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는 개나줘
계산을 어느 쪽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내용이었다.
글쎄, 내 경우에는 남자 쪽에서 냈거나 반반 내거나 였었다. 남한테 특히나 모르는 남한테 같이 즐겁게 웃고 떠들고 했던 시간이니 더더욱 빚지고 싶지 않았기에 '넣어두세요'하던 나의 행동과 말에 비해 상대편들의 지갑과 손이 더 빨랐던 건 사실이다.
그런 커뮤니티의 글을 보니 '어구'하며 귀엽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 헌팅 포차는 목적이 분명한 공간이다.
100프로 어떤 일이 발생해야 할 거라는 가정하에 방문하는 곳이 헌팅 포차 아니던가? 그래서 헌팅 포차는 남녀의 경계가 무척이나 쉽고 가볍게 여겨진다. 또한, 헌팅 포차에서는 사랑 관계로도 연인관계로도 발전할 확률이 낮다.
최근에 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Liberated: The New Sexual Revolution의 내용 속 미국의 봄방학처럼 말이다. 미국의 봄방학의 해변가가 그렇듯, 우리나라의 헌팅 포차도 가볍게 즐기기 위해서 온 목적이 두드러진 장소이고 그 목적을 쉽사리 표출한다. 그 공간에서는 모든 과정은 섹스를 위한 수단이 된다.
친구들과 즐겁게 놀려고 헌팅 포차를 갔다. 90년대 노래를 들으면서 분위기를 타고 싶은 밤이었다.
우리끼리 너무 즐거웠는데 헌팅 포차는 사람들이 테이블을 돌아가며 자연스럽게 합석해서 만남을 유도하는 시스템인지라 우리의 원래 목적은 가볍게 저녁을 음주가무를 통해 친구들과 즐기는 거였는데 헌팅 포차의 분위기에 의해 어쩌다 보니 합석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원치 않는 불쾌한 스킨십이 동반되려 했지만 상대편의 기분과 우리의 분위기를 상하지 않게 방어하며 각자의 온 목적을 잃지 않으며 놀았다. 가벼운 스킨십이 오가는 거기까진 이해했다. 헌팅 포차라는 곳이 그런 공간이고 그런 목적을 위해 오는 곳이니깐.
어느 정도 즐겁게 놀다가 우리 팀은 더 이상 헌팅 포차의 분위기가 원하던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다른 장소로 이동을 위해 나가려 했을 때 상대편팀에서 좋은 시간이었다고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같이 나가자고 했다.
우리는 우리 편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우리랑 그쪽이랑 노는 분위기가 맞지 않을 거니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을 거 같다고. 그런데 몇 번을 말했음에도 어떤 분위기길래 우리가 맞지 않는다는 거냐며 물고 늘어졌고 너무 재밌어서 더 놀고 싶어 그런 거니깐 같이 놀자며 이야기를 하길래 오케이 하며 다 같이 다른 가게로 넘어갔다.
남녀 비율도 맞아서 남자 쪽은 누가 누구, 누가 누구를 벌써 찍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얼마만의 모임이고 얼마만의 고삐 풀림이라는 생각에만 들떠서 미친 듯이 우리 위주로 분위기를 주도해가며 놀았다. 딴 마음을 먹고 그 자리에 앉아있더래도 엄청나게 즐거웠으리라 확신이 된다.
그 날 우리 팀은 베스트 팀워크 상을 줘야 할 정도로 나사가 풀렸고, 최선을 다해 놀았던 날이었다. (다른 날들은 안 그랬겠냐만은)
근데 남자들은 그런 우리의 목적과는 달랐던 건지 1차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분위기가 2차에서도 이어지니 '이 사람들은 진짜로 놀기 위해 모인 거구나'하며 그 가게를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물론 우리는 다른 곳에서 또 끝장을 봤고.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다들 '진짜 그랬다고? 대단하다 너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날 엄청 재밌었거든'이라며 엄청 웃어대며 말했다. 근데, 그 뒤에 들려오는 어이없는 말에 난 얼굴 표정이 굳어버렸다.
