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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Mar 23. 2022

똑똑한 애들이 왜 저럴까.

정치 이야기 아닌 정치 이야기

어렸을 때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9시면 뉴스를 틀었던 아빠였다. 아빠는 절대 그 시간만큼은 내게 리모컨을 내어주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나는 그 재미없는 걸 매일 1시간씩 들여다보는 아빠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이야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뉴스의 시간대도 달라지고 굳이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핸드폰이든 노트북이든 어떤 경로로 간에 뉴스가 우리 삶에 가깝게 다가와서 아빠의 9시 알 권리가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상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난 어렸을 때 짬뽕을 주문해본 적이 없다. 달고 짭조름한 짜장면은 내 최애 중국음식이었다. 짬뽕을 먹고 싶지만 매콤한 맛을 한 그릇 즐기기엔 내게 너무 양이 많아 보였다.

그런 내가 짬뽕 한 그릇에도 짜장면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어른이 되었다. 


이 말인즉슨, 그렇게 이해할 수 없던 아빠의 9시 뉴스타임은 내게도 밀접하게 읽히고 있다. 사석에서 정치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지만 경제, 사회, 정책적 이슈 등 살아온 환경과 가치관은 다를지언정 뉴스가 제공하는 기사들은 우리에게 공통된 주제로 이야기된다.


언제부터 내가 뉴스에 관심이 많아지게 된 걸까 생각해보면 돈을 벌기 시작한 때부터 인 거 같다. 아니, 돈을 벌면서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가야 하는데 개척해야 할 나의 삶은 이 나라를 떠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관심을 두어야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매월 떼어지는 세금의 역할도 한몫하게 되었고.


3월 10일 한겨레 그림판


최근에 뉴스를 보면 참담하다. 기존에 있던 국회의원직에서 대통령으로 옮겨갔던 행보와 다른 0선 대통령 당선으로 어쩌면 신선한 바람이 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난 지금의 국회의원들이 가진 마음과 정신은 굉장히 낡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당선과 낙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치열했던 두 후보의 선거는 곧이어 여당은 졌고, 야당은 이겼고, 이대남이 이겼고, 이대녀는 졌고. 현 정권과 차기 정권. 어떻게든 대립구도를 보이면서 당선인의 '통합'이라는 행보와 괴리감을 보이고 있다.


어른들은 줄곧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라며 아이들에게 당연하게 이야길 한다.

그 말은 우리 반 40명 모두와 잘 지낼 필요는 없는데 마치 40명의 같은 반 '친구'와 꼭 사이좋게 학년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된다. 싸우는 건 나쁜 거고,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건 안 좋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커가면서 알게 된 건 40명 모든 친구와 친하게 지낼 수 없다는 거다. 나 또한 그래 왔다. 싫은 애는 싫었고, 내가 좋아하는 애와 가깝게 지냈다. 그렇다고 싫은 애가 하는 말 족족 시비를 걸거나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다. 적어도 들어보고 맞으면 맞고, 아니면 서로 이야기를 조율했다. 친하진 않더래도 배타적으로 내 것만 주장하지 않았다.

친구뿐만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간에도 등 돌리는 세상에 한 학급에 반나절 같이 생활하는 친구들과 잘 지내라는 어른들의 말은 곧이어 어른이 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할 자격이 있나 생각이 되는 대목이다.


모두와 친하게 지내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가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난 보수와 진보 그 어느 편에도 서고 싶지 않다. 다만 기존에 있던 어른들의 싸움에 젊은 세대들이 총알받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국민들이 더 어른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치적인 이념으로 여전히 상대를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엿보인다. 그런 부분은 나 또한 우려스럽다.


[서상균 그림창] 견고한 벽


가장 존경할만한 대통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나라 대통령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차기 정권에 정치적으로 심판당했온 걸 보아왔으니깐 어떤 존경의 대상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들이 임기 내에 나라살림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더래도 임기 말년에는 철저히 단죄받는다.


요즘 뉴스를 보면 문득 

'어휴, 다 큰 애들이 저러고 싶니?'라든가, '애들아 그만 싸우고 친하게 지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사이좋게 좀 지내봐. 이게 대체 몇 년째니?'라든지. 애들이 말을 안들어서 속상하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데 도저히 이해 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되는 점은 어째 나는 이렇게 어른이 되어버렸는데 어렸을 때 아빠가 붙잡고 있던 뉴스의 내용은 현재까지도 바뀐 게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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