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리바 Jun 02. 2020

정말 내가 괜찮은 사람인 거야?

살다 보면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들이 많다.

내 기준이냐 타인의 기준이냐에 따라서 스스로에 대한 시각도 달라지고 행동이나 마음도 달라진다.

그런 나에게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라고 생각한다.

과분할 정도로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 칭해줘서 감사한 순간들도 참 많은데 그렇지 않은 관계들도 있다는 걸 안다. 나에 대해서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나는 안다. 내가 그것을 직시하지 않을 뿐이지.


어떤 일이든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기분은 느끼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내가 원하는 온도에서 알맞게 있고 싶은데 내가 속해진 곳에 따라 누구에 의해 나의 온도도 변한다. 최대한 바뀌어진 온도에 마음을 맞춰보려고 노력과 시도는 하는데 반복되는 마음에 맞지 않는 상황과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은 '함께'하려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게다가 세상에 얌생이 같은 사람이 참 많다. 그런 사람들은 앞에서는 '알겠습니다'하며 입을 다물지만 뒤에 가서 나를 강요당하게끔 만든다. 강요한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강요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나라는 인간은 '이미 이야기가 된 사항인데요?'라며 말을 하며 상황을 설명하지만 상황을 설명하며 유연하지 못한 주장을 펼친 나는 '나쁜 사람'이 된다.


엄마는 그런 내가 지극히 이기적이라고 한다. 존중받고 싶은 만큼 너도 다수의 입장을 존중을 해줘야 한다고 한다. 엄마의 '함께'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말에 수긍을 한 날도 있있지만 어떤 날은 내가 하기 싫었던 일에 대해서 굳이 대체자가 많은데 해야만 할까?라는 의구심과. 이게 어째서 나를 이기적으로 몰고 가는 결론을 내는 거냐며 반박한다.


보이는 내가 다수에서 튕겨져 나갔다고 나만 이기적인 건가? 나만 배려 없는 거야? 

다수의 입장에서는 내가 고집으로 보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황당하니깐, 이해가 되지 않으니깐, 마음이 따르고 싶지 않으니깐, 적어도 나 아니어도 할 사람도 많은데 굳이 마음이 생기지 않는 일에 대해서 내가 참여해야 할 이유는 뭐고, 내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이 나이 돼서 강요받아야 할 입장이 된 건지.


이럴 때 보면 나는 좋은 사람은 아닌 거다.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기준이 어딨냐만은 다수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내 기분을 챙기려는 나는 그렇단 거지. (그럼에도 나는 좋은 사람에 부합하려 살고 싶지도 않으니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을 다시 해보자니 이게 오늘 나만의 상황만 될까? 그대들은 나의 상황이 되지 않으리란 법 없을까?


어렸을 때 언니 오빠들이 나처럼 튕겨져 나가면 이해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같이 하면 좋은데 왜 같이 안 하는지. 이렇게 즐겁고 이렇게 재밌는데 말이야. 하며 서운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언니 오빠들이 그렇게 튕겨져 나갔다고 우리끼리 분위기가 죽 쑨 건 아니다. 언니 오빠들이 자기 할 일 하러 간 사이 우리는 또 우리끼리 으쌰 힘을 내며 일을 진행했다.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을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되니 알게 된다. 무조건적으로 수긍하던 시대를 지나 효율과 합리성을 찾아 일을 하기 시작한다. 


시대가 지나 이젠 내가 그 감정에 의해 '일하던 사람이 일 하는 게 아니라 이제 일을 배우기도 해야지'하며 말을 했는데 그 말에 '너 하나로 단체 분위기가 휩쓸려간다'는 말은 당시에는 '아, 그냥 할걸 그랬나?' 하며 쉽게 수긍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 다수는 내가 없이는 운영이 되지 않는 것일까? 그 다수의 분위기 절반 이상을 내가 담당하는 거야? 라며 수긍했던 말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도 그 시간들을 지나왔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일을 했던거고 분위기에 영향이 있을지언정 그 안에서 또 각자 해결을 해 나가는 입장이기도 했다.

내가 연장자고, 내가 지금껏 일을 맡아서 해왔어도 앞으로 내가 없으면 어쩌려고?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소리에 쉽게 나를 수긍하게 하는 그 대화법들이 난 싫다.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저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지내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물음도 없이 '일'만 댕강 던져놓은 채 자신이 준 일에 대해서 하지 않았다는 것이 '단체'의 분위기를 흐리고 '좋은 사람'이 아니게끔 각인시키는 태도에 나는 침묵한다.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무시하련다. 내가 아무리 지랄 맞은 성격이라지만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여긴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누군가의 입맛에 맞춰서 내 인생을 재단하고 싶지 않다.

관계에 갈등이 생기면 나 자신이 1순위가 되지 않은 채 타인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나는 지금 껏 개인보다는 다수에 더 많이 따라주었고 활동했다. 내 의견이 있음에도 다수의 의견이 그렇다 하면 거기에 따랐다.

익숙해졌던 전체를 위한 나의 생각은 이제 조금씩 껍질을 벗겨야 할 때 인거 같다. 물론 다수의 입장도 너무나 중요하고 따르기도 하지만 글쎄 당장 눈에 보이는 일에만 몰두하다보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행동이나 대처에 대해서 나는 외면하려 한다. 그리고 태도도.


타인이 나를 좋게 생각해주면 감사하다. 그렇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삶은 나에게 언제나 혼란을 준다. 그것으로 인해서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남이 뭐라든 남이 내 인생 살아주는건 아니니깐.



 

매거진의 이전글 또 다시 헌팅포차를 이야기 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