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다. 스타벅스에서 봄을 맞이해 새롭게 출시한 시그니처 메뉴. 달달한 슈크림 라떼를 마시다 그 안에 떠 있는 얼음을 보았다. 얼음은 납작했다. 납작한 얼음이 라떼에 둥둥 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있다 다시 한 모금을 마시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얼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얼음을 만든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스타벅스는 시원한 음료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로부터 얼음 샀을 것이다. 그 누군가는 얼음을 만들어 스타벅스에 공급했다. 얼음 만드는 일을 하지만 나름대로 스타벅스라는 고급 브랜드에 납품을 한다는 자부심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한 집안의 가장일 수도 있고, 젊은 사장일 수도 있으며, 걸을 때마다 한쪽 다리를 절뚝이는 독신남일지도 모른다. 또는 독신녀이거나.
그 사람이 만든 얼음을 입 속에 넣고 와그작 씹으며 내가 주문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스타벅스의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할 때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봄맞이 특별 메뉴라는 사실과 슈크림으로 만든 휘핑크림을 올려 준다는 사실이었다. 그 외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얼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얼음을 만든 사람은 어땠을까?
그 얼음을 만들며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 앉아 벚꽃 핀 거리를 구경하는 나와 내 아내에 대해 상상할 수 있었을까? 얼음으로 만들 물은 어디서 구했을까? 그 물은 깨끗한 물일까? 얼음을 만든 사람에게 불행이 닥쳐 세상을 증오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또는 그녀가 누군지는 몰라도 죽어보라며 독극물로 얼음을 만든다면? 내가 그 얼음이 담긴 슈크림 라떼를 마시며 봄을 즐기다 병원으로 실려간다면? 병상이 모자란 그 응급실의 침대 하나를 내가 차지해 더 급한 환자가 자리를 잡지 못했다면? 다른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목숨을 잃었다면?
그 사람의 장례식장에 우르르 몰려가 조문했던 그의 직장동료들이 스타벅스에서 슈크림 라떼를 시켜놓고 이야기꽃을 피운다면 얼음을 만든 사람의 불행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자리가 모자라 다른 병원으로 돌려보낸 그 병원에게서 또는 그 병원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나에게서 죽음의 원인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얼음 만든 사람의 불행이 걷잡을 수 없는 전염병처럼 번져 우리 일상을 휩쓸고 지난다는 것을 상상하는 지금 이 순간의 봄, 얼음, 그리고 연결에 대해,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물론, 봄은 봄일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