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로바토레 Aug 09. 2017

■ 영화 <택시운전사>를 타고 5.18로 달려가다

◇ 송강호, 그를 다시 만나다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최대한 배제한다고 하였으나, 본 글은 리뷰의 특성상 스포일러(spoiler)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글 말미에 기술한 정치적 견해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사견(私見) 임을 밝힙니다.


민주 시민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당시 실존 인물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 이후 피터)의 잠입 취재와 그 과정에서 한 택시 운전사 김사복 씨(송강호 분, 이후 만섭)의 동행을 대략의 시놉시스(Synopsis)로 하고 <의형제>와 <고지전>을 연출한 '장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 영화관에 찾아가서 보는 작은 수고스러움과 비용이 절대 아깝지 않을 영화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공식 포스터, 광주로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무엇보다 송강호의 감정선을 타고 흐르는 절제된 내면의 연기가 압권이다. 특히, 집에 두고 온 어린 딸이 걱정되어 도망치듯이 광주를 떠나는 와중에 국숫집과 택시 안에서 그 참혹한 현장을 외면하고 떠나온 죄책감 사이에 갈등하는 평범한 한 인간의 고뇌에 찬 연기는 이전 <변호인> 등에서 보았던 송강호라는 배우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가히 '신들린 연기의 한 컷(Cut)이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열연을 펼치는 송강호 <출처:다음 영화>

그리고는 딸에게 전화를 해

"아빠 더 늦을 거야, 광주에 손님을 두고 왔거든"이라는 격정(激情)적인 대사를 말하는 장면은,


"5.18 광주 항쟁이 일어난 지 37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갚지 못한 부채 의식을 정확하게 대변(代辯)하고 있다."


또한, 평범한 한 개인이 주변 환경의 극적인 변화로 인한 내면의 각성을 통해 어떻게 민주 투사 즉, 민주 시민이 되어가는지를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잘 보여주는 하나의 시퀀스(Sequence)다.

따라서 그 하나하나의 시퀀스가 모여 이루어진 이 영화는,

'한국 사회의 지난 민주화의 과정을 영화라는 장르에 투사(透射)한 결과물임에 다름없다.'

송강호의 절정의 내면 연기는 관객들에게 큰 파장과 울림을 전해주며, 동시에 평범한 소시민이 변해가는 과정을 감동적이고 설득력있게 보여준다.<출처:메인 예고편 영상>

또한 조연 배우들의 검증된 연기력 또한 영화 곳곳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데 가령, 검문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에게 긴장감과 함께 극적 개연성에 다소 의구심을 가질만한 이 거짓말 같은 시퀀스도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회상을 토대로 한 진실에 입각한 연출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의 재현으로 엄태구(검문소 중사 역)의 연기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송강호 역시 가장 감명 깊은 명장면으로 이 장면을 꼽았다.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재현이기에 더욱 감동적인 장면이다

영화는 가난에 치여 개인적 이익과 안위(安危)에만 얽매여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인 한 택시 운전사의 눈을 통해 바라본다. 남의 행운을 가로챌 만큼 약간은 이기적이고 돈 10만 원에 먼 길을 마다 않고 가는 억척스러움이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는 두려움에 도망가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감독의 말마따나 손해 볼 일은 절대 안 할 것 같으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피해를 봐도 순응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평범한 소시민인 만 섭의 눈을 통해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정부와 군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그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상식적 믿음이 어떻게 주변 환경의 변화와 사건의 전개에 따라 이성적으로 무너져 가는지,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될 수밖에 없는 감성적인 개인의 갈등과 분노를 영화는 단순히 할리우드식 영웅주의로 승화시키는 대신,

'내면의 고뇌와 성찰을 통해 한 인간이 변해가는 과정으로 리드미컬(Rhythmical)하게 변주(變奏)하고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만섭이 피터와 그리는 복잡 미묘한 감정선은 종반으로 갈수록 격정적으로 치닫으며 극적인 변화를 보인다. 그것은 마치 영화 <타인의 삶, 플로리안 헨켈 도너스마르크 감독, 2007년>에서 주인공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과 크리스타(마리티나 게덱 분)를 따라가는 비밀경찰 비즐러(올리버 뮤흐 분)의 점차 변화되어 가는 전개와도 흡사하다.

