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리바 Aug 13. 2019

회식은 까야 제맛!

우리의 작은 아우성

난 회사에서 꾀 당돌한 직원으로 통한다. 회식자리에서 이야기가 나오면 무용담처럼 '네가 제일 셌어' '너만 한 신입은 없었어'라는 말이 들려오기 마련이니깐. 그 말에 '제가요?'라며 어리둥절했다.

생각해보니 당시에 나는 초년생이었으니 (지금도 마찬가지) 궁금한 게 많았고 호기심이 무궁무진했고 질문도 참 많았다.

상사가 내심 어떤 곤란한 표정으로 대에충 얼버무릴걸 알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이건 어떻게 되는 건가요?'라는 질문. '이 내용은 어떤 내용인가요?'라는 물음들이 가득했다. 물론 의도한 질문들은 아니었다.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입사했기 때문에 크든 작든 실수들을 방지하고자 의무적으로 다 물어봤다. 조직생활에 적응하고 조직의 취향을 알고자 했던 나의 질문들이었다.


상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나의 회사 초창기 시절은 무지함을 가장한 골탕 먹이기였던 거 같다.(지나고 보니)

눈치를 매번 챙기고 다니지 않았기에 상사 입장에서는 곤란한 질문과 물음으로 곤란스러웠겠지만 난 순수한 의도로 묻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퇴근할 때면 모르는 게 너무 많아기도 했고, 항상 상사를 언짢게 하는 직원이었으니 '대리님 저 잘리는 건 아니겠죠?'라는 말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또 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상황대로 하는데 앞뒤 상황도 모른 채 어이없는 매뉴얼을 들이대며 이거대로 하라며 화 받이가 되면 (신입이 짜증과 화를 이유 없이 듣는 상황) 그날 퇴근할 때 우울한 마음과 '대리님 저 잘리는 건 아니겠죠?'라는 귀여운 걱정도 했었다.

신입 때의 나는 잘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즐거웠고 당차고 짓궂은 기억도 참 많지만,





드디어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들어오기 전 상사는 나에게 군기 잡지 말라고 넌지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이 좀 충격이 되었다. 내가 도리어 '제가 그런 이미지였나요?'하고 물으니 상사는 나에게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의 의미는 해석하고 싶지 않았다.


신입사원이 사무실에 인사하러 왔다. 긴 머리에 환한 웃음으로 각 잡히게 인사를 하는 당차고 예의 바르고 싹싹 바르고 적극적이고 어린 나이에 못지않게 굉장하게 센스가 넘치는 친구가 왔다.

신입은 집이 멀어서 역 근처까지 차를 운행해 줘야 할 때가 있을 수 있으니 역 근처와 집이 가까운 내가 가끔 카풀을 해주는 게 어떻겠냐는 상사의 요청에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점심에 밥도 몇 번 먹었고 데면데면한 시간들이 많았다.


어느 날 퇴근하기 전에 신입을 태워가라는 연락이 와서 마침 시간이 맞아서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같이 퇴근을 하게 되었다. 퇴근할 때 자기를 태워 주는 게 감사하다며 연신 이야기를 하는데 속으로 별것도 아닌데 이렇게 감사받을 일이 되는구나. 하면서 겸연쩍어했다. 그러면서 초창기의 내 모습이 떠올려졌다.

그때는 뭐든 감사하고 뭐든 감지덕지에 누구든 만나면 웃으면서 응대하고 그러고 집에 가면 뻗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간이었으니깐.


어색함 없이 차 안에서도 쭈욱 말이 이어지다가 상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신입은 이해할 수 없는 상사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나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그 상사에게 지난날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해주니 그간 쌓였던 무언가가 확 터져 나오는 걸 보게 되었다.

신입의 이런저런 말들에 의해 '아직도 그러셔?'라는 대답을 하면서 같이 고개를 끄덕여주고.

나 때는 이러저러했어. 이런 사건들도 많았지.라고 이야기를 해주니 '저는 저만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답이 들려져 왔다.

'나도 신입 때는 집에 가기 전에 대리님한테 저 잘리는 거 아니겠죠? 저 오늘 잘했나요? 항상 물어봤어'하며 웃어 보였는데 남일 같지 않은 신입의 모습에 괜스레 찡해지면서 내 직속 상사였던 대리님이 괜히 감사해졌다.



