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펙에서 함께했고, 또 함께하고 있는 반려생물들에 대하여
위니펙의 삶에도 ‘반려생물’이 필요한 법이다.
나의 위니펙 첫 번째 반려생물은 민달팽이 두 마리였다. 재작년 가을, 일하고 있는 키친에서 쑥갓을 씻던 솊님(일하고 있는 키친 해드 셰프인데 줄여서 솊님이라고 부른다)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쑥갓에서 민달팽이가 나온 모양이었다. 나는 솊님 목소리만큼이나 크게 소릴 지르며 개수대로 달려갔다.
“달팽이요??? 저, 저 주세요!!!”
달팽이는 뭐랄까. 내가 한창 예술적인 자아에 취해 시를 읽고 쓰던 시절,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당연히 달팽이에 대한 시도 여러 번 썼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집 앞으로 나가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는 보도블록 위를 샅샅이 뒤졌다. 꼬물꼬물 기어가는 달팽이를 발견하면 등딱지를 들어 올려 안전한 수풀 위에 올려 주곤 했다.
작고 꼬물거리는 달팽이들은 이유 없이 귀엽고 짠했다. 톡 하고 건드리면 움츠려드는 촉수들도, 천천히 자신의 길을 남기며 앞으로 밀고 나아가는 모습도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달팽이를 좋아하는 만큼, 집으로 데려가 키우진 않았다. 화단에서 자유롭게 살던 그들을 내가 좋아한단 이유만으로 인간의 집으로 납치해 작은 각에서 사는 삶을 선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키친에서 발견된 민달팽이는 예외였다. 이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위니펙의 가을에 이 두 민달팽이가 갈 곳이 어디 있겠어. 나는 두 마리의 민달팽이를 컵에 넣어 구멍 뻥뻥 뚫은 랩을 감싸 지붕을 만들어 주고는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는 큰 애는 ‘민달이’ 작은 애는 ‘팽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민달팽이들은 처음엔 자른 손톱만큼이나 아주 작았다. 로메인 잎 뒤에 숨으면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잎도 자주 갈아주고 큰 통으로 집도 바꿔주며 나름 정성스럽게 돌봤다. 가끔 뚜껑을 열고 ‘귀엽네. 건강해라’라고 덕담을 퍼붓기도 했다.
모두가 잠든 밤, 달팽이들의 집에서는 아주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각… 사각… 사각…. 민달이랑 팽이가 우직하게 잎을 갈아먹는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 작은 입에 촘촘히 들어찬 만 개의 이빨로 잘도 씹는구나 싶어서 대견했다. 잘 먹은 덕분인지, 달팽이들은 내 손 길이만큼이나 자랐다.
위니펙에서 첫 일 년을 살았던 발모랄 집에서,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올 때는 몹시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선풍기 없이는 더워서 숨도 못 쉬는 아파트의 꼭대기 층으로 이사를 오니 움직임이 점차 둔해지더니 한 마리가 죽고 다음 날 한 마리가 따라 죽었다. 원래 하나가 가면 외로워서 따라간다더니. 달팽이 형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 근처 공터에 묻어줬다. 눈물은 안 났지만 슬펐다. 그래도 8개월간 같이 살았는데.
이후에는 햄스터를 키우고 싶었다. 햄스터의 평균 수명은 2년이다. 때문에 위니펙에 확실히 머무르는 동안은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먹은 날, 고양이며 토끼, 앵무새들을 판매하는 팻랜드(Petland)에 가서 해바라기 씨와 건초 더미를 양 옆구리에 끼고 허리를 굽혀 우리를 한참 관찰했다. 그중 꽁무니 빠지게 우리 안을 휘젓고 다니는 가장 활발한 로보로브스키 햄스터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막상 직원한테 말을 하려고 하니 입이 안 떨어졌다. 이 녀석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아플 때 아낌없이 병원비를 낼 수 있을지, 숨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혹시 민달이랑 팽이처럼 최후를 맞이하면 어쩌나. ‘일단 될 대로 되라지’ 하고 데려오기엔 그놈이 너무 연약하고 작았다. 고민 끝에 그렇게 햄스터는 단념했다.
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꽃을 키워볼까도 싶었다. 키친에 쑥갓이 들어올 때마다 기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쉬이 새 인연은 내 곁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위니펙 패밀리들(러시아, 중국, 우크라이나 커플들과 우리들이 속해 있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무리)과 놀고 들어온 캐구가 아주 작은 화분을 가져왔다.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하고 높이는 5센티가 될까 말까 한 크기였다. 화분 위에는 털이 난 보송보송한 연두색 아기 선인장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야?”
“드래곤 프루트. 리가 조이 너 주라고 줬어.”
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롤리와 토니의 열세 살 딸로, 드래곤 프루트 씨앗으로 싹을 틔운 모양이었다. 나와 패밀리의 일원인 엠마에게 각각 하나씩 줬다고 했다. 분홍색의 통통한 드래곤 프루트 과육을 먹어 보기나 했지, 새끼 드래곤 프루트는 처음 봤다. 검색해 보니 선인장처럼 키우는 모양이었다.
