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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빛의 속도로 날아갈 수 있더라도, 그 때도 우린 여전히 사람이겠지요

종종 감각하지 못하는 새 빛의 속도로 다른 차원으로 달려가는 세상을 실감한다. 나름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와 기술을 가장 신속하게 만나는 직군이라는 마케터라는 업에 존재하면서도 과학은 내가 실감하는 세상 저 너머에 존재한다는 느낌이다. 인간을 위해 과학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과학을 위해 과학이 존재하는 세상. 그 곳을 아등바등 따라잡으려는 인간들에게 항상 멀고 아득하다. 


기술과 과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선을 가뿐히 넘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은 그 세상 속 인간이라는 존재, 혹은 동물이기에 가질 수 있는 오롯한 특권인 '감정'을 발전된 과학의 세계에서 더욱 빛나도록 다룬다. 손 닿을 틈 없이 인간의 영역 이상으로 발전한 과학은 그저 배경일 뿐이다. 

가령, <관내분실> 챕터에서는 망자의 살아생전의 모습을 데이터를 통해 가상으로 재현, 대화가 가능한 '마인드'가 일상화된 미래 현실 속 떠난 엄마(은하)에 대한 딸(지민)의 마음이 묘사된다. 지민은 살아생전 엄마를 불편해했다. 사회에서 부여된(=응당 그래야만 하는 듯 한) '엄마의 역할'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기에, 지민은 엄마가 죽고서도 그녀의 마인드를 만나러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다 찾아간 망자 도서관에서 망내 데이터 분실이라며 엄마의 마인드를 만날 수 없게 되고, 지민은 흩어진 데이터의 인덱스를 찾기 위해 은하의 과거 흔적을 찾기 위한 길을 나선다. 유물을 하나하나 꺼내보면서 나를 낳은 그녀에 대해 엄마가 아닌 '김은하'라는 사람으로 인식하면서 살며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 삶의 일부를 이해한다. 데이터와 디지털 세상에는 손때묻은 흔적이 적다. 달라진 세상 속에서도 지금 느끼는 감정은 그대로 감정이고, 엄마와 딸 간 부정할 수 없는 동물적인 그리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우리가 어느 별 혹은 어느 시공간에 존재하건 모두 시대라는 맥락 속을 살아가는 동료들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특히 가까이 살아가는 인간 간 느낄 수 있는 공감,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은 함께 흐르는 시간 속 아름답게 반짝인다. 나 홀로 아름다운 광경을 볼 때 무심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볼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 마음처럼 말이다. '요즘 뜨는 소설'이라며 SF장르 베스트셀러로 꼽힌 이 소설에서 가장 빛난건 어마무시한 과학 커리어를 가진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보다도, 무광 실버 컬러의 회색도시가 되버렸을 듯 한 차가운 미래도시 속 여전히 따끈할 인간의 마음에 시리도록 아름다운 시선을 보내는 글쓴이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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