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리바 May 30. 2021

무늬만 첫째입니다.

첫째에게 무게를 주지 마세요. 첫째는 그냥 첫째일 뿐입니다.

얼굴에 침 뱉는 행위를 하고 있지만 분노의 감정을 조금 작성해보련다.


태어나보니 나는 첫째였다. 그것도 여자 첫째.

아이 계획을 이야기하다 보면 내 뜻대로 성별을 정할 수 없지만 주변을 들어보면 첫째가 딸, 둘째가 아들인 경우를 많이 바란다. 남녀 아이를 두고 오빠의 경우보다 누나가 있는 경우가 더 좋다면서.

세심하게 동생을 잘 돌보고 양보하며 동생의 부족한 부분을 따뜻하게 잘 이끌어 줄 거라며.


첫째의 입장에서 그건 너무 부모의 이기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 나는 양보를 강요받았다. 양보하지 않으면 시기질투라고 이야기를 들었겠지.

누나라서, 첫째니까, 동생보다 먼저 태어났으니 니 동생을 네가 챙겨야지 누가 챙겨? 하며 자주 내 것만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을 직면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언제나 동생은 부족하고 모자라고 늘 신경 쓰이는 대상이었다.

내가 봤을 때 모자라지 않은데 엄마는 동생에 대해서 늘 안쓰러운 마음이 있었나 보다. 그리고 나 또한 동생을 향해서 그런 감정이길 바랬나 보다.

기억해보자면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내게 아는 척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어도, 누군가가 동생을 괴롭힌다면 괴롭힌 애를 혼내주기도 했고 또 이야기하자면 방학 때 나는 방학숙제를 계획 있게 했던 반면, 동생의 숙제는 늘 엄마의 안절부절로 인해서 내가 거진 다 했던 것 같다.

동생 친구들이 놀러 오면 라면 같은 것도 끓여주고.


그리고 성인이 된 여전히까지 나는 엄마의 안타까운 동생을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는 입장이 되어야 한다.

참 난처하다. 같이 감정이 상하는 상황에서도 엄마는 늘 더 고생하는 동생을 위해서 네가 좀 양보해주면, 말을 해 주면 안 되냐 하는 식으로 이야길 한다.

나의 고생은 본인이(엄마) 생각했을 때 동생의 고생보다 덜하다며. 대체가 그 판단을 왜 엄마가 하는 건지 난 이해할 수가 없다. 나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음에도 엄마는 나의 형편은 동생보다 더 낫기에 내가 더 양보하고 더 배려하고 신경써줘야 한다는 것이다.


신경을 쓴다 한들 100번을 잘해도 1번을 못하면 매몰차다며 나를 몰아붙인다.

돌아서 생각해보면 내가 못해준 건 없다. 티는 안내도 궂은일 하고, 먹을 거 사다 주고, 용돈도 주고.

근데 그 모든 사실은 저 멀리 버려두고 나는 첫째고 누나니깐 더 많이 배려하고 더 많이 수긍하라는 태도를 강요받는다. 그 입장을 고수하지 않으면 나는 쪼잔한 사람이거나 시기질투가 많은 사람이 된다.


다들 어떤 형제관계를 지속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난 동생에게 큰 애정이 없다.

그저 필요한 말만 주고 받는다.

이미 쿨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게 생겨서 남처럼 동생을 대한다. 동생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니깐 주변에선 나를 외동딸로 생각하는 지인들이 많을 정도다.

2년전 크게 싸운 이후로 동생이 말하는 말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게 좀 남아있는듯 하다. 그 이후로 동생이랑 대화를 하는거 자체가 피로하게 느껴진다.(이해가 안돼는, 자신의 감정에 맞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이해를 시켜야 하니깐.)

그 당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귓구멍을 막고 자기 감정만 이야기하며 나를 공격하던 동생을 통해 '얘 랑은 더 상종하면 안돼겠다.' 라는 결론을 냈다. 그 이후로 몇번의 부딪힘이 있는 동안 내 마음은 점점 더 굳건해졌다.


어렸을땐 몰랐는데 커보니깐 사람 관계는 어떻게 될 지 모를일이기에 늘 최악의 말을 하지 않는편인데 동생은 늘 최악의 말과 행동을 함으로써 관계를 더 악화시켰다.

게다가 동생의 억지스러운 도둑몰이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적이 있었는데 그 날 정말 극심하게 괴로웠다. (너무 억울해서 죽거나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모든 감정을 다 보여줄 순 없지만 늘 최악을 보이는 동생의 태도에 나는 마음을 닫았다.


이렇게 동생에 대해 남 대하듯 생각하는 나를 보면 엄마는 걱정을 하지만 나도 내 감정이 우선인 사람이다.

내가 느끼는 상처라는 감정의 크기를 누가 가늠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누구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들의 화목하지 않은 사이가 불편한 거지 나랑 동생은 전혀 그런 거리낌이 없다.

애정이 넘치는 입장은 아니더래도 이 정도의 선에서 서로 불편함없이 살아가는 중이다. 이 정도의 관계도 그나마 시간이 해결해준듯 싶다. 하지만 그 이상의 '애정'이라는건 더 없을 듯 싶다.


어떤날은 엄마가 할머니에 대한 서운함을 느꼈던걸 이야기 하면서 내게 서운한게 있었느냐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없던거 같다며 답했다.

그러다가 엄마가 나와 동생의 사이를 다시 회복시키고 싶었는지 동생이 나에게 왜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 대변하더라. 근데 나는 그것마저 듣기가 싫었다. 엄마에게서 동생의 상황이나 감정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동생은 엄마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겠지만 그런 동생을 향해 내게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속으로 화는 났지만 엄마를 향해 나도 어떤 사정이 있었을 거야. 그래서 걔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을 거고.라고 답해도 엄마는 나를 매몰차다며 몰아붙였다. 그렇게 몰아붙임 당하고 나서 나도 감정이 격해져 엄마를 향해 왜 동생의 상황만 이해하고 내 상황에 대해선 조금도 이해하는 마음이 없냐며 따져댔다.

