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사랑 | 고영호, 신혜령 저
고백하자면 나도 사진작가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대학 때부터 사진 괜찮게 찍는다는 말을 제법 듣기도 했고, 지금도 함께 여행이라도 가면 괜히 내 앞에서 얼쩡대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 "제대로 된 사진"을 부탁하는 순간(이를테면 행사나 웨딩 같은) 내 사진은 100이면 90은 망한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이 책 <그럼에도, 사랑>은 그런 나의 워너비, 사진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기록한 수많은 커플의 순간을 글과 사진으로 묶어낸 에세이다.
어디서 어떻게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이 어떻게 흔들리고, 어떻게 다시 이어졌는지.
작가는 화려한 드레스나 배경 뒤에 가려져 있던 작고 평범한 순간들에 귀를 기울인다.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떨림, 서로를 바라보는 짧은 눈길, 다짐인지 망설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침묵.
찰나의 그 순간들을 그는 사진뿐 아니라 글로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만 같았다.
사진을 조금이라도 찍어본 이들은 카메라 앞에선 이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누군가의 시작, 오래된 연인의 습관 그리고 다시 사랑을 배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좋아하는 그가 보인다.
뷰파인더 밖 잘 차려입은 남녀는 설레다가 주저하고, 다투다가 화해하고, 눈을 맞추다가도 시선을 피한다.
이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 속에 시간이 쌓이면 묘한 단단함이 생긴다.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한창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가 예상치 못한 고양이 ‘고영희 씨’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역시 고양이를 좋아하는구나.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도 통하는 게 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우리 짱고를 떠올렸다.
사랑이란 참 이상해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늘 나의 삶 어딘가가 자꾸 보인다.
누군가의 고양이가 나의 기억을 꺼내오고 잠시 묵혀둔 감정이 흔들렸다.
하긴 사랑은 연인 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묘생 전체를 나와 함께 했던 내가 사랑했던 고양이 우리 짱고.
결국 사랑의 형태는 모두 다르지만 어쩌면 그 결은 어딘가 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완벽한 이야기가 아니라 매일 다시 써 내려가는 평범한 순간의 기록이라고 한다.
옳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특별해지는 이유는 거창함 때문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평범한 순간들을 서로 지켜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렌즈 너머에서 발견한 건 이런 순간들. 기술적으로 잘 찍힌 사진이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난 뒤, 나의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사건은 없었다. 그저 문득 스쳐간 눈빛, 손끝의 온기,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조용한 순간들.
돌이켜 보면 별것 아니어서 특별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내게 사랑의 순간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마지막에서 아주 멋진 반전을 준비해둔다.
마지막 장 아내는 남편을 바라보며 에필로그를 남긴다.
그리고 그 글은 이 책이 왜 사랑을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말할 수 있었는지를 단숨에 설명해 준다.
남편이 시간을 통과하며 건져 올린 순간들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의 고백은 책 한 권을 통틀어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에 신뢰도를 더한다.
아 이 사랑꾼 같으니.
누군가를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쓴 문장은 이렇게 따뜻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