다만, 이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는 쫓아가는 '종(만섭)'와 앞서가는 '주(피터)'의 두 인물이 감추어진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함께 동행하는 과정에서 좀 더 밀접하고 내밀히 부딪히며 생성되는 갈등과 대립 속에서 인물(만섭)의 변화를 그려나가고 있다는 차이점은 다.

또한 영화 <변호인>과도 이런 차이점은 확연하다.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는 사건을 계기로 돈만 아는 속물 변호사에서 완전히 다른 인격체로 거듭난다. 하지만 이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만섭은 비록 주변 환경과 인물에 영향을 받아 정체되어 있던 생각의 틀을 부수고 나와 광주 시민들과 함께 항거하나 결국은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평범한 택시기사이자 가난한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만섭이라는 캐릭터가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보다는 좀 더 서민적으로 친숙히 와닿는다.

주인공 만섭은 가난한 소시민이기에 더 친숙히 와 닿는다

영화는 초반 군데군데 '복선(伏線)'을 깔아 자칫 평범해질 수 있는 스토리를 나름 심도 있고 개연성 있게 펼쳐 나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화 초반에 시위 도중 쫓기는 대학생 탓에 부서지게 되는 사이드 미러(Side Mirror)는 이후 전개될 암울한 주인공의 미래와 만섭이 믿었던 신념이 철저하게 깨어지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복선'으로 그것은 다름 아닌,

'스크린을 통해 일그러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되돌아보아야 하는 관객의 시선이다.'
우연한 사고로 부서지는 사이드 미러와 백미러를 통해 보여지는 복선(伏線), 그것은 과거의 만섭에게는 곧 닥쳐올 암울한 미래고,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에게는 지나온 역사의 뒤안길이다.

운수 좋은 날의 가로 역사의 현장에 서다

영화의 플롯(plot)은 주인공 만섭의 시선과 피터의 카메라 앵글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아내를 잃고 사글세나 걱정하며 살지만 딸과 함께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던 가장인 택시기사 만섭은 마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김첨지의 그것처럼 어느 날 떨어진 십만 원이란 행운을 놓칠세라 꽉 움켜쥔다.

하지만 그 대가로 철저히 이방인이자 외부인(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도 같은 입장, 그래서 더 주인공과 동일한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변해가는 사건에 주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이던 그는 광주라는 역사의 한복판으로 던져지고, 

'영화는 그 속에서 그가 맞닥뜨리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변해가는 인간상을 사건의 전개와 더불어 역동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을 연상케하는 전개

또한 독일 기자 피터의 카메라 앵글을 통해 본 역사의 현장은 비록 5.18의 한 단면을 간접 조명한 것에 불과하지만 정형화된 카메라 앵글의 사각 구도를 이용해 관객들에게 이 시대의 바른 저널리스트의 상(像)을 제시하며 신뢰와 감동을 주는 동시에 관객의 시선을 몰입하여 렌즈 안으로 끌어당겨서 사건을 이끌어 나가는 하나의 장치로서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써,

'피터의 어깨 위에 올려진 흔들리는 카메라 렌즈는 그 자체가 길거리에서 비틀거리는 비극의 초상(肖像)을 클로즈업(Close-up)하며 비틀리고 억눌린 슬픔과 한(恨)을 동시에 담아낸다. 

