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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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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효봉 Mar 19. 2020

텅 빈 놀이터

텅 빈 놀이터를 보았다.


어린 시절, 텅 빈 놀이터는 내 마음의 구멍이었다. 바람 부는 날이면 그 구멍은 한 없이 넓어져 내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친구들이 없는 놀이터에서 죄 없는 풀들을 걷어차다 시소에 앉으면 모래를 지나는 개미들이 보인다. 나뭇가지를 주워 개미들을 이리저리 갈라놓아도 대열은 이내 원상 복귀되었다. 개미들을 부러워했다. 같이 다니고, 같이 살고, 같이 이루는 그 존재를.


사랑에 목말랐던 여린 마음의 초등학생은 혼자 그네를 탔다. 텅 빈 풍경이 위로 가득 차올랐다 아래로 푹 꺼지기를 반복한다. 천천히 힘을 잃고 수평이 맞춰질 때쯤 누가 따뜻한 손길로 그 아이의 그네를 민다. 고개를 돌려 마주친 그 사람은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 아무도 없던 그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달리며 놀았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나도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의 그네를 밀어주고, 달리고, 손 잡았다. 인터넷을 뒤적거려 웃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들을 모았다. 어설프게 마술도 배웠다. 운전을 시작하고부터는 아이들과 온 동네를 돌아다녔고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 함께 웃고 떠들었다. 배낭 메고 해외에서도 이불을 박차고 잠든 아이들의 방을 돌아다녔고 무엇이 그리 슬픈지 모를 그 이야기들을 듣고 또 들었다.


텅 빈 놀이터를 보았다.


새벽, 서재의 창문 앞에 서서 그 공간을 눈에 넣었다. 지난 시간, 내가 사랑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는 왜 그 소리 들리는 곳 주변을 떠나지 못해 서성 댈까? 속 시원한 이별이라 생각했건만, 며칠 뒤에 울음이 터져 나오는 연인처럼 생뚱맞은 눈물이 난다. 차고 넘쳐흘러도 자존심에 밀려 닦을 줄 모른다. 턱 아래에 대롱대롱 맺힌 마음을 향해 햇살이 든다. 천천히 떠올라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온다. 나를 스쳐지난 것들을 매만진다. 그 온기와 다정한 표정들. 그냥 슬프게 스며든다. 달려와 내게 안겼던 녀석들의 냄새와 꼼지락 거림. 한 줌의 기억. 이렇게 멀리 서서, 다시 슬퍼한다.


말없이, 떠나고,

조용히, 손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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