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조직화 마케팅 강의안 #5.
개인적으로 지역주민조직화의 가장 정확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주민이 자신의 삶터에서 자발적으로 이웃들과의 생활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움직임”
서론에서 언급했듯 많은 기관들이 각자의 지역조직화 사업을 정의하고 십 수년째 진행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 불리는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난 세대의 지향이 점점 개별화되고 파편화되는, 즉 조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이들은 모든 것을 스마트폰 안에서 해결한다. 소통도 톡으로, 배달도 앱으로, 교육은 물론 소개팅이나 종교 활동마저 스마트폰 안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을 만남이나 대화가 아닌 톡으로 해결하는 세대. 전화나 대화가 두렵다는 콜 포비아를 호소하는 이들을 우리는 이미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이 소위 MZ나 GenZ라 불리는 이들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미 세상의 중심이 되어버린 이들의 눈치를 보며 모든 사회는 함께 메타버스라 불리는 가상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딱히 지역조직화라 부르진 않지만 공동체로의 가능성을 보이는 조직들과 심지어 그곳에서 모금이 일어나는 사례들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첫 번째는 ‘자발적’으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가족이나 쉐어하우스 같은 생활공동체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을 자발적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삶의 일부를 오픈하고 모든 타인과 삶을 조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공동의 삶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재정을 내어놓는다.
두 번째는 ‘당위성’이 존재하는 공동체이다. 국가 혹은 종교라 불리는 집단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종교를 가진 이들은 일정한 시간을 떼어 활동에 참여한다. 일주일에 한 번 모임에 참석하고 마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공동체를 위해 필요 이상의 시간과 헌금을 내어놓기도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할 때도 있다. IMF 시절 사람들은 국가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당위 아래 스스로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쳤다. 2007년 태안 유조선 충돌사고로 서해 앞바다가 기름으로 뒤덮였을 때 모두가 봉사활동에 나섰던 일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는 구성원들이 ‘재미있고 지속가능함’을 추구할 때이다. 동호회로 통칭되는 모임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사적모임을 만들고 또 참여하는데 이 모임이 필요하고 즐겁다면 가능한 건강하게 이 모임을 지속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모인 이들은 회비를 내고 규칙을 만든다.
이렇듯 사람들은 지역주민조직화라는 이름을 붙이진 않았지만 생활 곳곳에서 공동체를 만들고 생활한다. 그리고 자발적, 당위성, 지속 가능성의 조건이 채워지면 우리가 모금이라 부르는 행동을 스스로 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를 사회복지사가 기획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을공동체와 사회적 경제, 복지기관, 공공기관, 각종 풀뿌리 단체 등 다양한 기관들이 융합해야 하며 공동의 이해 아래 설계되어야 한다.
사회복지 혹은 비영리마케터의 일
좋은 비영리 마케팅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 마음을 후원으로 이끌어 내고 함께 참여시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15년간 모금 현장에 있으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좋은 기관에 후원하고자 하는 후원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 혹은 단체들을 만났다. 이들을 연결시키며 또 많은 이야기들을 만났다.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유와 도움을 받고자하는 이들의 사연을 들었다. 이 둘을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방법론에 대해서도 배웠다. 누군가는 후원을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심이 전부라고 했고, 누군가는 영리에서 실행하는 마케팅 전략을 하루 빨리 배워 기술적으로 더 많은 후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여전히 사회복지는 영리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정답인지는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미 사회복지 현장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던져졌으며 풍부한 예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민간에 비해 기울어진 운동장 한쪽에 서 있다는 점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 전문적이고 더 명확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더 치열하고 더 뾰족하며 더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금의 기본은 결국 설득의 기술이다. 그리고 이것은 작은 성공에서 출발한다. 나의 아이를 설득하는 일, 나의 팀장을 설득하는 일 나아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내가 하는 필요와 당위에 대해 설득하고 후원을 요청하는 일. 모금이 어렵다면 이 작은 설득에서부터 오늘을 시작하라 권하고 싶다. 반드시 길이 보일 것이다.
일을 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사실은 여전히 사람은 사람의 온기를 필요로 하며, 그 온기를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야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인지하며, 어떤 경우에 우리를 찾게 할 것인가? 이제 함께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