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나는 분명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누가 봐도 헌신적인 엄마 밑에서, 모자란 것 없이 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나는 늘 애정을 갈구하며 살았다. 채워지지 않는 감정이 있다는 걸 처음 느낀 건 아주 어릴 때였는데, 그게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의 모양이 나와 맞지 않아서였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는 나를 동그랗게 키우고 싶어했다. 말 잘 듣고, 웃음 많고, 누구에게나 둥글게 대하는 아이.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네모였다. 선을 넘으면 예민하게 반응했고, 불합리한 걸 참지 못했으며, 감정을 삼키는 대신 꺼내놓고 싸우는 아이였다. 엄마는 그런 내가 버거웠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의 눈빛이 무서웠다. 나를 위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말들이 나를 겨누는 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자라면서 점점 더 단단한 네모가 되었다. 엄마가 기대하는 모습에서 멀어질수록, 나는 이상하게도 더 나다워졌고, 그럴수록 더 미움받는 기분이었다.
나를 위해 애쓰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한참 동안 엄마를 미워했다. 그건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사랑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내 곁에 있음에도 나는 늘 외로웠고, 그 사랑이 내 안에 스며들지 않아서 자꾸만 새어나갔다. 그래서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고, 엄마처럼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컸다. 하지만 가끔 어떤 말투에서, 어떤 행동에서 나는 문득 내가 엄마를 닮았다는 걸 알아차린다. 닮고 싶지 않았던 모습으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엄마는 내가 좀 더 공부를 잘하길 원했다. 엄마의 사랑에는 늘 조건이 붙어 있었다. “공부 잘해야 나중에 후회 안 해.” “괜찮은 친구들이랑 어울려야 너도 좋은 사람이 되는 거야.” 그 말들이 틀린 건 아니었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이었고, 사랑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반대로 움직였다. 아닌 걸 알면서도, 그 말들 사이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게 너무 답답했다.
나는 가족 안에서 편하지 않았다. 사랑받고 있음에도 숨이 막혔고, 그래서 자꾸 집 밖으로 나돌았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훨씬 나다웠고, 마음이 편했다. 그날도 그랬다. 학교가 끝나고, 실업계에 다니는 친구를 만났다. 밝고 재밌고,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아이. 딱히 특별한 걸 한 것도 아닌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는 묻지도 않고 단정했다. “그런 애랑은 어울리지 마.”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해도, 엄마는 믿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엄마의 말이 모두 옳은 건 아니구나.’ 그동안 절대적인 기준처럼 여겨졌던 엄마의 말이 그날 처음 흔들렸다. 그 아이는 나에게 따뜻함을 주었는데, 엄마는 그 아이를 단지 학교 이름 하나로 판단했다. 그리고 나는 그 틀 안에서 스스로를 자꾸 작아지게 만들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해받지 못한 채 커야 했던 그 시절, 나는 내가 누구인지보다, 엄마가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나를 지키고 싶었고 그 균형이 깨질 때마다 엄마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렇게 조금씩, 엄마를 미워하게 되었고 그 미움 안에는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이 꾹 눌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했다. 일찍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무언가를 꿈꿔볼 여유조차 없이 어른이 되어야 했던 사람. 그래서 엄마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성공이 곧 생존이었던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었으니까. 엄마가 내게 쏟았던 그 조급한 사랑도, 어쩌면 그 시절의 자신을 다시는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을지 모른다.
그걸 아주 오래 후에야 알았다. TV에서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사소한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던 내가 떠올랐고, 그 모든 날들 속에서 엄마는 그런 나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하던 날도 기억난다. 엄마는 극단적인 T였고, 나는 극단적인 F였다. 감정으로 움직이는 딸과, 이성으로 판단하는 엄마. 우리는 처음부터 너무 다른 세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만 사랑을 주고받으려 했던 게 아닐까.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엄마가 했던 사랑이 나와 달랐을 뿐, 그게 덜한 사랑은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엄마는 늘 무던하게, 본인의 헌신으로 나를 챙겼다. 표현도 없고, 감탄도 없고, 따뜻한 말도 거의 없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늘 밥이 차려진 식탁 앞에 앉아 있었고, 감기라도 걸리면 아무 말 없이 약봉지를 내밀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어쩌면 그건 딸이 아니라 어른이 된 내가 비로소 도착할 수 있었던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여전히 나에게 멀게 느껴진다. 이해는 했지만,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성장기에 받았던 감정적인 결핍은 시간 속에서 의미를 되찾긴 했지만, 그 기억 속에서 느꼈던 외로움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지금도 일정한 거리감이 있다. 같이 밥을 먹고, 안부를 주고받고, 가끔 웃기도 하지만 그 웃음이 속을 덥히지는 않는다. 어릴 적 바랐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주는 엄마’는 이제는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쓸쓸하다.
나는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엄마의 방식으로 받은 사랑을 부정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게 곧, 내 마음이 회복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이 상처가 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오래된 그늘을 만들기도 하니까. 어떤 날은 문득, 엄마의 말투를 닮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순간 조금 불편해진다. 닮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지만, 나는 결국 그 사람의 방식으로 누군가를 대하고 있고, 그 안에서 다시, 내 안의 아이가 조용히 울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저, 멀게 느낄 뿐이다. 가까이하기엔 여전히 조심스럽고, 멀어지기엔 너무 오래 함께해버린 사람. 아마 앞으로도 엄마와 나는 그 거리만큼의 사랑을, 각자의 방식으로 계속 주고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