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영화의 서막
'스크린 쿼터', '다양성 경계'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업의 독과점.
영화도 엄연히 수익 사업이기 때문에 요즘처럼 체면을 버리고 수익 창출에 집중하며 관객의 다양한 경험을 침탈하고 있고, 눈을 뜬 관객들은 대기업의 상영관 독점을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상 법적으로 제재할 근거가 없으니 요지부동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1948년 영화사가 극장을 운영하는 행위(파라마운트 사)는 독점금지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B급 영화의 기원을 명실하게 찾아보긴 어렵지만 뤼미에르 형제가 상영하여 '최초의 영화'가 탄생된 시점이 1895년이었고 B급 영화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는 시기가 193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B급 영화는 영화의 역사적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저예산으로 만든 싸구려 영화는 대공황으로 혼란스러운 사회분위기로 인해 관객 수가 떨어지자 주머닛돈이라도 털어내기 위해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싸구려 영화를 만들어 동시상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영화들은 요즘 흔히 말하는 팝콘 무비와 비슷했다. 전형성이 넘치는 대중 취향의 스토리와 플롯으로 이뤄진 이 저예산 영화는 영화사의 고정 수입원이기도 했다. 때문에 의존도 또한 그저그런 수준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큰 돈을 만져본 이들이 고정 자금줄을 무시하는 경향은 여전하다.)
메이저 영화사들이 B급 영화 제작에 메너리즘을 겪을 때 쯤 소규모 영화사들이 등장하여 이 시장의 판도를 뒤집기 시작했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독립영화를 비롯한 소규모 영화사들의 작품을 내걸 수 있는 상영관 하나조차 섭외하기도 힘들만큼 대기업의 지배를 받고 있으나 이 영화사들이 만든 작품들은 라디오나 책 등 시각적으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매체의 한정성을 부수며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지금도 전설로 남은 당시 최고의 B급 영화사로는 리퍼블릭과 모노그램이 대표적이었고 마스코트, PRC, 체스터필드, 인빈서블, 퓨리탄 마제스틱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의 에너지를 B급 영화 제작에 소모했으며(특히 리퍼블릭과 모노그램은 아예 B급 영화만을 만들어냈다.) 기획력이 좋고 수완이 뛰어난 영화사들은 낮은 제작비,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촬영속도 등을 통해 지속적인 흑자를 기록했고 미국 영화계가 위기를 맞은 1948년(서두 참조) 또한 무사히 넘겨왔다.
엄밀히 말하면 1948년 연방 대법원의 이 판결이 영화 시장을 잠시 위축시키기는 했지만, 수많은 상영관들이 영화사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마음대로 영화를 상영하는 권리를 갖게 되었으니 B급 시장의 미래는 단독 카테고리로도 아주 밝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이렇게 성장하게 된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박리다매 형식이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근본적으로는 탁월한 제작자와 감독이 있어서였다.
웨스턴, 필름 누아르, 호러 등 폭넓은 장르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B급 영화의 제왕 에드가 울머를 비롯해 앙드레 드 토드, 니콜라스 레이, 포드 피비, 오토 프레민저 그리고 B 카테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로저 코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저질스럽고, 말도 안되는 영화들을 양산하듯 찍어냈고, 이 양산품으로 큰 부를 얻었으며 개중에는 나쁘지 않은 영화들도 간혹 나왔다.
하지만 로저 코먼을 능가하는 제작자 겸 감독은 지금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놓은 제작 대비 수익 기록도 절대 깨지지 않고 있다.
-로저코먼 편에서 계속-
◇ 메인 스킨 영화
에드가 울머 감독의 <우회 Detour,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