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리바 Jun 26. 2019

인간은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쓰레기에 당하고 쓰레기에 끌리는 미학

물론, 이성문제다.

혼자 살고 싶어 하면서도 '혼자 살 수 있을까?' '혼자 살 수 없어.' 하는 양갈래 갈등을 한다.

부모님을 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지인들을 보며 '나도 결혼을 하긴 해야 할 텐데...'라고 마음에서 읊조린다. 그러나 마음처럼 쉽게 먹어지지 않는 게 우리의 인생이지 않은가.

연애보다는 내 삶을 안정시키고 즐기는 것에 집중했더니 벌써 20대 후반이 되었다.

솔직히 20대 후반. 난 생각도 안 해본 나이다. 그렇다고 언제나 20대 초반일 줄 알았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현재에 집중만 했더니 여기까지 왔다.


2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의 연애 전선은 별다른 이슈가 많지 않았다. 나는 남자에게 질질 끌려다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나에게 질척대는 남자도 없었다. 괜찮은 남자보다는 함께 노는 남사친들이 더 많았고, 그래서 더더욱 큰 이슈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2년 동안 부쩍 서로에 대한 우정이 넘쳐 애정을 갖고 연락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2년간 많은 남자들을 마주했는데 하나같이 좋게 말하면 '별로'였고,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쓰레기'들이었다.

친구는 쓰레기 하나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말했다 '내 눈은 정확해. 또 쓰레기네.'

본인 스스로도 쓰레기 감별사라고 할 만큼 이상하게 그런 남자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우스개 소리로 '너 만나는 남자 나한테 데려와. 내가 좋아하면 걔는 쓰레기니깐'이라고 말할 정도로 정확한 판단의 소유자였다.


근 7년간 알고 지낸 언니가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를 잘 알았고, 서로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줬다. 공부를 준비하던 언니가 학원에서 만난 남자랑 연애를 하고, 잘 안 풀려 마음 아파했던 기간이 있었다.

마음 아파 하던 언니에게 나의 지지와 응원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를 만큼 긴 시간 동안 언니의 마음은 잘 잡히지 않았다. 6개월도 사귀지 않은 그 남자와 7년을 알고 지낸 나 사이에서 언니는 늘 6개월을 알고 지낸 남자에게 더 중심을 뒀다.

언니가 더 이상 망가지지 않길 바랬는데 자꾸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언니에게 마음이 서운했다. 결론적으로 그 남자도 그리 좋은 남자는 아니었다. 헤어졌으면 헤어졌지, 헤어진 마당에 썸을 타는 것도 아니고 밀고 당기고. 그 과정은 둘 에게는 아름다웠을지언정, 무슨 드라마 속 주인공들도 아니고. 제3자의 입장에서는 추잡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프게도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나는 택함을 받지 못했다. 그 남자로 인해 언니와의 7년간의 관계가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그 정리되는 과정이 아무렇지 않다는게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 나 스스로가 기묘했다.


내 주변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 겪으면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차단해라' '삭제해라' '단호하게 말해라'라고 조언해줬지만, 왜 때문인지 차단도, 삭제도, 단호한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냥 우물쭈물 넘어가 버렸다.



미련인 걸까 미련한 걸까.

스스로가 '이건 아니네'하는 걸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건 왜 일까? 만약 나라면, 그런 상황의 반복이 진절머리 쳐서 그만뒀을 건데. 과거의 내가 그랬으니깐. 사람들은 나에게 '많이 사랑할 남자를 만나지 못해서'라고 이야길 한다. 과연 그럴까? 밀당을 하며 길었던 썸의 기간이 있었다. 이 정도는 거의 사귀는 수준 아냐?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마음, 네 마음을 표현했다. 명확하게 우리의 사이를 정의해줬으면 좋겠어서 '난 너 좋은 거 같아'라고 표현했던 적이 있다. 좋아함의 표현을 좋아함이라고 하기엔 상대방의 감정이 결정되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걸까. 미적미적 대는 그 사람의 행동들이 나를 실망스럽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어장에서 놀아난 적도 있었다. 처음에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손가락에 반지가 있었던 적도 있고, 없던 적도 있으니깐. 여자 친구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으니까. 여자 친구가 있단 걸 안 뒤 그 남자에 대해 허탈했다. 조금 마음을 열었던 나를 비웃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좋은 친구로 지내지만 완전하게 내 마음이 좋은 관계로 남은건 아니었다. 가끔 나에게 '영화 보러 갈래?' '운동하러 갈래?'의 확정적인 말보다 내가 먼저 확정적인 말을 하길 유도하는 식의 말들을 나열하면서 알게되었다. 어장이라는 걸.

