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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육아휴직자 아빠의 하루

그냥 그런 보통의 오늘

by 짱고아빠

예전엔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코너만 돌아도 울었는데 이젠 주황 튤립에서 나오는 노랫소리만 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면 콧노래 같은 걸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유아차에서 내려 아빠 손잡고 계단을 뒤뚱뒤뚱 올라간다. 오른발, 왼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오른발. 그렇게 즐겁게도 계단을 오른다.(요즘 계단 오르내리기가 그렇게 재밌나 보다) 선생님이 문을 열어주자 망설임 없이 뛰어 들어가 품에 안긴다. '아빠 안녕해야지.' 선생님이 얘기해도 마중 나온 친구들에게 '우어어어' 소리를 내며 뛰어간다. 에라이.


서운하진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냥 또 아이가 자랐다는 게 실감 났다.

예전엔 아빠 가지 말라고 울고불고 난리였는데 이제는 어린이집이 더 익숙한가 보다.


아이를 들여보내고 나오면 하루가 시작된 느낌이다.

카페를 갈까 집으로 갈까 고민하다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 게 기억나서 집으로 가기로 한다. 돌아와 텅 빈 거실을 보면 괜히 마음이 이상해진다. 나는 매일 혼자 있는 시간이 간절했는데 막상 이 적막이 낯설다.


아침 먹은 그릇을 설거지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널브러진 장난감과 책들을 제자리에 두고, 청소기를 한 바퀴 돌린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나면 시간이 훅 가 있다.

책을 읽다가 몇 줄 메모를 하고 가끔은 운동도 간단히 한다.

이런 것들을 전에는 아이가 자고 난 이후에 했는데 지금은 낮 시간에 해버릴 수 있다.

뭐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하루에 해치워야 할 일을 낮에 해버리는 것과 종일 마음에 담아두는 일은 꽤 큰 차이다.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매일 뭘 하나씩 배워온다.

하루는 배꼽인사로 엄마아빠를 놀라게 하지를 않나, 물티슈만 보면 까달라고 하더니 제 앞의 책상을 슥슥 닦는다. 잘 때랑 먹을 때 빼고는 늘 서 있는 아이가 기저귀 갈 때 엄마아빠 편하라고 조금은 누워 있어 주기도 한다. 잘 배웠다 싶다가도 뭔가 좀 아쉽기도 하다. 아직 좀 더 천방지축처럼 굴어도 괜찮은데.. 그치만 또 그런 걸 배워오는 걸 보면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다.

그렇게 조금씩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애가 아니라 어린이가 된 건가 싶기도 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자라는 건 분명 좋은 일인데 그래도 아직은 그 작은 몸으로 제멋대로 구는 모습들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이놈의 양가감정은 애 키울 때도 그러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본 사람은 안다. 그게 두 시간이든 다섯 시간이든 하루종일이든.

이제 막 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벌써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다.


가는 길에 동네 커피 맛집에서 라떼를 큰 걸로 테이크 아웃했다. 오늘 고생한 나에게 주는 위로. 아이가 돌아오면 커피 따위는 못 마시니 오가는 길에 부지런히 마셔야 한다.


그렇게 어린이집 문 앞에 서 빼꼼히 아이를 찾는다.

아이는 아직 나를 못 봤다.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주니 그제야 날 본다.

그리고 웃는다.

뒤뚱뒤뚱 나를 향해 걸어온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안긴다.

이 웃음을 본 사람은 안다.

이걸로 오늘 하루가 다 괜찮아진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씻기고, 저녁을 먹이고, 함께 책을 읽고, 누워서 두런두런 장난을 친다.

그러고 있자면 엄마가 퇴근해서 벨을 누른다.


꺄르르르. 엄마 발자국 소리는 기가 막히게 아는 것 같다.

웜뫄아~~~~~~(아직 할 수 있는 단어가 웜뫄와빠 밖에 없음)


아이를 재우고 엄마에게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 선생님께 들었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한다.

가끔 병원에 다녀온 일, 예방접종을 맞힌 일도 빼놓지 않는다.


이렇게 하루가 또 쌓인다.

특별하진 않지만 내 인생에 다시없을 이 날들이 꽤 내 삶에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게 별 건가. 이런 게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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