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렇게 정신없는게 맞나 싶을정도로 일도 회사도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 출장 날이 다가와 버렸다. 하나만 쳐내기도 힘든 캠페인을 두개나, 그것도 대구에 사는 100일된 아이를 키우면서 해내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 같다. (진심으로) 저기 혹시 이번 출장에 혹시 내가 빠져도 될까? 를 묻고 싶었지만 이미 기존 멤버를 둘이나 바꾼 상황은 녹록치 않더라. 그렇게 (심지어 감기도 세게 걸림) 두 주 연속 풀야근기록을 세우고, 코를 드르렁 거리며 일단 비행기에 올랐다.
2.우리 회사에서 잠비아 다녀왔다는 건 오늘 9호선을 타고 출근했다는 것처럼 흔하디 흔한 이야기다. 그만큼 다녀온 사람도 많고 좋았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밤마다 전기가 끊겨 에어컨이 안되고, 충전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할거라고는 누구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나의 다섯 번째 아프리카, 잠비아다.
3.말로만 듣던 기후위기에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데 잠비아가 그 대표적인 나라였다. 가난하지만 천혜의 자연 덕에 가장 값싼 전기, 빅토리아 폭포를 이용한 수력발전에만 의존하고 있는 나라. 그런데 지난해부터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말라버린 폭포에 전략수급은 급감했고 이에 국가차원에서 아침, 저녁 가장 전기사용량이 많은 시간을 정해 임의로 전기를 끊어버린단다. 심지어 우리가 묵는 곳은 호텔이니 전등이라도 밝혀주지 가정집은 전기 못본지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전기가 아니다. 농사를 짓는 나라에 비가 오지 않아 대규모의 식량난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곡물가격은 세 배가 올랐고 경제는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단 일년만에 국가기능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단지 비가오지 않아서. 물은 생존의 다른 이름이었다.
4.식량위기에 따른 대응방안으로 스쿨밀이라는 급식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말이 좋아 급식이지 옥수수가루에 이것저것 섞은 것을 물에 풀고 끓인 죽이다. 비주얼만으로는 흡사 한국전쟁때나 보던 꿀꿀이죽을 연상시키는데 촬영차 갔던터라 이를 맛있게 먹도록 셀럽에게 요청하는게 꽤나 어렵고 난감한 상황이었다. 잘못 먹었다가 탈이 날수도 있고(비위생적이라는 게 아니라 먹는게 맞지 않아서), 셀럽 본인이 껄끄러워할 수도 있고 하여튼 여러 다양한 경우가 복잡하게 엉켜 이 얘기를 어떻게 꺼내나 고민하는 순간 숟가락이 그 셀럽의 입에 먼저 들어가 있더라. 이것도 경험이라고, 얘들도 이렇게 잘먹는데 어떻게 안먹냐는 말에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도티님도 그랬는데, 정말 캠페인 셀럽 복하나는 타고났다. 카메라와 아이들 앞에서 가장 프로였던 사람. 어리지만 존경하기로 했다.
5.지평선에 내리는 석양, 석양 이후 찾아오는 쏟아지는 별들, 아이들의 웃음소리, 너나할 것없이 손 흔들면 웃어주는 사람들. 나는 이 풍경을 위해 일을 한다. 가장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이 공간을 가능한 오래도록 지켜내기 위해 일한다. 그렇게 돌아보이 벌써 15년이다.
6.올해가 다른 출장과 가장 달랐던 점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가 생겼다는거다. 이제 100일이 갓넘은 아이와 엄마 그리고 고양이까지 내버려두고 2주를 꼬박 집을 비운다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미처 몰랐다. 모든 아이의 풍성한 삶을 위해 내 아이의 삶은 방치된다는 선배들의 농담이 머지않아 내 일이 될 것만 같아 뭔가 조금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러고나니 새삼 그 삶을 선택한 선배들이 대단해보이기도 했다.
7.아무튼 그간 쌓이고 밀린 업무를 이 밤까지 치고 부수고 물어뜯다 말고 문든 일주일 전의 잠비아를 돌아보는 중이다. 뭐랄까. 출장은 늘 꿈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