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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브랜드 후광효과는 감소하고 제품력의 시대가 온다

소비 트렌드의 변화, 더욱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는 사람들과 리테일 미디어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의 발표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1~6월) 글로벌 TV 시장에서 TCL이 15.2%, 하이센스가 14.9%, 샤오미가 5.8%의 출하량 점유율을 기록하며, 중국 3사의 합계 점유율은 35.9%에 달했습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17.9%)와 LG전자(11.8%)를 합쳐 29.7%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 업체들이 한국 업체들을 추월한 셈입니다. 물론 TV 제품군의 세분시장, 기술적 특성 등을 고려하면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국산 제품들은 충분히 괜찮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면서 전 세계 시장은 물론 삼성·LG의 안방인 국내 시장까지 빠르게 파고들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브랜드 후광효과는 감소하고 제품력의 시대가 온다'의 내용은 도서 <커머스의 미래 로컬> <취향과 경험을 판매합니다>의 내용이 인용되어 구성되었습니다. 도서는 교보문고 등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이러닝 서비스 인터뷰어에서 은종성 저자의 강의와 참고자료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도서도 제공됩니다)


chapter 1. 소비 트렌드 변화. 브랜드 후광효과의 감소

브랜드보다 가성비를 선택하는 사람들

변화의 흐름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관찰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혼부부가 25평(84㎡) 새 아파트에 놓을 TV를 고른다면 여전히 삼성전자나 LG전자를 선호합니다. 그러나 일부는 아예 TV를 구매하지 않거나, 대형 TV보다는 이동이 편리한 스탠드형 TV를 구매하기도 합니다. 이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가성비 높은 중국산 TV입니다. 이유는 충분히 좋은 품질에 가격이 많이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샤오미의 65인치급 스마트 TV는 삼성 제품과 화질 등 기본 성능은 비슷하면서도 가격은 3분의 1 수준입니다. 물론 TV처럼 오랫동안 사용하는 제품은 A/S와 같은 부가서비스도 중요합니다. 가격만이 구매결정 요인은 아닙니다. 그런데 A/S를 받는 선택보다 고장 나면 그때 새것을 다시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충분히 좋은 제품인데 가격이 3배 저렴하다면 브랜드의 후광효과는 감소하기 마련입니다.


중국산 제품을 선택하는 이유가 단순히 저렴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봇청소기 시장 1위 브랜드 로보락(Roborock)입니다. 로보락은 2014년 베이징에서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초기에는 샤오미 생태계를 활용해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OEM 파트너가 아니라, 샤오미 플랫폼을 기반으로 기술–디자인–브랜드–유통을 통합한 독립형 브랜드로 진화했습니다. 사용자의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제품 개선에 반영하고, 매년 1~2개의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빠른 혁신 주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알리익스프레스, 아마존, 쿠팡, 네이버 등)을 중심으로 리뷰 데이터와 사용자 경험을 핵심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해, 하드웨어를 넘어 ‘사용 경험 비즈니스(UX Business)’로 로봇청소기를 재정의했습니다.

로보락의 성공은 ‘중국산 = 저가’라는 공식을 무너뜨렸습니다. 과거 중국산 제품이 값싼 대체재로 인식됐다면, 이제는 기술력과 디자인, 브랜드 감성, 사용자 경험을 갖춘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로보락은 샤오미 생태계에서 독립 상장한 뒤 프리미엄 모델을 중심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으며, 일부 고급형 모델은 삼성이나 LG 제품과 견줄 만한 가격대에 포지셔닝되어 있습니다. 즉, 소비자들은 단순히 ‘싼 제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좋은 품질과 세련된 경험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브랜드’를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브랜드의 시대에서 제품력의 시대로, 인공지능이 바꾸는 이커머스

제품 품질의 상향평준화 시대

과거에는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 곧 품질을 담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몇몇 글로벌 기업들이 기술과 노하우를 독점하던 시절, 소비자들은 잘 모르는 브랜드의 저렴한 제품은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 여겨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신규 업체들의 제품 수준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지가 넓어진 것입니다. 고가 프리미엄 제품과 중저가 제품 간 성능 격차가 예전보다 줄어들고, 기본 기능이나 내구성 면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느낄 만한 품질을 대부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품질의 상향 평준화 시대에 소비자들은 굳이 더 비싼 브랜드 제품을 고집해야 할 이유가 약해지고 있습니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자, 실용적인 소비자는 합리적인 대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 시장에서 로봇청소기 부문을 보면, 2024년 기준 로보락(Roborock)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46%를 넘어섰습니다.


