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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Jun 07. 2022

타인의 불편한 감정 전가(轉嫁)

난 감정쓰레기통이 아냐. 


누군가의 감정적인 부분에 공감을 하는 부분이 어렵다. 오히려 원인을 파악해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편이 내게는 쉽다. 그래서 그런지 내게 감정을 토로하는 경우는 엄청 친한 친구들 외엔 없다. (거의 없는 편)

내가 잘 받아주는 스타일도 아니거니와 진즉 내 성향을 파악한 사람들은 내게서 나오는 즐거움만 취한다.


최근에 친구들끼리 만나서 한 친구(A)의 문제에 대해 이야길 했다. 두 사람에게 A가 어려움을 털어놓았고 친구들은 냉정하게 현실적인 조언 이전에 따뜻하게 위로는 먼저 해주었고 이후 현실적인 대응책까지 이야기했지만 그럼에도 A는 당장 '알겠어. 해볼게'라고 말하곤 여전히 바뀌지 않는 모습에 두 사람은 'A는 말해도 안돼'라며 결론을 냈다고 했다.


난 A가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A와 나의 성향은 정반대의 스타일이었기에 같이 있을 때 자주 어울렸지 따로 연락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A의 어려움은 내가 크게 아는 부분이 없었다. 난 그 자리에서 '아, 그래? 그렇구나. 난 몰랐네'하고 말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한 친구가 '넌 사람에 대해서 되게 무관심해'라며 지금껏 보아온 내 모습에 대해서 이야길 했다.


그 말에 반기를 들기보다 그 말에 나 스스로도 공감했다. 오히려 두 사람이 한 친구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을 때 난 속으로 '골치 아프네', '누군가의 감정 받이가 되지 않아서 참 다행이네.'라며 오히려 안심하고 좋아하는 편이었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 라는 말보다 두 명이 슬퍼진다라는 말에 더 공감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 슬픔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조차 미안하고 내 슬픔을 공감하게 하는 것조차 송구스럽다.





내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곳이 회사니 회사에서의 일을 이야기해보련다.

회사에 막내 사원이 감정 기복이 심한 차장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들어선 지 두 달이 돼가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차장은 별로지만 자리 위치가 제법 떨어져 있기에 업무 이외로 마주할 일이 없어 그의 기복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인데 막내 사원은 차장의 바로 옆자리에서 차장의 기복을 다 받아내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차장은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일과 결혼한 사람이다.- 그에 반해 사람을 대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다. 구구절절 글로 다 표현할 순 없지만 지난 4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차장에 대한 결론은 '나와(모두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로 났다.


간간이 점심시간에 차장을 같이 씹어대긴 하는데 '윗사람으로서 이렇게 나의 윗사람을 아랫사람에게 씹어대도 좋은 걸까.'라고 인지하게 되지만 기복 받이가 된 막내가 안쓰러워서 같이 욕해주고 응원해주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점심을 먹는 와중에 차장이 '너 때문에 힘들다', '넌 그런 것도 못하니', '내가 그만큼의 시간을 줬잖아', '그러니깐 내가 읽어보라고 했잖아', '왜 이렇게 부산스러워?'라는 등 일의 수순이 엉망인 상태로 던져주고는 자기에게 맞춰라는 식의 일처리에 '어쩌라고'식의 내 태도와는 반대로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하며 전전긍긍 차장의 눈치를 살피며 차장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결론적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는 막내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껴 분노했다.


아니 걔가 뭐길래?


그래서 막내 사원에게 말했다. 직원을 잘 다루지 못하는 차장이 제일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자책하는 본인도 문제다. 자기 스스로 자책하고 반성하는 게 처음에는 제일 쉬워 보이지만 나중에는 제일 독이 된다.


게다가 차장은 기복이 너무 심한데 그 기복이 모든 사람에게 다 느껴진다. 예전에는 '무슨 일 있으세요?'라며 예의상 물어보기도 했지만, 이제 더는 묻지 않는다. 물어보면 내가 그 기복을 나눠가져야 하니깐.

차장이 주는 일에 기복이 포함되어 내게 온다면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한번 더 묻는 편이다. 그렇게 되면 차장도 어느 정도 사리 분간을 하며 나를 닦달하지 않는다. 이걸 알고 나니 나는 차장의 기복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자유로운 나와는 다르게 여전히 막내는 차장의 눈치를 보며 마음 졸여한다. 그런 막내에 비해 나는 마음 한구석에 차장을 '같잖게'여기는 마음이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막내 사원이  업무적으로 문제가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책잡히지 않으려고 더 맞춰주는 편이지만 막내와 나의 다른 점은 차장의 감정이 그러하든 난 그의 기복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지깟게 뭐야'하며 무시하는 편이다.

차장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어디서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데 예전에는 '역시 차장님 같은 분이 있어야 회사가 잘 돌아가요'하며 치켜세워줬지만 남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면서 본인의 위상을 세우려는 모습에 차단 박는다.


가끔씩 내게 차장은 자기 힘들다는 식의 공감을 바라는 한 마디를 던져댄다. 절대 받아주지 않는다. 앞서 친구가 이야기했듯 나는 '무(관)심한 사람'으로 자리 잡으려 한다. 공감을 원하는 그 한마디가 나중에 나에게 공감을 강요하는 시간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경험들을 보며.  


어쩌면 이런 내가 싹수없다, 이기적일 수 있다, 무관심하다는 평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타인의 감정이나 기복에 나 스스로가 지배당하고 연연하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떻게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겠나. 난 여전히 막내에게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마라'라고 이야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막내의 상황을 조절해 줄 수 없다. 그저 정신적으로 무기력해지는 막내를 옆에서 정신 붙잡으라며 다독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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