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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Dec 21. 2022

부러진 팔 효과

지금 눈앞에 이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자전거에 관한 추억                              

돌아보니 참 많은 자전거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동네 공터에서 자전거를 배우기 위해 빙빙 돌았던 그 기억이 시작점이다.  

    

당시 우리 집에 자전거가 있었던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던 기억은 난다. 누구에게 배웠냐고? 글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혼자 터득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시작은 쓸쓸하고 공허한 느낌으로 남아 있다.

     

아마도 자전거를 탈 줄 모르면 시대에 뒤처지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무릎이 다 까져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기를 쓰고 배웠다. 배웠더니 쓸모가 있었다. 정말이다.     


대학생이 되면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갔다. 걷기에는 멀고, 버스를 타기에는 애매한 거리에 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정문 앞에 완만하지만 아주 긴 오르막길이 있었는데 아침마다 낑낑대며 거길 올라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냥 자전거 타는 걸 관두고 버스 라이프를 시작할 걸 그랬다. 괜히 아침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매연을 들이마신 덕분인지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뭐, 이유가 그게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튼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니면서 겪은 일들은 참 다양했다. 다양했다는 말로는 그것들을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우니 조금 자세히 이야기해보겠다.     


우선은 자전거를 훔쳐 가는 사람들이 아니, 놈들이 생각보다 학교에 득시글댄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점심을 먹고 나오니 안장이 사라졌다.     


안장 없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는 없어 다음 날 안장을 사 왔는데 이번엔 뒷바퀴가 없는 게 아닌가? 너무 황당하여 일단은 그대로 두었더니 일주일 뒤 자물쇠가 채워진 부분을 제외하곤 모든 부분이 뜯겨 나가 있었다.     

난 그때 생각했다.

    

‘방심하면 이렇게 필요한 거 뭐든 뜯어가는 게 세상이구나.’

     

내 자전거는 그 상태로 3개월간 흉물처럼 남아 있다 철거되었다. 내가 머뭇대는 사이에 그 모습이 교내에 퍼져 자전거 도둑질의 대표 유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그 자전거가 내 자전거라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자전거를 샀다.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인터넷으로 싸게 주문했다. 그랬더니 자전거가 조립되지 않은 채로 온 게 아닌가? 중국어로 써진 설명서를 하루 종일 들여다보며 조립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립된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누비다 여자 친구가 생겼다. 수영이는 늘 내 자전거에 뒷자리가 없음을 타박했다. 태워주지도 않을 거면서 뭐 하러 자전거를 타냐고.   

  

난 자전거 가게에 가서 뒷자리를 달았다. 수영이를 태우고 학교를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즐겼다. 도서관에서 수영이를 태우고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꽤 긴 내리막길을 지나니 가속이 붙어 멈출 수가 없었다.  

   

겁이 난 나는 브레이크를 최대한 당겼고 우리 두 사람은 하늘을 날았다. 학교 중앙 광장에 있는 분수 연못으로 골인. 다행히 풍덩 빠진 덕에 다친 데는 없었다. 흠뻑 젖은 채로 연못을 나온 우린 쓴웃음을 지었다.    

 

분수연못 골인 사건으로 자전거가 박살 났다. 다시 새로운 자전거를 살 수밖에 없었다. 새 자전거는 자전거 가게에서 직접 골랐다. 이걸 사기 위해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내가 산 자전거 중에 가장 비싼 자전거였다. 일반 자전거에 3배는 되는 금액을 주고 사온 자전거를 고이 모셔와 기름칠도 하고 커버까지 덮어 보관했다. 그 무렵 난 대학생활 처음으로 해외배낭여행을 떠났다.    

 

보름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어두운 아파트 복도를 지나니 오랜만에 만나는 문이 나타났다. 그 문 앞으로 불이 켜지자 복도에 세워두었던 새 자전거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그저 흔적뿐이었다.  

                             

굴러들어 온 자전거                                                                      

이후로 자전거를 사지 않았다. 제대로 한 번 타보지도 못한 자전거를 잃은 후 다시는 자전거를 사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15년이 지났다. 난 그 사이에 졸업을 하고 직장에 다녔다. 첫 직장을 꽤 오랜 시간 다녔고, 경력을 쌓아 다음 직장으로 이직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결혼도 하고, 아파트도 장만했다.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던 중 고등학교 동창들과 모임을 가졌다. 삼십 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린 친구들은 각자 취미 생활에 집중하고 있었다.

     

“뭐 재미있는 일 없냐?”

“난 요즘 골프 배우잖아. 니들도 해봐. 생각보다 재밌다?”

“골프는 무슨, 난 테니스만 10년이야. 돈도 적게 들고.”

“다들 귀족이구만. 난 요즘 라이딩에 재미 붙였잖아.”

“그래, 그래. 나도 요즘 라이딩한다.”