신입을 통해서 회식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회식을 빠져나가기 좋아하는 직원이었다. 회식 날짜를 정하라는 말이 나올 때면 '호리바 씨 이 날 시간 괜찮아?'라며 가장 막내인 나의 스케줄부터 확인했다. 항상 내가 요리조리 회식을 스킵하려고 했었으니깐. 대리님이 직격탄으로 나에게 물어볼 때면 나는 마지못해 '네'했다.


대리님이 사정으로 퇴사하셨다. 회식에 호의를 보이던 상사가 퇴사하니 더 이상 사원들끼리 뭉쳐서 회식을 하자고 모으는 사람이 없었다. 애사심이라는 것도 없거니와, 결국 연차가 그나마 많이 쌓인 내가 신입 환영회 겸 우리 모여서 회사 좀 씹어대자! 는 명목으로 회식을 주최했다.




회식은 자고로 상사 뒷담

회사에는 꼰대들이 존재한다. 게다가 남자 구성원이 많기 때문에 여자 직원들로써 아쉬운 부분들이 엿보인 적이 많기도 했다. 모든 걸 다 해달라는 건 아니지만 좋은 회사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회식에서는 역시나 이런 부분들이 안나 올 수가 없었다. 우리의 교집합이 되는 회사에서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회식 테이블에서 주거니 받거니 했다.

돈을 그만큼 받으면서 왜 책임감 없이 일을 하려는지에 대해서 의문도 들면서 방패막이가 되어줘야 할 상황에서 일단 피하고 보는 상사들을 향해 울화를 터트리기도 했고, 꼰대 마인드의 상사들에 대해서도 화를 내기도 했다. 역시나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면,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진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크게 들기도 했다. 특히나 내가 이끄는 팀에 대해서는 팀이 유지되는 동안이라도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그리고 공과 사를 구분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등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사무실 직원들이 모여서 상사들 뒷담을 시작하는데 얼마나 즐겁고 유쾌하던지.


그 회식자리를 통해 내가 얼마나 초년생의 길에서 멀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연차가 쌓이는 위치에 있다 보니 '과거의 나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했던 거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왜 그토록 내가 피하려 했던 회식을 어른들은 싫어도 함께 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회식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왔다. 뒷담부터 시작해서 각자가 맡은 회사일에 대한 시스템 개선, 그러다가 스스로의 생활등. 평소에 잘 느끼지 못했던 그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까지도.

회사에 있었던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도 철없었고, 다양한 모습의 상사들을 마주했다. 나처럼 철없는 모습을 보았고, 가족같이 살뜰하게 대해주다가도 자기 이득이 아니면 모르쇠 하는 모습도, 서로가 서로의 뒷담을 까는 모습도, 그러면서 또 즐겁게 커피를 노나 마시며 떠들기도 하고.

그렇게 사회생활을 겪으며 나는 어떤 방향의 어른으로 가야 하는지 내 인생을 조금씩 채워서 생각하게 된다.

그런 다짐들에 늘 생각이 되는 단어는 '책임감'이었다. 어른이 될수록 책임감이 결여되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면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지금의 내 마음은 '내가 그 상황이 된다면 책임 저야지!'라고 단정 짓겠지만, 또 내가 만약 현재의 회사 어른들의 나이가 되고 직무를 맡게 된다면 나의 입장은 어떨는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나도 먼 미래의 나를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적어도 지금 드는 이 마음들을 쉽게 흘려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회식 이후 신입은 조금 가벼워진 듯했다.

본인만 부족한 게 아니라 회식자리에 있었던 우리 모두 부족함에서 시작했다고 위안을 주고 용기를 주는 시간이었으니깐. 회식이 우리에게 위안과 따뜻함으로 다가온건 처음이었던 거 같다. 늘 북적했고, 늘 눈치 봤고, 늘 조용하게 먹고 끝내기만 했던 회식이 아니라 진짜 우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성장하고 있다고! 그럼에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며 서로를 포옹하는 회식이었다. 그리고 누구나 겪는 초년생의 고민들이었고, 신입을 통해서 나의 시작도 다시 상기했다.


끝으로 상사들의 무책임함을 저격할 수 있게 당돌함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