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센은 사진 찍으러 오는 곳이라면서요?
신발장에서 만난 어머니와 어색한 농담을 하며 교실 안으로 들어선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뻘쭘하게 문화센터 수업에 참여하는 아빠가 된다.(부모가 다 오는 경우는 있는데, 평일 대낮에 아빠만 오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문센? 그런데 가야 해?라고 지난주에 얘기했던 것 같은데 아이가 자라는 속도에 늘 한 걸음 늦게 따라붙는 느낌적인 느낌에, 혹시 나의 무지로 인해 아이가 경험해야 할 발달단계를 놓치고 있는 게 많지는 않을까 불안함에 덜컥 등록을 해버렸다.
그래도 나이 많은 왕초보 아빠보다 야는 알 것들이 많으신 선생님들이 아닌가.
내가 보기에 별것 아닌 계단 하나, 작은 공 하나지만 어쩌면 아이에게는 어떤 과업이지 않을까.(이렇게 학부모의 지갑은 가벼워진다)
그렇게 나는 몇 가지 문센수업을 찍먹해 보았다.
1. 몬테소리
뭔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선생님은 손짓으로 상자를 조심히 열고 작은 공을 꺼내는 시범을 보였다. 세 손가락? 두 손가락? 만으로 천천히 여닫는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조용함이 우리 아이에게 있을 리 없다.
아이는 양손으로 공을 덥석 들어 올리더니, 던지고 주워오기를 반복한다.
아니 상자에 넣는 거라고!! 아이는 알았다는 듯이 빙그레 웃더니 상자를 던지고 주워오며 꺄르르 웃는다. 그리고는 나한테 상자를 내밀며 아빠도 던져보란다(내가 미쳐)
그리고 그것도 잠깐, 던지기 놀이에 흥미를 잃은 아이는 자연스럽게 교실을 둘러본다.
아빠는 안다. 아이의 작고 까만 눈의 반짝임을. 그 반짝임이 곧 대탐험을 시작을 알리는 신호임을.
이제 선생님과 공과 상자는 아웃오브 안중이 된 아이는 센터 내 캐비넷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기어가 문을 열려고 노력한다. 대부분이 잠겨있지만 어쩌다 열리는 캐비넷은 안을 들여다보고, 손을 넣어보고. 들어가 앉아보기도 한다.
너는 몬테소리랑은 안 맞는 거 같구나.
아빠가 잘못했다. 그치만 정해진 과업을 거부하고 당당히 자신의 길을 찾는 아이가 뭔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2. 두부 촉감놀이
촉감놀이는 매끼니때마다 하는데 내가 여기를 왜 왔을까.
처음에 신나게 두부를 손가락을 넣은 아이의 표정은 곧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차갑고 물컹한 감촉이(아빠도 그거 싫어 으)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이는 손을 마구마구 털어내고는 몸까지 움찔했다.
엄마 한번 두 부 한번, 엄마 한번 두 부 한번. 도리도리를 한참을 시전 하더니 아이는 이내 다시 서랍장으로 가버렸다.
누가 그랬나. '촉감놀이=발달'이라고. 아이가 좋아하는 촉감은 발달일 될지 모르겠는데 아닌 경우도.. 아 이런 촉감은 근처에도 가면 안 된다는 배움이 있는 건가. 여튼. 이후 아이는 두부를 먹지도 않는다. ㅜㅜ
3. 트니트니
문센을 처음 시작한다면 강추. 트니트니는 시작할 때 율동과 노래가 있는데 여기서부터 아이는 미쳐 돌아간다.
입이 귀에 걸려서는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 기세다.
풍선으로 된 계단을 오르내리며 춤을 추기도 하고, 선생님이 앞 구르기 해주는 거 두 번 하겠다며 줄까지 선다.
뭐? 줄을 선다고? 네 0 살짜리도 필요하면 줄을 섭니다.
한 시간 내도록 이이는 꺄르르르 웃어댔고, 아빠는 진지하게 이건 학기를 끊어야 하나 생각했다.
+ 물건판매
아 모든 일회성 문센의 마지막은 물건판매다. 수업료가 3천 원 물건값이 5천 원인데 사기 싫어도 다들 사가니 같이 사게 된다. 어차피 수업도 싼데 뭐.. 하는 마음으로.(트니트니는 아무것도 안 팔았다)
집 근처가 홈플러스 문화센터라 그렇게 수업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홈플러스로 발걸음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유모차에 얌전히 앉아있다가도 좀이 쑤신 지 내려달라 난리다.
땅에 발을 디딘 아이는 제 세상을 만난 듯 통로로 달려 나간다. 손가락도 위로 하나 치켜들고서는.
처음에는 진열된 물건들을 와르르 쓸어버렸는데 두 번 세 번 요령이 생기자 물건이 넘어지지 않을 만큼의 균형을 유지하며 하나씩 가볍게 터치하고 아빠 얼굴을 본다. 마치 나 잘했죠?라는 듯이.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일단 끌어안고 연신 '아빠아빠'를 중얼거린다.
제일 지나기 어려운 코너가 시식코너인데 딸기나 샤인머스캣 같은 것들 앞에서는 난리가 난다.
직원분이 예쁘다고 한쪽 주시면 한 번 더 먹겠다고, 아니 먹어야겠다고 바둥바둥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나를 들어라고 손을 뻗고 있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쪽을 더 얻어먹고 또 얻어먹고, 만족할 때까지 녀석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지금이야 웃으며 말하지 당시에는 아주아주 곤란했다.
그렇게 문센과 홈플러스 체험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아차 안에서 아이는 늘 좀 무표정했다.
피곤한 건가 싶기도 한데 금방까지 웃고 울고 기웃거리던 아이의 얼굴에는 묘한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그 표정을 한참을 바라보다 생각했다.
언젠가 이 시간들도 손끝의 모래처럼 빠져나갈 것이고 나는 이 시간들을 잊어버릴 것이다.
문센에서의 서랍 탐사, 두부를 보고 놀란 작은 표정, 계단을 뒤뚱거리며 오르던 뒷모습, 시식코너에서의 고집불통. 미래의 나는 이 순간들을 아마도 잔뜩 그리워하겠지.
아직 서투르고, 늘 조금 늦는 아빠라서 미안하기만 하다.
그런데 뭐랄까 이렇게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들이 어쩌면 발달 단계의 체크리스트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쌓인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를 천천히 따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