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였어요. 아내와 함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었어요. 노트북을 켰지만 뭔가 떠오르는 게 없어 난감했죠. ‘함께 시간을 보내는 행복, 여행’이라고 쓰고부터는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어요. 쓸거리가 없는 게 문제인 것 같아 인터넷에서 자료 검색을 시작했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다가 행복감을 높이려면 혼자보다 여럿이 좋다는 내용의 기사를 발견했어요. 순간 이거다! 싶었죠.
‘Journal of Happiness Studies’를 통해 발표된 이 연구는 이스라엘 바르일란대(Bar-Ilan) 연구팀이 진행했는데요. 사회적 상황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파악하기 위해, 10일간 학생 155명을 대상으로 혼자, 또는 함께 있는 상황에서 느꼈던 감정에 대해 물었어요. 학생들은 하루 3번씩 자신이 느낀 감정을 이야기했죠. 스스로 선택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 변화에 대해서도 답했어요. 40%는 혼자였고, 60%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해요.
설문결과, 학생들은 혼자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큰 행복감을 느꼈어요. 특히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했던 것으로 나타났어요. 반면,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억지로 함께 있을 때는 행복도가 떨어졌어요. 연구팀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감정을 극대화하는 반면, 혼자 있을 경우 더 차분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음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연구를 진행한 바르일란대 심리학과 우지엘 교수는 “사람들은 타의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혼자 있을 때 기분이 더 나아진다. 또한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행복을 극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라고 설명했어요.
저는 이 실험결과를 찾은 후 바로 앞에서 글을 쓰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어요.
“이것 좀 볼래? 사람들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행복하대! 근데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오히려 행복도가 낮아진대!”
제가 흥분해서 실험결과를 막 설명하자 아내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말하더군요.
“뭐? 그걸 실험까지 해야 알아? 그런 건 세 살짜리도 알겠다.”
순간 아내와 저는 웃음이 빵 터졌어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행복하다고. 그러게요. 이걸 실험까지 해야 아는 걸까요? 저는 왜 이 당연한 걸 설명하지 못해서 멀리 이스라엘에서 연구한 내용까지 끌어와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 걸까요?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웃으면 금방 행복해질 수 있는데 말이죠.
‘우린 눈앞에 있는 행복을 두고 어딘가 먼 곳을 찾아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요? 왜 눈앞의 행복을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요?’라고 따져 묻고 여러분이 ‘그래! 왜 그걸 몰랐을까? 지금부터 알아차려보자!’라고 결심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닐 거예요. 대신 이렇게 묻고 싶어요. ‘우린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는 그의 책 <난문쾌답>에서 인간을 바꾸는 세 가지 방법에 관해 이렇게 말했어요.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건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달라질 수 있는 방법이 시간을 다르게 쓰고, 사는 곳을 바꾸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라면 뭐가 필요한 걸까요? 맞아요! 두말할 것도 없이 여행이에요.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평소와는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쓰고, 새로운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 여행이 곧 우리를 달라지게 만들 거예요. 그리하여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눈앞의 행복을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저는 아이들과 여행하는 일을 오랜 시간 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특별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길 꿈꾸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아이들을 만났어요. 주말마다 초등학생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 다녔고요. 방학 때가 되면 청소년 아이들과 배낭을 메고 유럽, 일본, 미국 같은 나라의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어요. 자꾸 다니다 보니 나중엔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노하우도 생겼어요. 게다가 여행을 통해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꾸준히 보다 보니 여행이야말로 최고의 교육이라는 확신까지 얻게 됐어요.
그러다 책 쓰기를 시작했어요. 책을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동안 여행하며 만나왔던 아이들 때문이에요. 정말 각양각색의 아이들을 만나며 별의별 일을 다 겪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아이들의 외로움을 만날 때였어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의 눈물 속에서, 어느 낯선 나라의 낡은 숙소에서 내뱉는 아이의 슬픈 이야기 속에서 저마다의 외로움을 보았어요.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교도, 학원도 그 잘난 성적표도 아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 그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아이들이었어요.
아이들과 여행 떠나기 전에는 항상 부모님들에게 따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자연스레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와의 관계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부모님들이 많았죠. 저의 첫 번째 책 <여행육아의 힘>을 출간한 뒤에는 여러 곳에서 강연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때도 아이와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부모님들을 자주 만났어요. 어떤 부모님은 아이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서 고립된 것 같다며, 그날 처음 보는 저에게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거든요. 슬픈 표정의 부모님들에게서도 비슷한 외로움을 보았어요.
아이도, 부모도 외로운 이 상황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함께 사는 가족, 부모 자식 사이의 관계가 서로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무관심한 듯, 냉정한 듯 보여도 어쩔 수 없는 사랑은 결국 외로움을 낳으니까요.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여행 한번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일상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용기가 곧 여행이에요. 용기 내어 큰 광경 앞에 서고 새로운 장소를 떠돌아다닐 때 비로소 부모도 아이도 비좁은 헌 생각에서 탈출해 자유로울 수 있을 거예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