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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숲 Oct 30. 2021

고장 난 기분



고장 난 기분. 오늘은 정말이지 누군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 사고하는 능력을 정지시켜 놓은 기분이었다. 더 이상 화면이 송출되지 않아 지지직하는 소리와 잿빛으로 요동치는 채널과 같았다고 할까. 고장 난 텔레비전처럼 제 기능을 상실한 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겨우 발걸음을 떼어 거리로 나왔다.

내겐 깨지지 않는 익숙한 습관이 있다.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에 관성처럼 안될 이유를 찾고, 안될 조건을 붙인다. 이래서 못하고 또 저래서 안되고. 그렇게 '안돼'만 외치다가 접어둔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머뭇거림과 망설임들이 모여서 완성된 내 모습은 또 어떠한가.​


자꾸만 시선이 아래로만 향하는 나와 달리 아이들의 눈동자는 용기로 넘실댔다. 이것도 궁금해요, 저것도 해보고 싶어요, 하며 마치 새벽을 깨우는 해처럼 반짝이는 두 눈들. ​


오늘은 이상하게도 가슴 뛰게 아름다운 눈길이 나를 따라온다. 내게 눈으로 말을 걸고 내 가슴을 힘차게 두드린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제 몫을 살아가는 그 눈'빛' 앞에서 내가 얼마나 초라하던지. 어찌나 부끄럽던지.

나도 그런 눈을 하고서 세상을 바라보던 때도 있었을까. 지난 세월 동안 세상에 나설 수 있는 한계를 빗금으로 그어두고 그 안에 가두고 갇혀 있었던 것 같다. 힘이 들고 버겁다는 이유로 뒤로 물러서는 연습에만 몰두하게 된 것인지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


'다시 빛을 찾아야 해.'​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 곁에 있으면 그 기운이 자연스레 옮겨 온다. 그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


고장  텔레비전도 때로는 툭툭   얻어맞고서 곧장 컬러로 가득한 화면으로 돌아오기도 하니까. 다시 삶을 끌어안을 힘을 쉽게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안을 어떤 빛깔로 채워볼까. 이번에는 내가 채운 빛이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너희들에게 환함을 전해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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