피터의 카메라 렌즈로 본 흔들리는 역사의 현장

가벼움 속의 무거움은 눈물이 되어 흐른다

영화는 평범한 시민들의 소소한 일상의 자연스러운 가벼움 속에 5.18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잘 녹여내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막이나 내레이션(Narration) 등의 설명을 최대한 배제하며 주인공인 택시 운전사 만섭을 비롯해 정 많은 택시 기사인 우리 이웃집 아저씨(유해진 분), 꿈 많은 평범한 대학생(류준열 분 ), 주인집 아줌마인 상구 어머니(전혜진 분),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최 기자(박혁권 분) 등과 같은 주ᆞ조연 배우들의 일상의 자연스러운 대사와 연기로 사건이 전개되기에 억지스러운 울음의 감정 흘림이나 낭비 따위가 없으며, 이런 비극적인 역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파적 감정 개입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여 관객들이 보다 더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특히, 극 중 황태술(유해진 분)등 광주의 택시 기사들은 외부인인 만섭과 광주라는 도시를 연결해 주는 하나의 유기적인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렇기에 광주 금남로 거리의 시민들을 향한 군인들의 총격 신(Scene)에서 관객들은 영화 초반부터 분위기 전반에 흐르는 가벼움 속에 억눌려왔던 폭발적인 격정이 한꺼번에 눈물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마치 가두어두었던 물이 조그만 구멍을 계기로 제방을 무너뜨리듯, 장중하고 비장한 배경 음악과 함께 비 오듯 쏟아내는 최루탄의 굉음, 부상자를 끌어내려는 시민들을 향해 날아드는 살을 찢는 총탄, 군화와 몽둥이에 짓밟히는 여학생의 처참함을 생생한 날 것 그대로 초고속 카메라로 생생하게 재현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숨 죽이게 되고,

'그 생경(生硬)한 고통의 감정은 그대로 눈물로 전이되어 흐를 수밖에 없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스틸 컷 <출처: 네이버 영화>

감독은  이 장면에서 그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날의 아픔을, 이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 같은 사실을 있었다는 것을 그대로 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으로써 관객들 사이의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Message),

그리고 메타포(Metaphor)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비극적 사건을 재현한 영화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가슴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영화가 다큐(Documentary)가 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차단한 것 같다. 과거 <고지전, 2011년>을 촬영하고 나서 '나는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었구나'라고 술회한 그의 경험도 어느 정도 이 영화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화는 5.18이라는 역사적 팩트를 다루고는 있지만 영화라는 하나의 픽션(Fiction)의 과정을 겪으면서, 실존 인물이나 가공된 인물이기도 한 만섭의 눈을 통해 우리에게 보다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슬픔이든 희망이든 간에 오롯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몫으로 남기를 바랬던 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송강호가 무대인사에서 밝혔듯이 이 영화는 단순한 슬픔만을 전해주는 영화가 아닌,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희망을 전해주려는 의도가 더 분명히 보여지는 이유다.

무대인사를 하고있는 감독과 출연진들

이 영화는 그 시대ᆞ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나이 50 중반을 넘은 이들에게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일 것이고, 그보다 더 젊은 사람들에게는 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에서나 봤을 법한 사건을 생생하게, 그러나 담담히 화면에 재현하고 있어 관객들이 그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시ᆞ공간을 뛰어넘어 조우하여 같이 공감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기에 더 큰 역사적 의미가 있다. 더욱이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몰랐던 더 어린 세대들이 이런 문제에 접하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에 더 그렇다.

당시 시민군에 의해 폭행당한 시민들의 모습            <출처:5.18 기념 재단>

게다가 철저한 고증을 통한 무대 배치와 간판, 배우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 등은 관객들을 긴 세월의 거리감 없이 80년대 광주의 그 거리로 들어와 지켜볼 수 있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1980년 광주의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내었다

그래서 영화 종반의 택시 추격전은 오히려 그 가일층 동화된 역사의 현장에서 관객들을 영화라는 하나의 픽션으로 이탈하게 만든 '옥에 티'가 아니었나 생각될 정도다.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일부는 감독의 과한 영화적 연출이 불러온 '무리수'라고까지 폄하한다.