결국 엄마는 나보다는 동생을 더 두둔하며 모든 상황이 내가 냉정해서 잘 보듬어 주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이 감정이 골이 난 거라며.

과거의 자신의 감정에 의해서 마음이 상했던 일에 대해서 나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지 않고 3자를 통해서 2:1로 편이 나뉘어 이야기를 듣는 것도 싫고, 여전히 내 편을 들어주지 않고 동생을 두둔하는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솔직히 난 그 애의 입장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앞으로 양보도 배려도 이해조차도 하기 싫다. 그 모든 것들이 어떤 애정에 의해서 발현되는 감정이 아닐까? 애정이 없는 상황에서, 정 만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런 감정을 요구 받는게 싫다.


무엇보다

-말을 할 때마다 억지를 부리면서 반박하는 모습도 정말 꼴 보기 싫다.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서 그때 누나도 그런 식으로 행동했으니 지금의 나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거야. 라며 자신의 행동의 정당화를 한다. 꼭

현재 시점의 상황에 대해서 상충되는 부분을 서로 이해하는게 아니라 그렇다면 과거에 이런경우는 왜그랬어? 라며 말이다. 이로인해서 나도 시시콜콜 동생에 대해서 하나하나 잘잘못을 따져드는 버릇이 생겼다.

언제인지도 모를 과거를 들먹이며 무조건 나를 향해 잣대를 들이미는 그 태도에 나도 대응하기 위해서.

현재의 일에 대해서 과거의 서운함을 끌고 와서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언제인지도 모를 '그때'라는 시제에 아찔하다. 현재의 일을 마무리 짓지도 못한 채 자신의 과거에 묶인 과거의 일에 내게 해명하라며 목소리 높인다.

본질은 흐려지고 점점 의미 없는 감정이 격해지는 말만 주고받는다.


-지금 누나의 태도가 이렇다는 건 추후에 나도 그런 태도를 유지해도 된다는 거지? 하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태도와 말투.


-감정적인 부분을 하나하나 이해시키는 것도 너무 피곤해서 이야기 할때면 토 나온다. 사실은 사라지고 오롯이 자신의 감정이 상했기에 기분이 나빳다며 배째라는 식의 태도. 감정이 상했다는데 그 어떤 사실이 힘이 있을까? 그 어떤 논리적인 부분이 풀릴까? 


-말을 하면 할수록 관계를 붙이려는 게 아니라 말을 하면 할수록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

결국 사실은 뒷전이고 감정싸움에 지친 나는 '어떻게 하면 되는데? 결론이 뭔데?' 하지만 상대편은 답이 없다. 기분이 나쁘덴다. 내가 그랬으면 자기도 그래야하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해결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전혀 해결이 안될 상황을 얼른 정리하고 싶어 미안하다며 무마한다. 

그런데 미안한 태도냐며 꼬투리를 잡는다. 이 싸움을 더 끌고싶지 않아서 목소리를 낮춰서 미안하다며 이야기 하는데 미안함을 지금 받고 싶지 않덴다. 자신은 이미 감정이 상했으니. 나중에 받겠덴다. 마치 내가 대역죄인이 된 기분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은 없다. 감정만으로 정신승리 한 동생의 얼굴이 보인다. 역겹다.


어짜피 내 말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음이, 내가 하는 어떤말은 감정을 이길 수 없음에 나는 그냥 사람에 대한 마음을 떨구는편을 선택했다. 그 결과가 지금인것 같다. 어짜피 말이 안통하는데 앞으로도 말이 통할까? 결국 나는 과거에 기분나빴던 동생의 감정에 사과를 하고 마무리 짓는다. 현재의 일은 앞으로 잘 하자는 말로 매듭짓고. 


시작은 그저 말이었는데 자신의 감정에 거슬렸으니 말싸움으로 번진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늘 잘못은 나에게 돌려진다. 내 말투가 거슬린다느니 그래서 자신의 감정이 상했다느니. 자신은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 나로 인해 늘 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모든 사건의 사실에 대한 결론은 감정이 나쁘다로 끝이 난다.


사람이 늘 같은 사람이 어딨어.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고, 오늘 내가 꽂혔다면 그거로 인해서 상황이 급발진될 수도 있는건데. 사람이 늘 한결같아야 한덴다. 그때도 그랬으니깐 지금도 그래야 하는거 아니냐며.

늘 사람이 한결같아야 하는거 아니냐며.


오늘 동생이 그러더라.

과거에 누나가 나한테 조언도, 힘내라고 응원도 해줬잖아. 누나한테 나는 사랑하는 동생이 아냐?

그 말에 기가 차서 대놓고 말했다.

사랑은 빼라고. (네 입으로 사랑하는 동생이라고 말하는 거 기가 막히지 않니? 지금까지 네가 나한테 대했던 행동은 생각도 안 하고.)


그래. 나는 동생에 대한 애정이 없는 누나다. 엄마도 할머니에 대한 골이 깊은 감정이 섞여있을텐데 내게 동생에 대한 감정을 강요한다. 난 할머니와 엄마의 사이가 틀어졌을때 누구의 편을 들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마음이 상했다는 깊이는 본인 스스로만 아니깐.

그런 엄마가 내게 동생에 대해서 감정과 태도를 강요한다. 내 감정은 별거 아니란 듯.

내가 첫째가 아니었더라면 그런 감정의 강요를 덜 받았지 않았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할머니가 나를사랑하는 걸안다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