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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Jang Aug 29. 2018

칼퇴와 육퇴

뫼비우스의 난형난제

칼퇴근은 직장인의 애환이 집약된 말이다. 퇴근, 그중에서도 6시 정시 퇴근을 소원하는 직장인이 얼마나 많았으면 '칼'퇴근이라는 말까지 생겼단 말인가. 할 일을 다 하고도 칼같이 퇴근하기는 또 얼마나 어렵고!! 6시는 고사하고 7시, 8시가 되었는데도 상사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때는 떳떳하게 사무실을 나오기가 어렵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까지 하나 싶지만 눈치껏, 요령껏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인 직장생활에서 눈치 보지 않고 퇴근을 했다가는 눈치 없는 사람으로 치부당하기도 십상이다.


2018년 4월 26일 목요일. 워킹맘의 일상은 두 개의 회로가 동시에 돌아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요즘 내게 칼퇴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육퇴'다. 육아퇴근. 이건 칼퇴근 보다도 슬픈 말인 것 같다. 회사 생활이야 심사 틀리면 출근도 퇴근도 없는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지만 육아란 전혀 다른 문제다. 한 번의 선택으로 근 십수 년은 육퇴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은가. 나의 경우 가능한 6시 30분을 넘기지 않고 퇴근하려 애쓰는 편이다. 죄책감을 갖지 않기 위해 업무 시간에 최대한 밀도 있게 일하고, 가능한 눈치 보지 않고 뒤끝 없이 산뜻하게 퇴근하려고 애쓴다. 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오면 적어도 1시간은 걸리니 사무실에서 아무리 빨리 나온다고 해도 7시는 당연히 넘는다. 평균적으로 7시 20분 전후면 집에 도착하는데, H와 J의 준비물이 있을 때는 마트에 들러 장을 보니 8시를 넘길 때도 많다. 집에 와서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나면 8시에서 8시 반 사이. 바로 H와 J의 학교 숙제, 인지 치료 과제, 가정통신문, 알림장, 독서록, 유치원 과제, 받아쓰기 등등을 지도하고 확인하면 10시가 다 됐다! 옴마낫! 벌써 10시라니. 퇴근과 동시에 바빠졌던 마음에 점점 가속도가 붙어 가장 바빠지는 때가 바로 이 시점이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을 잠자리로 인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강 2~30여 분 정도 아이들을 샤워시키고 잠자리 채비를 한다. 아이들이 곧 누워주면 좋으련만 H와 J는 여전히 놀고 싶어 한다. 잠시 고민하지만 내일 아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등을 끄고 작은 수면등을 켠 뒤에 내가 먼저 동화책을 들고 눕는다. 그리고 셋이 옆옆으로 머리를 모으고 동화책을 읽는다. 동화책을 다 읽고 수면등까지 끈 뒤에 그날 그날 H의 학교생활과 J의 유치원 생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묻거나, 가끔 아이들의 아기 시절 이야기를 해준 뒤에도 아이들은 아쉬워하며 눈을 감는다. 운 좋게도 퇴근 길이 잘 뚫렸다거나, 엄마가 미리 목욕을 시켰다거나, 아직 여섯 살인 J가 내가 퇴근하기 전에 잠들었다거나 하는 경우 보통의 저녁 일정에서 30분가량이 단축되기도 하지만 분주한 마음에는 별 소용이 없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는 거의 불가능이다. 아이들은 조잘조잘 하고 싶은 말이 (기쁘게도) 너무나 많고, 아이니까 떼를 쓰는 일도 당연하며, 조금만 서운해도, 내 목소리가 조금만 높아져도 울어버리거나, 그러면 또 우는 아이를 얼러 달래야 하고.... 블라블라..

아이들의 성장판 닫히는 소리와 내일 아침의 기상 전쟁이 충분히 예상되는 오늘의 육퇴 시간은 11시. 10시 30분도 버겁다. 칼퇴근을 하더라도 이후 약 서너 시간 동안 9 to 6에 뒤처지지 않는 치열한 일과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나 역시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 이잖은가. 육퇴랄 것도 없이 아이들과 함께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그러니 육퇴 이후 잠깐의 여유가 얼마나 꿀맛 일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일이다.


2017년 5월 7일 일요일. H와 J의 베이 사랑은 끝이 없다. 우리집에서 살기 시작한 그 이틑날 처음 사준 장난감도 팽이다. 지금은 아마도 한 삼십개쯤은 사모은 것 같다.



H가 한때 심취했던 애니멀포스. 2017년 8월 6일 일요일.



J가 좋아하는 트레인포스. 이전에 살던 집에서 가져온 유일한 장난감이다. 2017년 9월 29일 금요일.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워킹맘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된 것은 내가 어느 정도 제정신을 차리고 난 근래의 한두 달 전에 불과하다. 내가 싱글맘이자 워킹맘과 유사한 생활 중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이 그즈음부터다. 아이들이 자신이 해야 하는 일과 나름의 규칙을 습득하며 일상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반 수개월 동안은 마음이 급했던 H의 한글 학습을 제외하고는 정해놓은 할 일도 규칙도 없었다. 어떤 제재도 강요도 하고 싶지 않았고, 당분간은 해서도 안 된다고 믿었다. 지금 돌이켜 정리해보면 '하고 싶은 놀이, 하고 싶은 만큼' '규칙과 생활습관은 다 놀고 난 뒤에'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무슨 가이드냐 싶기도 하지만 놀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놀잇감을 나는 정말 이상하리만치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엄마와의 마찰도 컸다. 힘들기는 엄마도 마찬가지였을텐데 아이들을 길들이지 않고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 시기, 그래도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내가 좋은 신호라 여겼던 지점이 있었는데, 그 역시 나의 칼퇴와 육퇴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도 정말 오래오래 놀았다. 헬로카봇 놀이도 하고, 베이 배틀도 했다. 토마스 레일 조립까지 했을 수도 있다. 색칠놀이와 종이접기도 했다. 핸드폰도 충분히 했다. 온통 놀이만 하던 때였다. 그러면 이미 밤 10시는 충분히 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이제 그만 자자고 재촉하는 내게 H가 우는 소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으어어어엉 고오모오~
나 많이 못 놀았단 말이야아~


그 순간 H가 너무 귀여워서 픽 하고 웃으며 내 얼굴이 일순간 밝아졌다. 광대와 입꼬리가 자동반사적으로 올라가던 느낌이 아직도 얼굴 근육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곧바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모, 나 그래도 건강해. 고모가 걱정하는 것만큼은 아니야. 나 더 건강해질 수 있어. 괜찮을 거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놀고 싶어 하는 아이는 그 자체로 온전하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우며 건강하다는 뜻이 아니고 대체 무엇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런 나를 보고 요 녀석이


아니 고오모오~
내가 이렇게 슬픈데 고모는 왜 웃는 거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만 박장대소를 하면서 H를 와락 안았다.

'오! H야, 신호 보내 줘서 고마워. 고모가 신호 접수했어.'

나는 혼자서 뜨거워졌다가 울컥했다가 요동을 쳤고 덕분에 녀석들은 근 수십 분쯤은 너끈히 더 놀았을 것이다.

웃프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서야 완벽하게 이해한 것 같았다.



2018년 4월 24일 화요일. 베이 수집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영실업 짜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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