소비 트렌드 변화의 배경에는 소셜미디어와 같은 정보 환경의 혁신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품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커서, 소비자가 알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었습니다. 품질이나 내구성은 써보기 전에는 확신하기 어려우니, 결국 믿을 건 익숙한 브랜드뿐이었죠. 기업들은 이를 이용해 브랜드 이미지만으로 소비자를 끄는 마케팅을 펼치곤 했습니다. 일종의 브랜드에 대한 신뢰로 찍어 구매하는 일이 잦았던 겁니다. 그런데 인터넷의 보급과 리뷰 문화의 발달로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전문가와 사용자들이 남긴 제품 후기, 테스트 영상, 별점 평가 등 정보를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거의) 완전한 정보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제품을 사기 전에 온라인에서 수십 개의 리뷰를 읽고 성능과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고, 굳이 브랜드 명성만 믿고 감으로 구매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싸구려라서 금방 고장 날 것', '유명 브랜드 아니니 믿을 수 없다'는 식의 막연한 추측은 힘을 잃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에서는 가성비 좋은 숨은 제품들이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집니다. 대기업 못지않은 기술력을 지녔지만 홍보 예산이 적은 중소기업이나 신생 브랜드도, 온라인 평판만 좋다면 큰 비용 들이지 않고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제품의 진짜 실력과 가격 메리트가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게 드러나면, 브랜드 파워는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진입 장벽의 하락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거 같으면 이름 없는 회사가 대기업 영역에 뛰어드는 건 어려웠겠지만, 이제는 스타트업도 막대한 마케팅 없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브랜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객관적 정보와 가치 평가에 근거한 소비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소비 트렌드의 변화, 리테일 미디어의 확산 / 동영상 제작 : 구글 제미나이

절대 가치에 집중하는 합리적 소비의 확산

이제 소비자들은 보다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가격 대비 내가 얻는 가치(절대 가치)가 충분한가를 먼저 따져보고, 브랜드 네임밸류는 부차적인 요소로 여기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절대가치 소비 트렌드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성비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합리적인 소비자들은 성능이 비슷하면 가격이 싼 쪽을 택합니다.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 평점, 유튜브 리뷰 비교 등이 구매 결정의 핵심 자료가 되었고, 여기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무명 브랜드 제품도 불티나게 팔리는 현상이 보입니다.


연관 지어 브랜드 충성도는 약화되고 있습니다. 한 번 써보고 만족하면 다음에도 무조건 그 브랜드를 고집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랜드 충성 고객층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대신 카테고리별 최고의 가성비 제품을 찾아가는 현명한 소비자가 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스마트 컨슈머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컨대 스마트폰을 살 때도 무조건 삼성, 애플이 아니라 스펙 대비 가격이 뛰어난 모델을 찾아 중국 브랜드나 중저가 브랜드를 과감히 선택하는 식입니다.


또한 굳이 새 제품 최고급형 아니어도 됩니다. 소비자 마인드도 변화하여, 제품 수명주기를 짧게 보고 필요할 때 교체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어차피 전자제품은 몇 년 지나면 기술이 더 좋아지니, 적당한 가격의 제품으로 쓰다가 바꾸자라는 합리적 계산을 하는 것이죠.


