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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신이 된 인간이여.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친구와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사실 알고보면 인간은 신일 수도 있다고. 먹고 싶은 맛은 찾아 만들어 먹을 수 있고, 원하는 음악도 향기도 감촉도 아름다움도 언제 어디서든 추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신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있는 점은 그가 인간계에 행하는 특정한 <권력>이 있다 외에, 인간에 비해 얼마나 더 많고 깊은 감각으로 더 큰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는 전지전능의 문턱 앞까지 다다랐다. 


유발 하라리 교수의 <사피엔스>는 엄밀히 따지자면 역사서의 연대기적 구성을 기반으로 한 종합 인문서적이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 귓등으로는 들어본(!)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류 종이 어떤 단계를 거쳐 지금의 지적, 신체적, 생태적 특성을 띄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비단 역사학적으로 어떤 의의가 있느냐 뿐이 아니다. 사피엔스의 여러 종족들이 농경시대, 중세시대, 제국시대 등의 진화된 방식의 집단 생활을 지나오면서 속속 등장한 종교와 정치, 경제까지 생물학, 진화학, 고대학, 경제학, 정치학 등 여러 영역을 망라하여 진화와 생태를 이야기하는 넓은 시야의 이야기였다. 


500페이지를 넘어가며 슬슬 '오기로 읽는다'라는 생각이 들 때 마지막 챕터는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지를 담담히 말한다.  이 부분을 통해 <사피엔스>는 살짝은 길고 장황한 역사 이야기에서 인문학의 영역으로 완벽하게 전환된다. 그가 앞서 말한 약 500페이지 가량의 모든 역사의 기술과 기록, 분석은 <집단>의 기록이다. 하여 그 역사 속 인간 개인의 역할은 집단을 구성하는 조직원이자, 특정한 DNA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한정된다. 그래서 멸종된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보다 더 행복했는가-수렵채집인이 농업혁명 이후의 농부보다 행복했는가, 제국주의 식민국민과 독립 이후 국민 누구의 삶이 더 행복했는가-와 같은 개인 행복의 질적, 상대적 분석을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역사에서 '진보'라고 평가한 특정한 사회가 상대적으로 인간 개개인의 삶에 얼마나 더 큰 행복과 가치를 주었는가는 설명이 불가하다는 말이다. 기술과 과학, 혹은 정치적 혁명은 늘 '(불특정)인간에게 이로움'을 명분삼아 다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만 과연 그것이 실질적으로 얼마만큼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란 것이다. 


애플워치와 애플폰으로 우리는 24시간 간편한 커뮤니케이션 생활을 통해 더 행복해졌는가? 빠른 교통수단으로 우리는 빠르게 이동해 쉴 수 있는 여유를 얻었던가, 남은 시간을 이용해 다른 일을 해야하는 부담을 안았는가. 집착을 지속 충족해줄 수 있는 자극적인 무언가를 계속 소비하면서 꾸준한 만족은 꾸준한 행복을 만들었는가, 아니면 더 큰 또 다른 층위의 만족을 추구하고자 다시 집착하게 되었는가? 


현대의 '사피엔스'는 생태계 내 극도로 잔인한 하이퍼 포식자의 포지션을 넘어 조물주의 영역으로 가까이 가고 있다. 죽을때까지 임신만 해야하는 암퇘지부터 아기 젖소가 엄마의 젖을 빨리 떼게 하기 위해 아기의 이빨에 날카로운 침을 꽂아 엄마가 젖을 물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까지 먹이사슬 최상층의 인간은 제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의 존엄을 과히 훼손하고 있었다. 아울러, 바빌론 탑의 끝에 다다른 전지전능한 과학은 사람도 빚어내고 생명도 연장하며 도청 기능이 있는 '첩자 파리'까지 양산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모든 발전은 인간을 위한 발전인가, 경제를 위한 발전인가?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를 살 고 있는지 알 수 없다. 10년 전 우리가 그대로 '아이폰'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는것처럼, 10년 후의 기술과 과학은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라질 예정이다. 10년 후에는 100년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와 150살 소개팅이 흥행할 수도 있는거고, 뱃 속에 품은 내 딸의 DNA를 조작해 결점없는 슈퍼키즈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거다. 이 모든 발전과 사실들은 우리가 죽고 한참 뒤에서야 역사 속 문장으로 쓰여질 것이다. 


몇백 페이지에 걸쳐 사피엔스가 지나온 긴 이야기를 말한 뒤, 저자는 세상과 독자에게 건네는 짧은 물음으로 책의 핵심을 던진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무엇이 될 것인가'가 아니다. 
지금의 발전으로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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