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할머니를위할 만큼결혼을하고 싶진않아.
엄마와 할머니가 다투었다.
다툰 날 나는 방 안에서 엄마와 할머니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내가 듣기엔 별거 아닌 일에 엄마는 예민해 보였고, 할머니는 화를 냈다가 진정되지 않는 엄마를 향해 미안하다 말했다가 또 화를 냈다가 반복했다.
그렇지만 섣부르게 그만하라고 중재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라도 당사자에게는 별거인 일이기에 저렇게 화를 내나 보다 싶었다.
할머니를 욕되게 표현하고 싶지 않지만, 할머니는 어디를 가나 트러블메이커였다. 물론 나에게는 한없이 사랑만 주시지만 엄마와 이모 삼촌들에게는 그렇게 비추어지지 않곤 한다.
오죽했으면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잘하지 않는 아빠조차도 '장모님은 왜 그렇게 매일 문제를 일으키셔?'하고 말하기도.
할머니와 엄마의 사이가 틀어졌다. 이번엔 진짜였다. 엄마는 나와 동생 그리고 아빠에게 전화를 차단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엄마에게 '너무하네'라고 답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가 하란대로 따랐다.
엄마와 싸운 직후 할머니는 집착스레 나와 아빠에게 전화를 해댔는데 두 사람 사이에 새우등 터지고 싶지 않아 우리는 모두 피해버렸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한 달 내내 할머니와의 관계에 대해서 많이 불편함을 가진 엄마는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밥을 먹고자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마음이 풀렸는지 풀리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자리는 잘 마무리가 되었는데 오랜만에 나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결혼에 대해서 몇 번이고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해야 나라에 좋은 일을 하는 거다.]
나라에 좋은 일을 하기 위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많이 낳아라 하는 건 너무 구시대적인 생각 아닌가. 이 말에 할머니에게 '세상이 변했어.'라고 하니 [그래, 이상하게 변하고 있어. 안돼. 그거 안 좋아]라고 답했다
[네가 이렇게 예쁠 나이인데 결혼 안 하고 있으니깐 안타깝다.]
[주변에 자리 알아봐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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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쉴 새 없이 나를 향해 결혼을 해야 한다며 종용하는 말에 '할머니 그만해'라고 적당하게 말했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굳이 인상을 쓰고 싶지 않던 나는 에둘러서 그만하기를 표현했지만, 반가운 감정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던 할머니는 그런 나의 감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러면서, [네가 빨리 결혼해야 손주도 보고 나도 좋지]라는 말에 난 속에서 성질이 버럭하고 올라왔지만 그 마저도 참았다.
결국 내가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가 아닌 할머니 본인을 위함이었으리라. 할머니 본인의 걱정을 덜고, 할머니 본인의 만족을 위해서였음이라.
그 말이 한동안 잊히지가 않았다. '오호라 결국 본인을 위해서 나한테 걱정하는 말을 쉴 새 없이 말한 거였구나'
그리고 최근 할머니가 또다시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에게 전화가 왔다. 무슨 연유인지 알듯했다. 전화를 받고 할머니는 자신이 걱정하고 있다며 조심스레 결혼 이야기를 또 꺼내렸는데 답답한 마음에
이런 전화 할 거면 하지 말라고 답했다.
내가 결혼하면 안하건 하건 할머니랑 무슨 상관이야? 할머니가 나를 위해서 뭘 해줄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할머니 걱정에 앞서서 나한테 결혼하라고 말하는 거잖아. 내가 왜 할머니의 말을 들어야 해? 이거 내 인생 아냐? 세상이 이상하든 말든 내가 알아서 할 일에 할머니가 불필요하게 왜 앞서서 걱정해? 결혼을 할머니가 해? 결혼해서 살면 다른 걱정은 끝날 거 같아? 결혼하면 애 낳아야 하지 않겠냐고 또 걱정하고 애 키우면서 살다 보면 또 다른 걱정하지 않겠어? 할머니의 걱정을 들으면서까지 내가 내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야. 할머니가 아무리 결혼에 대해서 걱정하는 말을 한들 내길은 내가 가. 할머니의 걱정으로 인해서 살고 싶지 않아. 늦으면 어때. 안 예쁠 때 가더래도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러니깐 내 걱정 그만해
쓴소리를 한참이나 내뱉었고, 전화는 끊겼졌다. 마음은 좋지 못했지만 한편으로는 한동안은 이런 전화나 걱정의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이타적인 사람은 없다. 이타적인 포장지 안에 이기적임이 들어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이기적 임의 선상 위에 있다. 할머니도 결국 손녀를 위한 걱정으로 포함하고 있지만 자기 눈에 보기 좋으려 걱정하는 포장지 안에 다른 속내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나야말로 결혼에 대해서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혼이 나 혼자 노력으로 되는 거라면 좋겠지만 결혼은 두 사람, 두 집안이 합해지는 과정인데 사람들은 '결혼해야지?''결혼 왜 안 해?'라며 쉽사리 물어온다.
당연하게 내 나이는 결혼을 해야 하고 할 예정이어야 한다는 듯이. 하하호호 웃으며 넘기지만, 미리 결혼한 내 친구들은 벌써 애가 둘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급하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다. 쟤가 애를 둘이나 낳을 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과 간간이 내색을 하는 부모님을 보면 죄송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겠어. 남들은 내 나이가 굉장히 많다고 여기지만 나도 처음 겪는 내 나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너무 어리고 미숙하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도 내가 갖춰졌을 때야 가능한 거지 무턱대고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니깐 그저 마음으로만 나를 향해 기도해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