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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ang Apr 09. 2019

언제나 수신 양호

아이가 보내는 신호

H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J는 유치원의 7세 최고 형님반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잠시 무뎌졌고, 그래서 몹시 화내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한동안은 그 화를 전혀 제어하지도, 정제하지도 못한 채로 분출시키곤 했던 것이다.

핑계라면 나도 너무 힘들고 지쳐간다는 것 정도, 그렇게 보통의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이겠거니

생각하곤 했다. 마음을 다잡아 가며 그 정도 버티는 것도

여간해서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금세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가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을 툼벙툼벙 떨구고 마는 H.

단호하지 못한 나도 그런 H를 바라보는 것은 고통이다. 그러면 나도 곧 눈가가 뜨거워진다.

화를 내는 시간은 주로 저녁 공부 시간이다.

H의 학습 능률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염려해 파고들수록 아이는 주눅이 드는 것이다. 더 큰 지지와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아이,

허나 모든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한 번 두 번 격하게 감정 표현을 해버린 것이 잘못이었다.

눈치 보는 것이 일상이었던 아이에게 눈치 봐가면서 공부하고 상황에 따라 행동하라는

무언의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책하면서 말이다.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너에게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말이다...




2019년 3월 3일. 2학년 첫 등교를 하루 앞둔 H. 이날 이발을 했다. 처음 해본 투블럭 컷이 맘에 들었다.



학교 가기 싫어.


2학년이 된 H가 새 학기가 시작된 3월 한동안 아침에 눈 떠서 처음 한 말이었다.

노심초사 걱정했던 1학년 때도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던 H였다.

혹시나 그러면 어쩌나 애간장을 태우던 터라 학교에 대한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던 것이다. 그나마라도 나름의 학교 생활을 해 나가는 H가 대견해 잠든 H를 바라보며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학기 초라 부침이 있나 보구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얼마간의 모른 체와 합리화를 거친 뒤

다독여 등교시키고, 출근해 정신없이 일한 뒤 퇴근해 집으로 가면 책상 앞에서 의기소침해진 H를

마주하곤 했던 것이다.


고모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지.
내가 얼마나 힘든데, 고모는 알지도 못하면서.
나도 잘하고 싶단 말이야.



격하게 울음을 터트리고 만 H가 쏟아낸 말들이 가슴에 콕콕 와 박히면서, 그날은 아이를 품에 안고

나도 실컷 울고 말았다. 한 번은 이런 말도 했다.



학교 가기 싫어.
H, 그렇구나. 그런데 왜 싫은지 말해 줄 수 있어?
시시해.


'시시하다니, 시시하다니 H. 그렇담 고모는 H가 또래보다 한 발 앞서가서 그런 것이라고 해석해도

되는 것이니..?' 그런 것이라면 한결 마음이 편안할 것 같구나, 아니 정말 정말 행복할 것 같아.

물론 H 언어치료 선생님의 의견은 달랐다.



반어법일 수 있죠.
무엇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는 게
H는 자존심 상할 거예요.



아이가 보내는 무수한 싸인들. 그 싸인들을 모두 알아채기는 불가능이겠으나,

무뎌지지는 말아야 할 터인데. 세 번 보내는 신호 중 한 번은 수신이 되어야 할 텐데 H야.

가장 가까이 있는 고모가 최소한 그 신호에는 가장 기민하게 대처해야 할 텐데, H야.

더 많이 안아줄게. 더 많이 응원해줄게. 화는 조금만 낼게.

더 많이 얘기해줘, 더 많이 신호를 보내줘 H.


2019년 2월 17일. H가 1년 동안 단짝으로 지낸 친구와 키즈카페에서 만나 아쉬움을 달랬다. 그 친구와는. 2학년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 H 보다도 내가 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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