오랜만의 반려 생물이었다. 게다가 털(사실 가시다)이 보송한 게 너무 귀여웠다. 볕이 따뜻한 창틀에 놓고 종종 물을 주며 키웠더니 그새 화분 크기만큼 자랐다. 달라라마(캐나다의 다이소)에 가서 더 큰 화분과 흙을 사서는 옮겨 심어줬다. 그 덕분인지 더 쑥쑥 자라더니 옆에 자그마하게 동생 드래곤이 생겼다. 혹처럼 작은 동생 드래곤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동생 드래곤은 형 드래곤이 처음 왔을 때보다 더 빠르게 자랐다.
나는 내심 엠마의 드래곤 프루트에 경쟁심을 갖고 있었다. 내가 더 잘 키우고 있다고! 따위의. 그래서 엠마네 집에 놀러 가서 드래곤 프루트가 잘 자라고 있나 흘긋거렸다. 내 드래곤이는 옆으로 좀 휘어서 면봉을 꽂아 지지대를 만들어 줬건만. 엠마네 드래곤 프루트는 곧게 잘 자라고 있었다. 우리 드래곤이 보다 표면도 훨씬 단단하고 색깔도 한층 더 짙어 보였다.
혹시 비법이 있을까 싶어서 어떻게 키우고 있냐고 묻자, 엠마는 관심도 없다는 듯 시선도 안 주며 말했다.
“I don’t know. We don’t care. (몰라, 우린 관심 없어.)”
그때 어이없다는 듯 아주 날카로운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엠마의 남편 앤하오였다.
“What? I care!!! (뭐라고? 내가 돌보고 있어!)”
억울해하는 앤하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럼 그렇지. 방치했는데 저렇게 신선할 리가. 앤하오 말에 따르면 그냥 물만 주고 창틀에 두는 게 전부라고 했다. 나랑 똑같은데. 왜 우리 드래곤이는 휘어서 자라는 걸까. 분갈이할 때 잘못했나 싶어 마음이 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엠마네 집으로 가서 핫팟을 먹었다. 그때 창가에 놓여 있던 엠마네 드래곤 프루트가 샛노랗게 질려 시들어 있는 걸 발견했다. 내 드래곤이의 핏줄이라 그런지 깜짝 놀랐다.
“엇? 이거 왜 이래?”
“나도 몰라. 지난주에 우리 크리스마스 파티 할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변했어.”
앤하오는 영문을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했고, 역시나 엠마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앤하오는 그대로 흙에서 드래곤 프루트를 뽑아버리더니 시든 부분을 손톱 끝으로 잘라내고, 아직 색이 변하지 않은 윗동 부분을 그대로 흙에 박아 버렸다. 이러면 뿌리가 다시 자라게 될 거라는 거였다.
드래곤 프루트를 그런 식으로 번식시키는 걸 본 적이 있어서 그렇구나 싶었다. 순식간에 짤뚱해진 엠마의 드래곤, 아니 이젠 앤하오의 드래곤 프루트를 보니 안타까웠다. 그 후, 또 엠마네 집에 갔서 봤을 때는 별 변화 없이 똑같은 상태였다. 삐쭉 흙 밖으로 튀어나온 머리털 숭숭 빠진 누군가의 뒤통수 같았다. 불쌍한 것. 내 드래곤이한테 더 잘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날은 드래곤이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는 속절없이 흔들리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인공호흡이라도 할 뻔했다. 서둘러 책상으로 화분을 옮겼더니, 하루 뒤 다시 허리를 펴고 단단해졌다. 아무리 창문을 꼭 닫아도 창틈 사이로 찬바람이 솔솔 불어왔던 모양이었다. 드래곤이도 위니펙 추위에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다.
덕분에 드래곤이는 아침저녁마다 이사를 한다. 햇빛이 좋은 낮에는 창가로 옮기고 밤에는 책상으로 옮기고 있는데, 오늘은 날이 꾸리꾸리하고 으슬으슬해서 온종일 책상 위에 뒀다. 내가 쓰는 책상은 다리가 약하고, 방바닥도 어딘가 살짝 기울어져서 미세하게 흔들린다. 그 덕분에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드래곤이도 덜덜 춤을 추고 있다.
줄기의 길이가 이제 화분을 넘어섰는데, 또 옮겨줘야 하는 건가? 아니면 일단 그냥 두는 게 맞는 건가? 식물을 키워본 적이 있어야지. 살짝 만져보는데 털이 따갑기는커녕 간질간질하다. 동생 드래곤이는 이쑤시개 지지대 없이도 잘도 서 있다. 일단 건강해 보인다. 나는 페트병의 생수를 벌컥벌컥 먹다가 드래곤이도 한입을 준다. 쪼르륵 떨어진 물이 흙 속으로 쪼옥 빨려 들어간다. 너 한잔, 나 한잔. 드래곤이 형제들에게 속삭인다.
위니펙에서 끝까지 살아남자고.
그리고 여름, 쑥쑥 자란 드래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