영화 종반 추격신의 스틸 컷( 영화 메인 예고편의 캡쳐)

그러나 상업 영화의 오락적 재미와 함께 끝까지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롱테이크(long take)로 본다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영화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시ᆞ공간과 상영 시간의 한계, 그리고 아이디어가 가미된 창작물의 특성상 팩트가 아닌 픽션으로 봐야 하지만 이 영화는 그마저도 뛰어넘는 한국 현대사의 잔혹한 기록이라는 역사적 사실성과 1980년 광주라는 소도시의 직ᆞ간접적인 재현 즉, 공간의 구체적 다면화(多面化)로 더 이상 픽션이 아닌,


우리 역사의 살아 숨 쉬는 한 공간이었고 삶과 죽음의 현장이었다.

또한 그것은 단순히 지나간 역사의 한 기록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ᆞ사회의 부조리하고 부패한 현실과도 같은 '숨 막힘'이 있기에 우리에게 더 큰 울림과 메시지로 다가온다.

살아생전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의 모습과 당시 힌츠페터가 담은 광주 현장에 대한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한국'은 전세계에 5.18의 진실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출처:KBS>

마지막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에서 실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죽기 전에 5.18 당시 그와 함께하였던 '김사복 씨'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얘기하는데 끝내 만나지 못하고 2016년 1월에 그는 숨을 거둔다. 그래서 영화의 실제 두 주인공이 만나지 못해 진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지만 한편으론 만나지 못했기에 더 진한 여운이 이 영화의 대미(大 尾)를 더 깊게 장식한다.

그것은 5.18 당시 숨져간 희생자와 유가족이 다시는 만날 수 없고 다시는 서로를 부를 수 없는,

아픔의 메타포(metaphor)로 변이 되어

우리에게는 잔인한 빚으로 각인되어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마지막까지 아프다.
그들은 끝까지 만나지 못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영화

지난 겨울 우리는 언론을 통해 진실을 알고 그것을 뒤덮은 불의를 몰아내기 위해 촛불이라는 작지만 소중한 용기를 내었다. 비록 하나였을 때는 미약하였지만 그것이 모여 큰 촛불이 되었을 때 역사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 모여든 촛불의 집회 현장            <출처:JTBC 뉴스 화면 캡쳐>

이 영화에서도 그 같은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5.18 광주시민들은 자신들이 처한 진실이 무장된 권력에 의해 철저히 가려지고 외부로부터 차단당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왜곡 보도를 일삼는 방송국을 방화하는 등의 투쟁에 하나뿐인 목숨도 내건 것이다. [※ 당시 기록(위키백과 등)으로 보면 시민들은 광주 항쟁을 무장 폭도들의 난동 따위로 왜곡 보도를 한 광주 MBC 사옥을 3차례나 방화하였다. 이 사건과 관련해 여담이지만, 그 후 32년 만인 2012년 5월 20일 광주 KBS, 광주 MBC는 5·18 왜곡 보도와 관련한 '32년 만에 쓰는 반성문'에서 "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때 당시 우리는 언론이 아니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무릎을 꿇고 진실을 알리지 못했던 저희의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라고 밝혔다. 이 말 한마디 하는데 무려 30여 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5.18 당시 광주 MBC 방송 사옥이 시민들에 의해 전소된 모습 밎 당시 언론들의 왜곡된 보도 자료 <출처: 위키백과 등>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한 방화가 아닌 광주 시민들의 최소한의 생존에 대한 자구책으로, 광주 시민들의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상에 알려달라 " 는 간절한 울분과 두려움에 찬 절규였다.

그에 관해서 서울대 '최정운 교수'는 자신의 저서 <오월의 사회 과학>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5·18의 경우 군부는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였고 광주 밖에서는 아무도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군부는 관객석을 봉쇄하고 광주에만 제한된 폭력 극장을 만들었고 관객이 없는 이상 비폭력은 아무런 전술적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 관객의 부재는 공수부대의 폭력이 부당함을 호소하고자 하는 광주시민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159쪽)


실제 5월 27일 광주 항쟁의 마지막 격전의 날 전남도청에서 끝까지 항전하던 시민들이 공수부대 등 정부의 진압군에 의해 발생한 사상자는 거의 1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기록은 전하고 있다. [5·18 민주화 운동 관련 보상자 통계를 보면 사망자 154명 포함, 정부 피해 보상금 수령자는 총 4362명(공식적으로 인정된 보상자)이고, 국가 기록원의 기록물 중 당시 '사망자 처리 일지'에 의하면 사망자 중 군인이 23명, 경찰이 4명, 일반 시민이 162명이다.]