'야 거기까지 그렇게 갔는데 원나잇을 목적으로 두고 온 남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대체 즐겁게 놀기만 할 거면 헌팅 포차를 가지 말지 왜 간 거야?'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에서 으뜸가는 나라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각자 목적이 달랐음에도 헌팅 포차라는 다수의 큰 목적에 내 목적까지 귀속시켜야 하는지 불쾌한 건 둘째치고 나는 그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수의 입장이 A라면 내 의견도 A에 귀속시켜야 되는 것인가? 게다가 원나잇이라는 게 언제부터 쉽사리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내용물이었던가.
'원나잇 하실 건가요?'
'아뇨? 그냥 놀러 왔는데요?'
'입장 불가입니다'
'네? 입장 불가요?'
'네 예의가 너무 없으시네요. 여기에 어떤 목적으로 사람들이 오는 건데 그 목적을 무시하세요? 돌아가세요'
앞으로 이런 시대가 올지도.
대체 어디다가 예의를 차려야 하는지 그 예의라는 단어가 우리의 관계에 존재는 하는 건지.
남자들이 기분 나쁘던 말던 남자들에게 예의를 지키던 말던 내 목적은 '열심히 그 하루를 불태우는 것!'이라며 체력을 싹 다 끌어다 모아서 힘껏 노는 것이었다.
단 몇 시간밖에 얼굴을 마주한 사람들이었다. 이름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너무나 가벼워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존재들이었다. 비단 그 사람들뿐이었을까.
그런 술자리에서의 만남은 어떠한 관계도 진전시키지 못한다. 그걸 알기에 내가 허락하는 그 선까지만 그 사람들에게 허락하게 한다.
그 사람의 선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선이 나보다 낮게 있다고 한들, 그래서 나의 선과 그 사람의 선이 맞지 않는다고 한들 그들은 나에게 강요할 수 없고, 나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내가 허락하지 않은 내 선을 침범하는 순간 그건 범죄다.
우리는 그 시간을 잘 놀다 헤어진 거 같은데 남자들의 분위기를 맞춰주지 않았기에 난 예의가 없어졌다는 그 이야기에 우리나라 언제부터 이렇게 과정 없이 목적만 추구하는 성관계 시스템을 추구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의 주체성이 여성에게는 크게 상실되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세상이 여성에게 여성스러움을 요구하고, 여성이 나약한 존재로 그려진다 해도 실제적으로 매체에서 나오는 여성의 성격을 가진 여자가 몇이나 될까?
여자는 여성스럽기만 하고 나약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고로 여성은 자기가 원하는 일에 대해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힘과 사리분별력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팅 포차에서 남성과 원나잇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예의 없다고 치부되어버리는 여성 주체에 대한 상실감에 대해 나는 조금 허탈했다.
목적은 달랐는데 그 안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상황에 유도되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되었는데 어쩐지 대중은'합의'된 내용이라는 시선을 준다.
묵살할 수 없는 상황의 압박을 느낀 여성들이 많다. 그리고 그 압박에 여성들은 굴복된다. 사회가 여성들을 그런 시선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그런 분위기나 상황 속에서 꼿꼿하게 '거절'하는 법을 실천하고 있다.
'그냥 한잔 받으면 어때?' '한번 따라주면 어때?' '한번 춰주면 어때?' '한번 해주면 어때?' '여자가 왜 이렇게 꼿꼿해?' '여자가 기가쎄' '여자가 주장이 강해' '여자가 너무 드세'
숱하게 들어온 말들이고, 앞으로도 들을 말들이겠지. 나를 어떻게 규정하더래도 나를 잃지 않으려면
아무리 수많은 야동 물이나 광고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자의 위치가 나약하고 연약하고 수동적인 입장이라지만 난 아니다. 난 아냐. 세상이 내 성별을 그렇게 규정하더래도 난 아냐. 난 '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이고. 그 거절 뒤에 수많은 '야유' '짜증'이 들려와도 내 결정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러니 한 여자에게 강요하지 마시라. 엄마, 여동생, 누나, 나의 딸, 이모, 고모, 사촌, 조카, 친구들이라 생각하면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