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견문록
아주 오래전 디자인 서적에서 읽고 기록해두었던, 재미있는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추잡한(indecent) = 유행을 10년 앞설 때
뻔뻔스러운(Shameless) = 유행을 5년 앞설 때
과감한(Outre) = 유행을 1년 앞설 때
최신의(Smart) -
유행에 뒤떨어진(Dowdy) = 유행이 1년 지났을 때
끔찍한(Hideous) = 유행이 10년 지났을 때
우스꽝스러운(Ridiculous) = 유행이 20년 지났을 때
재미나는(Amusing) = 유행이 30년 지났을 때
고풍스러운(Quaint) = 유행이 40년 지났을 때
매력적인(Charming) = 유행이 70년 지났을 때
낭만적인(Romantic) = 유행이 100년 지났을 때
아름다운(Beautiful) = 유행이 150년 지났을 때
시간과 유행의 상관관계를 재미있고 날카롭게 꼬집고 있는데, 그 내용을 부정할 수 없어서 웃음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은 '최신(Smart)'을 좇는다는 인간의 믿음 아래,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현상과 사물에 대한 해석도 진화하고 있죠. 어머니가 즐겨 듣던 LP는 30년 전 유행하여 그 뒤 테이프 - CD - MP3 음원이라는 무형의 형태로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우습게도 30년이 지난 지금, 유행은 Rollback 하여 '라떼'의 LP 수집이 멋진 취미로 인식되고 있죠. 하지만 어머니가 겪은 30대와 우리가 겪는 30대의 모습은 굉장히 다를 것입니다. 2000년 초반에 제가 쓰던 MP3 플레이어를 물려주는 일은 없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후손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요? 아이 클라우드 ID? 가상화폐? NFT? 상상은 즐겁지만, 정말 한 치 앞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11월 견문록에서는 위에서 소개한 '유행표'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최신(Smart)이라는 기준에 따라 변화하는 브랜드의 양상들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현시대의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개념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하반기 리브랜딩 뉴스 중 뜨거운 감자라면 단연 Facebook이 사명을 Meta로 바꾼 것 일 겁니다.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다 보니 메타버스 개념이 성행했고, 사람들은 점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 무엇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게더타운, 제페토, 로블록스 등이 이러한 관심을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했고요.
글로벌 IT 기업들이 모두 뛰어들어 부랴부랴 메타버스 흐름에 맞춘 새로운 서비스와 솔루션을 연구하고 있던 때, Facebook에서 완전히 메타버스를 선점이라도 하려는 듯 'Meta'로 이름을 바꾸어버렸습니다.
기업이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바로 모든 게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IT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저의 관점에서는 사뭇 파격적인 변화로 느껴졌습니다. 사실 Facebook이 사명에 대해 고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불과 2년 전, 동일한 Facebook이지만 대문자와 서체 디자인을 바꾼 FACEBOOK을 만들어 사명과 서비스명을 분리시키는 작업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정말 브랜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눈치채기 쉽지 않은 변화였을 것입니다.