그때의 참혹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통계 숫자다. 이는 당시 대표적인 저항 시인인 김남주 시인의 시 <학살 2>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 학살 2 中 / 김 남주 -

광주광역시가 2009년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29주년을 맞아 당시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을 집계한 결과, 사망자가 163명, 행방불명자가 166명, 부상 뒤 숨진 사람이 101명, 부상자가 3,139명, 구속 및 구금 등의 기타 피해자 1,589명, 아직 연고가 확인되지 않아 묘비명도 없이 묻혀 있는 희생자 5명 등 총 5,189명으로 확인됐다.

5.18 당시 진입군에 의해 수없이 죽어간 많은 시민들의 모습 <출처: 국가 기록원>

그렇다면 당시 이와 같은 기록에 의하면, 학생들을 비롯한 시민군도 총기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왜 군인이나 경찰에 비해 시민들에게서 유독 많은 사상자가 나왔던 것일까?

그 이유는 2016년 '맨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창비>의 한 구절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그녀는 구할 수 있는 모든 5.18 관련 자료들을 근거로 이 소설을 집필하였다고 에필로그에서 밝혔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117쪽 )

그날이 남긴 이 같은 수많은 전언들은 우리에게 5.18과 같은 사건들은 두 번 다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다.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김영일 부장판사)는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12·12, 5·18사건 1심 선고공판에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징역 22년 6월을 각각 선고했다

그러나 아직도 5.18 당시 최초 발포 명령자 조차 명확히 규명되지도 않은 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북한군이 개입된 빨갱이들의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버젓이 백주대낮에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고 있으며, 그깟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에 불과한 권력의 획득과 찬탈을 위해 수없이 많은 죄 없는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를 저질렀던 자들이 아무리 정치적 사면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 도덕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인데도 양심은 어디에 저당 잡힌 것인지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부끄럼 한 조각 없이 살아가며 오히려 회고록 따위를 써서 그 책임을 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다행히도 이와 관련해 광주지법 민사 21부(부장 박길성)는 4일 “5·18 민주화 운동 등 역사를 왜곡했다”며 5월 단체와 유가족이 제기한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인용 결정을 내렸다.]

5.18 당시 보안사령관이자 최고의 실권자                        <출처: JTBC 썰전 화면 캡쳐>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5.18 기념식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에 대한 군의 최초 발포 명령 등을 포함한 진상 규명을 약속한 바 있으며, 국정 개혁 과제의 일환으로 제2기 진실ᆞ화해 위원회를 다시 발족하여 5.18 관련 전남 도청 헬기 총기 난사 의혹 등을 다시 조사할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고 하니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진상 조사가 이루어져 가엾이 죽어간 영령들과 유가족들에게 작은 위로나마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이 영화를 본 모든 분들의 공통된 의견이 아닌가 한다.

지난 5.18 기념식에서 5.18 정신을 강조하는 대통령             < 출처 : JTBC 뉴스 >

지금 우리는 어두운 과거를 철폐(撤廢)하고 미래로 가는 역사의 과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미래가 아름다운 장밋빛 청사진이 될지, 아니면 5.18과 같은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터가 될지는 37년 전 광주 시민들과 이 영화 의 '만섭'과 그리고 독일 기자 '피터'와 같이,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작은 용기임을 이 영화는 가르쳐주고 있다.'