그런걸 정확하게 알고 난 뒤, 난 그 애의 여자친구에게 죄스런 마음도 들었다. 내가 허용하지 못할걸 타인에게 허용하게 한다는 모순을 갖고싶지 않았다. 내로남불은 나도 싫다. 난 떳떳하고 싶은 여자니깐.


친구가 남자 관계에 힘들때, 내 친구니깐 그 남자들한테 그딴 행동 좀 하지 말라고. 어장 치지 말라고. 쓰레기 같은 짓 하고 다니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제삼자가 나서서 할 말들이 아니었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나서나. 대신 친구에게 '네가 못났다. 네가 왜 그런 말도 못 하고 바보처럼 그러냐'하며 타박하기만 했다. 애꿎게.


최근에 친구는 남자 문제로 또 혼란스러워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지만 나는 여전히 친구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친구의 통금시간이 10시인데 자꾸 그 통금시간을 넘기자고 유혹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쉬는 날 같이 보내자고.

'통금 10시는 과하지.' '다 큰 성인 남녀가 그럴 수 있지.' 라며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니 장난치는 내용이었다. 사람 마음 가지고!

나는 '쓰레기네 또!' 하며 말했는데, 친구는 '그래도 다른 남자랑은 다르던데...' 했다.


며칠이 지난 뒤 서로가 감정적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을 거 같다며 선을 긋는 남자 쪽의 이야기에 친구는 '그래요. 그럼 연락하지 말아야죠.' 하며 그 관계를 정리했다.

그 정리의 말들을 한 며칠 뒤 남자 쪽에서 연락이 왔다. 심심하니 자기 좀 살려달라고. 놀아달라고. 친구는 예전 같지 않게 단답으로, 냉담하게 답장을 했더니 '너무 모질다.'라는 뉘앙스로 답이 왔다. 친구는 차단도 삭제도 읽씹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싱숭생숭했다. 그런 친구에게 나도 뭐라 뭐라 썽을 냈다. '네가 뭐가 못났냐. 그 애가 번듯한 직업이 있으면 뭐해? 너 왜이렇게 스스로를 못나게 행동하니? 솔직히 내가 봤을때 그 남자보다 너가 꿀릴꺼 하나도 없어! 네 주관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고 떳떳하게 말해! 그리고 네 행동 똑바로 해. 지금 정리할꺼면 단호하게 답장해.'하며 멘탈이 약해 친구 대신 뼈를 때리게 라며 답장을 써서 보내주었다.


오빠 이런 말 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ㅋㅋ
오빠 진짜 개쓰레기 네요 고만하시죠^^?
저는 앞으로 오빠 살려줄 일 없어요
죽이면 죽였지 저한테 구걸하지 마시고 딴 데 알아보세요


생각해보면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아직까지 절절해본 적도 없고, 애절해 본 적도 없고. 사랑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던 적도 없다. 한번쯤 해볼 만한 것이었다고 말은 하지만, 솔직히 다시 하고 싶진 않다고. 다시 한다면 사랑만 하고 싶다고.


그런 말들을 들으면,

사랑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변하지 않고 영원하게 사랑했으면 좋겠다. 낭만적인 말들이 다 사실처럼 영원하게 지속됐으면 좋겠다. 누구도 상처입지 않고 여원한 사랑을 약속하지 말고 사랑 그 자체가 영원했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를 볼 때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시간이 지나 쌓여서 사랑보다 더 깊게 묶여있는 생각을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로 엄마 아빠의 사이를 정의할 순 없지만 눈에 보이는 꿀 떨어지는 사랑은 없지만 두분 자체만으로도 사랑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랑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사랑의 종류도 방향도 다양한데 어째서인지 상처를 받는 이야기들만 들려져 오는 걸까. 그러면서 자꾸 버리고 오는 버리는 쓰레기들에 미련을 두는 건 왜일까. 그래 봤자 쓰레긴데. 앞으로 보고 뒤 로보고 돌아서 보고 옆으로 봐도 쓰레기는 쓰레기통으로 가야 하는데.


서로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떠났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