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불구의 삶, 사랑의 말

당연한 것이 당연치 않은 '불구'들을 위한 위로의 말.

스페인에서의 유학시절, 내로라하는 3개 대학의 교환학생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었다. 빤하게 스펙 착착 준비할 것 같은 이들이 모여있을 듯 보이지만 생각외로 놀자판에 까르페디엠(!)을 외치는 집시 날라리 20대들이 우굴대는 집단이었달까. (괜히 스페인어과가 아니다 viva la vida!)
그 중에서도 한 친구는 스펙을 착착 쌓아 대기업을 준비하는 친구가 있었다. 일정 관리도 기가 막히고 어찌 그렇게 자격증, 대외활동에 통달한지 그 아이는 늘 친구들에게 '우와 그것도 했어?'라는 얘기를 듣는 취업 수재였다. 궁극적으로 그렇게 그는 굴지의 대기업에 착착 취직했고, 적당한 나이에 좋은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좋은 차를 몰며 살고 있다. 입으로는 '우와 부럽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심 스스로에게 궁금했다. 나 또한 저 친구처럼 사회적인 '성공 공식'을 착착 밟아가고싶은걸까.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은 미학자의 글이다. 생각했다. 아, 학부시절 듣던 문화학 강의를 생각하면 되겠나 후덜덜. 완벽하게 일치했다. 더럽게 어렵고 치열하게 이해해야 하는 책이다.  최근 읽었던 글 중에 가장 소화가 어려웠고, 가깝고 편하게 소화하던 인식의 기준을 자발적으로 흔들어야 하기에 매 페이지가 질긴 고기같았다.
 

고행자의 기분으로 문장 한 줄 한 줄을 천천히, 질겅질겅 걸었다. 보여주기 위한 대상이 아닌 삶의 주체가 되라는 것. 사회가 '그렇다' 말하는 것에 무조건 끄덕이기보다 내게 소화 가능한 것과 체할 것 같은 요소들이 무엇인지 잘 파악해보고 스스로가 느끼는 진정한 즐거움을 포근하게 감싸줄 수 있는 이가 되라는 것. 가면을 쓰고 산다고 우울해하기보다는 어차피 인간은 시간을 흐르는 존재이니 순간을 연기하는 자신이 꽤나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는 것. 아버지는 아버지로 어머니는 '엄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존재로서 태어난 것이니 사회가 부여한 그들의 기호학적/혹은 젠더적인 역할(ex)일에 지친채 통닭을 사오는 아버지,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만들어주는 어머니)이 아닌 그들 존재의 본질을 들여다볼 것. 직장인의 <휴가>라는 단어에 쉬이 연결되는 여행과 레저가 진정 '휴식'의 의미가 있는건지, 아니면 체제가 쉬이 유도하는 방향인건지 생각해 볼 것. (돈 버느라 스트레스받았지? 자 이제 돈 써!)

누구든 인생 2회차가 아니다. 오직 한 번만 흘러가는 삶이기에 자기 삶의 예술가가 되라고 한다. 쉬이 이야기하는 당연한 것이 편안하다면 그렇게 살아도 좋지만, 당연한 것이 불편하거나 예민하게 느껴진다 해도 그것이 이상치 않다는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이 작가는 우리 모두가 자기 생의 시인이라고 말하며 행간 속에 '괜찮다' 말을 건네는 듯 보인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그의 책은 아주 극적인 위로였다.

당신은 정말로, 정말로 소중해


어느 시절을 흐르는 사람들이건 각자의 아픔이 있겠지만 가까이서 보는 내 또래들의 고통(어렵디 어려운 취직 준비, 파란만장한 직장 생활부터 마음같지 않은 인간관계, 육아 스트레스까지)은 참으로 해갈이 어렵다. 힘들었던 전 직장을 그만두고 쉼표를 선언했던 한 친구는 줄어가는 반년도 지나지 않아 통장 잔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줄어가는 모양을 보는게 너무 고통스럽다며 원치 않았던 직장에 일단 들어가고 만다.

체제의 자발적인 편입자가 될 것이냐, 혹은 이것을 영리하게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바뀔 수 없는 이 시간 위에서 여러 모양의 자신을 자유로이 연기하는 배우가 될 것인가. 소중한 각자의 한 번의 시간인만큼 고유한 보석처럼 고요히 들어다보며 갈고 닦을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