영화 포스터 최루탄 속을 달리는 택시는 '아직도  5.18 은 끝나지 않고 달리고 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 참고로 이 영화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5.18 민주화 운동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배경 즉, 1979년 10.26, 12.12나, 1980년 5.17 신 군부의 계엄 전국 확대 조치 등은 대략적이나마 알고 보러 가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술하였듯이 이 영화는 그런 면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여 친절히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관객의 몫으로 남기기 때문입니다.

영화 초반 서울 도심의 시위 현장 스틸 컷


■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사건의 전개 : https://namu.wiki/w/5.18%20%EB%AF%BC%EC%A3%BC%ED%99%94%EC%9A%B4%EB%8F%99


덧붙임; 김사복 씨 이름에서 유추한 '사북사건'

사족이지만 영화에서 피터 기자가 김만섭에게 이름을 묻자 담뱃값에 새겨진 '사복'이라는 문구를 보고 '김사복'이라는 이름을 적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 엔딩 크레딧에도 나오지만 위르겐 힌츠페터 씨가 죽기 직전까지 자기와 함께했던 김사복 씨를 찾았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 이유에서 구한 제작진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은데(아마 당시에 위르겐 힌츠페터 씨 본인도 김사복 씨가 담뱃값에서 유추해 이름을 적어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필자가 이 '사복'이라는 단어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 기억을 되새김질해서 찾아보니 바로 1980년에 있었던 '사북(舍北) 사태'였습니다. 비록 '복'과 '북'은 엄연히 다른 글자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어감이 비슷하여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약 당시에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를 도운 택시 운전사가 이 사북 항쟁을 직ᆞ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노동자나 그와 관련된 시민이었더라면 단순히 담뱃값이 아닌, 여기서 유추해 이름을 '사복'이라고 적어주지는 않았나 하는 다소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나름 개연성 있는 추측을 해봅니다. 게다가 이 사건은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이, 1980년 노동 운동(인천제철, 일신제강, 동국제강, 원진레이온)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였던 이 '사북 탄광 노동항쟁'은 1980년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회사 측의 착취와 어용 노조에 반발해 정선군 사북읍 일대에서 일어난 탄광 노동자들의 총파업 사건으로, 5.18 사건의 기폭제가 된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의 시대적 동기의 발단이 된 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태로 신군부의 전두환 계엄 사령부 하의 ‘사북 사건 합동수사단’은 200여 명의 광부와 주민들을 연행해 가혹행위를 했음이 후에 드러났고, 이때 검찰은 31명을 구속 기소하고 50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등 81명을 군법 회의에 송치하여 주모자 등을 계엄 포고령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으며, 7명은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인 이원갑 씨는 “파업이 끝나자 정선 경찰서에 세워진 합동수사본부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보안사의 고문기술자들에게 고춧가루 고문, 물고문, 통닭구이 고문 같은 살인적인 고문과 폭력에 시달렸다”라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그 후 2005년 그는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습니다.

*관련기사: http://m.jungang.co/news/articleView.html?idxno=4240

■ 본 글에 영화 <택시운전사>의 삽입된 자료 화면(스틸 컷)은 (주)쇼박스에서 제공한 메인 예고편의 영상을 캡처한 화면과 포토 사진입니다.


● 참고 문헌 및 기사

ᆞ오월의 사회 과학(최정운 교수/ 1999)

ᆞ나의 칼 나의 피(김 남주/ 1987)

ᆞ소년이 온다(한강/ 2014)

ᆞ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위키백과

ᆞ광주 MBCᆞKBS 노조, '5.18 왜곡보도'32년 만에 사과(오마이뉴스/ 2012.5.20)

ᆞ5.18 때 광주로 잠입한 독일 기자, 그는 왜 망월동에 묻혀 있을까( 아시아 경제/2017.8.17)

ᆞ"33가지 대목 허위"... 법원, '전두환 회고록' 판매 금지(JTBC 뉴스/2017.8.4)

ᆞ<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만섭의 시선이 지금 우리의 시선"(씨네 21/2017.8.3)

ᆞ5.18 기념 문화재단- 기억해야 할 5.18 민주화운동

ᆞ국가 기록관 광주 민주화 운동 자료 총서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