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페미니스트라는 것도 정확하게 모르겠고, 여성의 인권을 위한 불같은 마음도 크게 없지만 같은 여자로서 부끄러운 행동이나 발언을 하는걸 보거나 듣는다면 짜증을 내는 편이다.
특히나 여자여서, 여자기때문에, 여자라서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여자라서야? 여자기때문이야? 여자여서야?' '그게 왜 네 잘못으로 치부해?' 라며 되려 묻는다.
그럼 상대방은 자기가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 그제야 자각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폄하한다. 우린 모두 소중한데, 우린 모두 가치가 있는데 말이다.
(1편과 이어지는 글)
최근의 헌팅 포차에 관한 나의 생각에 대해 글을 쓴 이후 우리는 모일일이 있어서 다시 만나게되었다.
여러 주제들을 이야기하다가 역시나 헌팅 포차를 경험한 나의 이야기가 또다시 화자 되었다.
'예의'를 운운하던 그녀는 역시나 다른 사람 앞에서 내가 이상하다며 말했다. 내가 했던 행동들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이야길 했다.
그 자리에서 '그럼 넌 너대로 살아 난 나대로 살 테니깐. 난 다시 돌아가도 내 선택대로 살 거야.'라고 직설적이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녀가 경험한 두드러진 목적이 드러나는 합석 자리에서 불쾌한 상황과 불쾌한 분위기를 느꼈더래도 그런 장소에서의 만남들은 내 목적이 어찌 됐건 장소 자체가 뻔스런 목적으로 왔기 때문에 따라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컸다. 다시 말해 남녀 합석이 암묵적, 묵시적 '원나잇'과 '접촉'의 합의라고 여기는 쪽이었다.
최근에 성평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접하면서 여성의 성적 주체가 현저하게 수동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매체에서 만들어진 여성의 이미지는 소비되는 편이다.
그래서 여성은 각자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음에도 외부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이미지로 인해 자신의 아름다움에 집중하지 못하고 타인이 부여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에 부합하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외적임뿐만이 아니라 소비되는 여성의 이미지는 우리의 무의식 중에 자리잡아 일상생활에서도 드러나게 되는데, 자신의 의견을 충분하게 나타낼 수 있는 상황이 와도 성의 주체나 일반적인 여성에 대한 규정을 이미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여성의 성권위는 타인에게 휘둘리고 굴복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가 모르게 서서히 스며들었던 여성은 이런 존재다 라는 오류들로 인해 사람들은 쉽사리 거절하지 못하는 여성의 태도를 두고 '합의'라며 주장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헌팅 포차에서 예의를 운운했던 그녀는 자신이 겪은 합석에 대한 내용들을 불쾌하고 불편하다면서 늘 이야기하곤 했다.
'나도 그런데 갔는데 계속 남자들이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어. 너무너무 당황스러운 거야'
처음에는 '그래? 이상했겠네'라고 답해주었는데 생각해보니 불쾌하고 불편하다고 말은 하면서 매번 우리가 만날 때마다 그 언급을 하며 말하는 태도에서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 느꼈다.
'내가 마음에 든데' '계속 내가 거절했는데도' '싫다고 해도 남자가 계속 귀에 대고 너 예쁘다. 너 너무 귀엽잖아'
그 날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쩌면 그녀는 불쾌한 경험을 겪었지만 이성에게 자신이 어필될 수 있다는 의미로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이 정도로 잘 나가'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라며 자신의 존재를 이성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동의를 묻기 시작했다. 이상한 거 아니냐고. 남자들한테 무례한 거 아니냐고.
난 누구의 동의도 의견도 생각도 다 필요 없었다.
여전히 그녀는 내가 거절한 태도에 '남자들은 원나잇을 생각하고 왔을 건데 그럼 놔줬어야지'라며 나를 지탄했다.
'합석할래요?'라는 의미가 '원나잇 포함'이라는 내용인걸 구체적으로 알았더라면 '아니오'라고 적극적으로 말했겠지만, 합석은 합석. 원나잇은 원나잇. 뜻이 전혀 다른 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합석이라는 의미에 왜 언급하지도 않은 원나잇을 짐작하며 상대편을 배려해야 하는걸까?
오늘 놀기만 좋아하는 진상 여자들을 만나서 걔들이 원나잇 못했다고 다른 날에도 원나잇을 못할까? 근데 굳이 왜 그 사람들의 오늘 컨디션까지 내 노는 기분에 맞춰서 행동해야 해?
난 규정되는 여성성을 가진 여자가 아니다. 매체에서 보이는 흔히 있는 여성의 성격을 타고난 여자가 아니다. 어떤 여자가 되든 내가 거절하고 싶으면 거절하는 게 맞다.
묵시적? 암묵적? 그런 멍청한 말이 어딨어? 남의 기준에 휩쓸려서 이리저리 살다가 누구 원망할래?
그 사람이 그런 목적을 가졌건 말건 내 안에서 '아닌 건 아닌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 밀어붙이면 되겠지만, 분위기가 싸해질 거 같아서 우물쭈물 말을 얼버무린 적이 많을 것이다.
맞아. 그래. 나도 그런 분위기가 두려워. 그런데 지금 거절하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휩쓸림에 난 언제나 동의한 것 마냥 끌려가게 된다.
그러니 '어? 내가 생각했던게 아닌데? 근데 말하면 분위기 싸해질 거 같은데...' 하는 그 순간에 말해야 한다.
더 이상 매체에서 우리의 여성성을 규정하지 않게 내가 가진 나의 주체적인 부분들을 인지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소중하고 고유한 존재들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