마치 그 사실에 분개하듯, 저커버그 씨가 크게 한방 터트리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심볼의 무빙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Meta는 3차원의 공간 개념을 가지고 있는 심볼입니다. Meta가 가지고 있는 주요 서비스들(페이스북, 오큘러스,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이 하나가 되어 'Limitless'를 표현하는 듯 무한대 기호와 M을 상징하는 선으로 변화합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모든 서비스들을 변화시키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 같습니다. 사실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뫼비우스의 띠나 무한대의 개념을 사용한 은유는 독자적이라 하긴 어렵습니다. 실제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메타포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스타일적으로 보았을 때도 플랫 디자인에서 한 단계 나아간, 머터리얼 디자인의 개념을 따른 트렌디한 표현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디자인에 대해 제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유는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독보적이진 않지만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되었다)
마크 저커버그가 그리는 메타버스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집니다만, 하루빨리 사람들에게 그 실체를 경험하게 해주지 않는 한 Meta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게 될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로고는 이제 브랜드의 얼굴이라고 하기엔 과한, 첫인상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몇 달 전, 코카콜라의 새 TVCF를 보고 굉장히 귀여운 상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령 캐릭터가 코카콜라를 마시고 싶어 하자, 소년이 콜라 한 병을 깨트려 유령(?)으로 만듦으로써 함께 콜라를 마시게 되었다- 는 스토리인데요. 광고가 끝나니 '함께라는 마법(Real Magic)'이라는 변경된 슬로건이 노출됩니다. 이걸 본 저의 반응은 '와, 이렇게 찰떡같을 수가. 와, 여섯 글자를 숨 쉬게 만들다니. 와, 번역한 카피라이터 누구야?!'였습니다. 슬로건만으로도 너무 좋았는데, 코카콜라의 바뀐 브랜드 시스템을 알아채고서는 저는 탄성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새 로고는 'Hug'라고 불리며, 이는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끌어안는 모양에서 착안했다고 합니다. 끌어안는다는 개념은 코카콜라가 오래전부터 추구해온 철학, 이상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죠. 차별과 혐오로 뒤덮인 역사 속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평화라는 시그널을 외친 브랜드는 또 없을 것입니다. 메타의 심볼이 삼차원을 담고 있다고 했지만, 코카콜라의 로고는 삼차원의 공간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는 감상을 줍니다.
패키지 디자인 또한 개념적인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언뜻 보기엔 무슨 변화가 있나 싶지만, 가장 큰 변화는 세로로 길게 쓰여있어 한눈에 보였던 로고가 가로로 배열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Hug 로고의 기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캔을 끌어안는 듯 로고가 둘러져 있는 형태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실제로 콜라 캔을 잡고 좌우로 돌려볼 수 있는데, 굳이 한 면적에 다 보여주려는 디자이너의 노력 자체가 편견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코카콜라 코리아에서 세계 최초로 무라벨 패키지를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플라스틱 프리(Plastic-Free)'등 환경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들의 생각을 지지한 행보로 보입니다.
가장 오래된 브랜드이면서 가장 트렌디한 브랜드로 인식되는 코카콜라의 변화는 언제나 재미있고 새로워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서론에서 언급한 '유령 CF'에서도 느껴졌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코카콜라의 철학은 메타버스적 개념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의 광고를 보면 이 생각이 더 증폭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BqjFOXuCpU
나이키와 아이다스 또한 메타버스에 뛰어들었습니다.
로블록스와 협업해 만든 나이키의 나이키랜드, NFT 카드와 로고를 출시한 아디다스 두 브랜드 모두 새로운 시대를 향해 변화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디다스는 NFL 쿼터백 트레버 로웬스와 NFT 카드를 판매함으로써 약 20억에 가까운 수익을 얻었는데, 이 카드로 말할 것 같으면 단순히 보기에는 30초짜리 애니메이션 카드 이미지입니다. 단지 이 이미지에는 '이 세상에 오롯이 나 혼자 소유하고 있다'는 새로운 소유에 대한 해석이 들어가 있죠. NFT를 비유하는 가장 쉬운 언어는 [메타버스 미술품]인 것 같습니다.
브랜드를 다루는 직업을 선택했을 때, 가장 즐겁고 심장을 뛰게 했던 것은 단연 생각과 개념의 산물이라는 철학적 특성이었습니다. 점 하나를 찍더라도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있다는 것, 그림이 아닌 상상력을 자극하는 메시지를 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소싯적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입이 마르도록 펼쳐왔던 브랜드를 대하는 저의 소신이었죠.
나아가 바뀌는 시대에서는 브랜드가 만드는 사람의 것이 아닌, 소유하고 경험하는 사람의 것이 되면서 상상력의 폭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점도 미래 브랜딩에 대한 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디어에서 귀가 닳도록 'MZ세대'라는 지칭을 들어서 이젠 지겨울 지경인데, 이 글을 쓰다 보니 MZ세대란 정량적 나이 범위 내에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기보단,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고착화되지 않은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하고 분석하려 애쓰지 않고, 새로운 것에 대해 받아들이고 마음껏 표현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말이죠.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진화 아닐까요?
보다 진화된 사고를 하기 위해, 더 많은 견문을 하고, 열린 마음을 가져야겠다 다짐하며 11월의 견문록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