“자전거 뭐 타는데? 로드?”

“100만원 이상은 줘야 자전거 같은 거 타지.”

“나는 150 줬다.”   

  

동창회 이후 친한 친구들끼리 라이딩 모임을 결성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가까운 곳으로 라이딩을 다녔다. 난 자전거가 없어 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네. 뭐 해?”

“나? 근무 중이지.”

주말인데 근무?”

“여기가 원래 그래. 순환 근무. 주말도 없다.”

“언제 라이딩이나 한 번 갈래?”

“라이딩? 난 자전거 없는데?”

“자전거야 사면 되지. 적당한 걸로 하나 사.”

“뭐, 생각해 보고.”

“그래, 다음 달에 한 번 모임 잡아 볼게.”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자전거를 사는 건 힘들 것 같았다. 주말 근무도 많은데 한가롭게 라이딩할 여유가 있겠나 싶었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갈 때쯤 전화가 왔다. 근수였다. 녀석은 중학교 때부터 함께 했던 친구 놈이다.

    

“퇴근했냐?”

“이제 해야지. 주말인데 좀 쉬었남?”

“뒹굴뒹굴했지 뭐.”

“좋겠다. 웬일로 전화?”

“아, 자전거 남는 데 탈래?”

“자전거?”

“그래, 이거 준식이 녀석이 준 건데 나한테는 너무 큰 거 같아서, 타보니까 다리가 저리네.”

“그래? 좋은 건가?”

“어. 이거 좀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도 살 때 80만원은 준 거래.”

“80만원?”

“그래, 지금 중고로 팔아도 20은 받는 거다.”

“오. 그럼 팔지 왜?”

“야, 나도 받은 건데 팔려니까 좀 그렇더라.”

“나야 뭐, 주면 좋지.”

“그래, 비싼 건데 나중에 밥이나 한 끼 사라.”

“그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쳤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검색하고 있는데 근수 녀석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까 자전거, 지금 갖다 줄까?”

“지금?”

“그래, 운동 겸해서 갖다 줄게. 올 때는 좀 태워주라.”

“그래, 그래. 근처 오거든 전화해라.”

“알겠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동네에 폭우가 쏟아졌다. 역시나 자전거와 나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근수에게 전화했더니 소나기라 괜찮을 거란다. 정말 10분 정도 지나니 비가 멈췄다.   

  

아파트 정문으로 내려갔다. 근수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생각보다 꽤 괜찮은 자전거였다. 붉은색 바탕에 하얀색 포인트가 새겨진 프레임이 인상적이었다.  

   

“야, 이거 괜찮아 보이는데?”

“그럼, 이거 아직도 팔면 20은 받아!”

“알겠다. 알겠어. 그놈의 20. 배고프지? 뭐 먹을래?”  

   

우린 감자탕집으로 향했다. 녀석과 함께 해장국을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신 뒤 집까지 태워다 주고 돌아왔다.                               


사고 싶다는 말                                                            

휴일 아침, 눈을 뜨니 자전거 생각이 났다. 아파트 복도에 자전거 두 대가 서 있었다. 한 대는 엄마가 타던 자전거, 나머지 한 대는 어제 받은 그 자전거다.

    

엄마가 타던 자전거는 5년 전에 어버이날 선물로 사드렸던 자전거로 하이브리드 자전거였다. 근데 엄마가 갑자기 아프면서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되었다. 여성용이라서 내가 타기엔 좀 작은 편이었기에 그냥 세워만 두고 있었다.

    

안 그래도 좁은 복도에 자전거가 두 대나 있으니 지나가는 게 어려워졌다. 한 대는 처분 해야 했다. 엄마 자전거를 처분하기로 마음먹었다.  

   

거의 2년 넘게 세워둔 자전거는 바퀴에 바람이 빠져 있었다. 먼지도 많이 앉아 있어서 오래된 티가 났다. 아내는 자전거를 버리자고 했다.

     

“에이, 버리긴 아까운데?”

“그럼?”

“이거 중고거래 앱에다 올려볼까?”

“누가 살까?”

“뭐, 싸게 올리면 살 것도 같은데?”

     

난 자전거를 가지고 아파트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는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는 기계가 있었다. 서툰 솜씨로 바퀴에 바람을 넣고 물티슈로 프레임과 안장을 닦았다. 그러고 나니 깔끔해졌다. 팔아도 될 것 같다.

     

사진을 8장 정도 찍어서 중고거래 앱에 올렸다. 가격은 4만원. 살 때 28만원은 준 거 같은데 4만원에 팔려니 아깝다. 하지만 빨리 처분하고 싶어 싸게 올렸다.

    

역시 싼 가격은 이목을 끈다. 올린 지 10분 만에 메시지가 왔다.   

   

“혹시 팔렸나요?”

“아니요. 아직입니다.”

