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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딩 숲속 월든 Jul 09. 2023

미세한 거대망념


최근 겪은 힘이 센 미세망념 중 하나는 1차 화살에 대한 부정, 거부, 회피이다. 알고 보면 거대망념이지만 미세망념인 이유는 무색무취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 은은하게 스며들어 의식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1차 화살은 불가항력에 가깝다. 주로 오랜 기간 강력하게 훈습된 무의식 또는 몸의 느낌에 기반한 것들이 많으며, 하얀 구름이 먹구름으로 변해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비가 내리는 메커니즘을 이해한다고 해서 비가 내리는 자연현상을 통제할 수는 없다.


깨달음을 통해 착각에서 벗어나고, 점수의 과정을 통해 불필요한 고통에서 벗어나 전보다 훨씬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긴다. 인과에 밝아지다 보니 괴로움의 징후들에 민감해짐으로써 가래로 막게 될 것을 호미로 막게 되는 지혜의 힘도 단단해진다. 바로 이 틈으로 미세망념이 바이러스처럼 침투한다. 화도 안 나고, 병에 걸리지도 않고, 언제나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스러운 연기적 현상인 1차 화살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시비가 붙는 사건이 생기고, 찌질하게 화를 내고, 예상치 못한 몸의 이상에 당황하는 등 현타*가 찾아오게 되며, 그간의 깨달음과 점수의 과정이 마치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 같은 좌절을 맛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우화에서 더 많은 황금알을 얻기 위해 거위의 배를 갈랐는데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낭패감이 이와 같지 않을까? 이 공부를 하며 의심을 놓지 말아야 하고,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며, 어느 한 곳에 말뚝 박지 말고, 늘 허공에 발을 디뎌야 하는 이유다.


* 현타 (現time) : ‘현실 자각 타임’을 줄여 이르는 말로,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


깨달음은 생로병사에서 벗어나 초인(招人)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평범하고 완벽하게 생로병사 하되 불필요한 괴로움에 젖지 않는 사람으로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깨달음은 세수하다 코 만지는 것처럼 쉬운 일일 수도 있지만, 한 곳에 머물며 안주하거나 말뚝 박지 않고. 의심을 놓지 않으며, 부정의 부정을 통해 거듭 떨치고 나아가는 일은 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임을 온몸을 통해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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