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관계는 수학처럼 모든 것이 정비례하지 않는다.
평소에 즐겨 찼던 동네 책방에서 여는 미술 심리 클래스에 다녀왔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찰흙으로 만들기를 하며 잊고 살았던 촉감을 되살리고, 그 과정을 통해 현재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알아보는 수업이었다. 선생님께서 이 시간에는 미술 실력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려는 열린 마음이 더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날 클래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 날 한 시에 모여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알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의 지난 과거를 알지 못하기에 지금 여기서 말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자신을 소개할 때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사물이나 감정으로 이름을 대신했다. 그야말로 이름조차 모르는 사이.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할 때 더 편안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한다. 오래 지속되기 어렵고 아무런 이해관계로 엮이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쉬웠다. 무엇보다 완벽하지 못했던 과거를 묻어 두고, 당장 해내야 하는 과업을 잠시 잊고, 이 시간 안에서는 현재의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서른을 기점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생긴 고민과 걱정을 풀어놓았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급하고 불안했던 마음을 살며시 다독일 수 있었다. 한 공간에 모여 삶을 나누는 시간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긍정적인 힘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의 관계는 수학처럼 모든 것이 정비례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은 매일 얼굴을 마주하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가족들에게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보이기 어렵다. 그러나 때로는 오늘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는 오래 나를 괴롭히던 상념들을 말하기 쉬운 날도 있다.
그러니 답답한 내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길 원한다면 한 번쯤 곁에 있는 사람보다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가끔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멋진 풍경을 보게 되는 것처럼 낯선 사람에게서 따스한 온기를 건네받는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