    

그 후로 답이 없었다. 좀 있다 다시 다른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혹시 거래 중인가요?”

“아뇨. 아직이요.”

     

그러고는 또 연락이 없다. 고민 중인가? 30분쯤 지나자 또 메시지가 왔다.  

   

“Hello”  

   

응? 이건 뭐지? 영어로 시작된 그 메시지는 외국인이 보낸 메시지였다.

    

“자전거 상태는 좋은가요?”

“네, 물론이죠.”

“사고 싶다”   

  

사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니 그 외국인은 번역기를 돌려 겨우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직접 가져가실 분만 거래하고 있어요.”

“주소를 명확하게 알려주세요.”  

   

그냥 봐도 번역기 같은 말투였다. 집 주소를 보냈더니 답이 왔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장사를 하기 어렵습니다. 자전거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음, 그러니까 멀어서 안 된다는 말인가? 자전거 사는 게 낫겠다는 말? 난 그냥 알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당신은 사이클을 가져올 수 있습니까? 내 여동생의 딸에게 줘. 가능성이 있다면 생각해 봐.”

    

라는 메시지가 왔다. 답답했다. 와서 가져가야 된다고!    

 

“미안합니다. 거리가 멀어 가져다 드릴 수는 없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이상한 답을 했다.    

 

“거래를 성사시키겠습니다. 채팅에 감사드립니다.”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맥락으로 보아 포기했다는 말 같다. 이후에도 몇 사람이 메시지를 보냈고 난 아직 거래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냈다.     


그러다 저녁 무렵 온 메시지는 꽤 적극적이었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같은 동네입니다.”  

   

결국 자전거는 그 사람이 샀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함께 나타나 자전거를 살폈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좌 이체해 주었다. 난 그 돈으로 아내와 함께 카페로 향했고, 팥빙수를 먹으며 더위를 식혔다.

                                                      

부러진 팔 효과                              

이제 남은 자전거는 한 대. 근수 녀석이 준 자전거다. 꽤 좋은 모델인 모양이다. 조금만 밟아도 쑥쑥 나가는 게 느낌이 다르다.  

   

이 녀석이 나에게 온 이유는 부러진 팔 때문이었다. 무슨 말이냐고? 준식이 녀석은 이 자전거를 타고 라이딩 중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강변 자전거 도로를 달리던 녀석은 휘어진 도로에 대비하지 못하고 넘어졌다.

     

“으악!”  

   

비명과 함께 도로변 풀숲으로 넘어진 준식은 왼손으로 땅을 짚다 팔이 부러졌다. 병원에서 기브스를 한 녀석은 아내에게 크게 혼나고 자전거를 처분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리하여 자전거를 팔고자 했으나 일이 바빠 그러지 못하고 그냥 근수에게 줬다. 근수는 자전거를 잘 정비했다. 녀석도 원래 갖고 있던 오래된 자전거를 처분했다. 준식에게 받은 자전거의 타이어도 바꾸고 페달도 교체했다.

    

그러나, 한 번의 라이딩을 갔다 온 후 생각이 달라졌다. 녀석의 키에는 맞지 않는 사이즈였다. 그러더니 녀석은 새 자전거를 사기로 했다. 난 이 대목에서 녀석이 이해가 되지 않아 재차 물었다.

     

“그러니까, 멀쩡한 자전거 두고 왜 또 새 거 사는데?”

“내 키에는 안 맞다니까.”

“그럼, 중고로 팔면 되잖아.”

“아까 이야기했잖아. 나도 받은 건데.”

“음, 그래서 새 자전거 산다고?”

“그건 그러니까.”

“그러니까?”

“보너스 받았다.”

“뭐? 보너스?”

“그래. 성과급 나왔다.”

“그렇구먼. 뭐 살 건데?”

“벌써, 딱 봐놨지.”

     

녀석은 휴대폰을 꺼내 자기가 살 모델을 검색해 보여줬다. 가성비가 뛰어난 최신 모델이었다.  

   

아파트 복도에 세워진 자전거를 보니 준식이 녀석의 부러진 팔이 생각났다. 동창회에서 녀석이 팔 부러졌다고 이야기했을 때만 해도 몰랐다. 그게 나에게 이 자전거를 인도할 줄이야.  

   

난 저녁을 먹고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면 소화도 되고 운동도 될 것 같았다. 역시 좋은 자전거는 달랐다. 쌩하니 잘 나간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니 기분 좋았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수십 가지의 아이스크림 중 하나를 골랐다. 날씨가 더워서 아이스크림이 곧 녹을 것 같아 바로 먹기 시작했다. 입 안 가득 달달함이 퍼진다.

     

가게 밖으로 나왔다. 자전거를 묶어둔 가로수 앞이 허전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세상은 그냥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만 허전했다. 친구 녀석의 부러진 팔을 떠올리며 집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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