라구치라고 하면, 라면이나 카레에서 나오듯 정말 매운맛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구치의 상대적인 말로 달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카라구치의 대표 야마모토의 도카라와 아마구치의 대표 세키젠의 칸쥬쿠바나나

즉 드라이하고 전혀 단맛이 없고 깔끔하고 개운한 것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을 자주 드시는 애주가께서는 카라구치를 많이 선호하시고 사케 입문자들은 프루티하고 향이 나는 긴죠계열을 많이 선호하십니다. 이때의 긴죠계열은 아마구치라기보다 덜 카라구치하다는 걸로 이해하는 게 좋습니다. 아마구치로 표기가 될 정도의 사케는 많지도 않지만 호불호가 강해 식전주나 디저트로 마시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



2. 히야(冷や)와 레이슈(冷酒)


일반 음식점에서도 오히야(お冷)라고 하면 상온의 물을 말하는데 사케에 있어서도 그냥 상온의 사케를 말합니다. 일본인조차 오히야가 얼음물로 이해되기도 하듯 사케에서도 혼동을 많이 야기합니다. 


이자카야에서는 데워서 마시는 아츠칸에 상대적인 개념으로 히야라고 쓰는데 혼동이 많았는지 최근에는 이 표현을 그렇게 많이 쓰지는 않습니다. 정말 차가운 사케를 원할 때는 히야라는 표현보다는 레이슈(冷酒)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주로 열처리 안 한 나마자케(生酒)가 부패 방지를 위해서 냉장보관을 하게 되는데 냉장고에 들어 있는 술들이 곧 레이슈가 되는 겁니다. 



3. 아츠칸(熱燗)


우리가 데워서 마시는 술을 아츠칸으로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데워서 마시는 술을 칸(燗)또는 칸자케(燗酒)라고 하고 아츠칸은 온도별 종류 중 하나입니다.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는 대부분 칸의 온도는 이자카야에 오마카세입니다. 

대부분 아츠칸의 온도대인 50도 전후로 나오기 때문에 칸의 대명사가 아츠칸이 되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통역 앱도 잘 나와있고, 메뉴판을 사진 찍거나 비추기만 해도 번역이 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기본 정보가 없으면 번역이 되어있어도 이해를 못 하게 되고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기본부터 하나둘 이해해 나가면 한층 더 사케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즐기는 취미를 굳이 공부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정독을 해야 하는 수험서가 아니라 잡지를 잠시 짬 내서 읽는다는 느낌으로 접하면 새로운 세상이 보이실 겁니다. 남들 못 보는 것을 보는 것이 경쟁력이자 전문성이라고 봅니다.


이제 사케 주문하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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