물론 브랜드 가치가 완전히 의미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프리미엄 이미지나 신뢰성 때문에 특정 브랜드를 고집하는 소비층이 존재하고, 애프터서비스망, 제품 생태계 연결성 등 브랜드가 주는 부가가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정보의 투명성 증가와 품질 상향평준화로 브랜드 파워의 상대적 비중이 예전보다 감소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chapter 2. 브랜드 이탈을 가속화하는 추천 알고리즘

데이터 기반의 '리테일러'가 게임의 판을 바꾼다

오늘날 대부분의 제품은 충분히 좋은 수준의 품질을 제공합니다. 이는 기술 발전과 정보의 민주화 덕분입니다. 소비자는 더 이상 비싼 돈을 주고 유명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품질의 제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브랜드가 '품질 보증 수표'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온라인 리뷰, 사용자 후기, 성능 비교 데이터 등을 통해 제품의 '절대가치', 즉 품질과 가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리테일러의 역할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리테일러는 단순히 제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중개자 역할에 머물지 않고 있습니다. 리테일러들은 고객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AI 기반의 개인화된 제품 추천을 제공하면서 게임의 판을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이를 리테일 미디어라고 합니다)


리테일러들은 고객이 어떤 제품에 관심을 가졌는지, 어떤 제품을 구매했고 어떤 피드백을 남겼는지 등 방대한 데이터를 AI가 학습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적화된 제품을 제안합니다. 마치 맞춤형 큐레이터처럼, 소비자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필요까지도 충족시켜 주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개인화된 추천은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를 찾아 헤매는 수고를 덜어주고, 검증된 제품력을 가진 다양한 옵션을 제시합니다. 결국 소비자는 리테일러의 추천을 신뢰하게 되고, 리테일러는 강력한 플랫폼 파워를 바탕으로 제조업체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게 됩니다. 유통업체들이 PB(자체 브랜드) 상품을 기획하고 생산까지 주도하는 현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인화된 방식으로 상품을 제안하는 리테일 미디어 / 출처 : 인터뷰어 은종성TV

알아서 찾아주는 리테일 미디어, 브랜드의 영향력을 흔들다

혹시 쇼핑하실 때, 원래 사려던 브랜드가 아닌 다른 제품을 구매해 보신 경험 없으신가요? 사실 여기에는 쿠팡이나 네이버 같은 플랫폼의 숨은 노력이 있습니다. AI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가 특정 브랜드를 고집하지 않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특정 브랜드의 로션을 사려고 쿠팡에 들어가면, AI는 슬며시 같은 카테고리의 다른 회사 제품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제품들이 제가 사려던 것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상품평도 더 좋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 다른 브랜드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게 됩니다.


과거에는 ‘이 브랜드는 믿을 만하니까’라며 다른 제품까지 구매로 이어지는 ‘브랜드 후광효과’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 힘이 많이 약해지고 있는 셈입니다. 소비자들은 브랜드 이름값보다는 가격이나 후기 같은 객관적인 지표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조사와 유통 플랫폼 간의 주도권 싸움은 우리가 쇼핑하는 화면에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쿠팡의 상품 이미지를 한번 떠올려볼까요? 쿠팡은 광고를 집행하는 상품의 경우, 흰색 배경을 사용하고 이미지에 들어간 문구나 로고를 지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로고가 박힌 이미지도 쿠팡에 올리면 자동으로 흰 배경에 제품만 덩그러니 남게 되죠.


이런 규정은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먼저 보기보다, 제품 자체의 모습과 가격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결국 플랫폼 안에서는 브랜드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가격과 스펙을 앞세운 제품 자체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우리 소비자들도 이런 방식을 꽤 선호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마트의 ‘노브랜드’나 쿠팡의 자체 상품(PB)들이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소비자들은 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 제품을 기존 브랜드 상품의 좋은 대안으로 여기고, 매장이나 플랫폼이 추천하기 때문에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쿠팡의 자회사인 씨피엘비(CPLB)의 높은 실적이 바로 이런 현상을 뒷받침하는 좋은 예입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꼭 익숙한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쿠팡이나 이마트 같은 플랫폼이 보증하는 제품이라면 믿고 구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똑똑한 개인화 추천과 플랫폼에 대한 두터운 신뢰가 만나면서, 기업들이 전통적인 브랜드 파워 하나만으로 소비자를 붙잡아 두기는 점점 더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리테일러가 미디어로 확장된다

네이버나 쿠팡에서 로션을 구매했다면 '내가 산 것일까요?' 아니면 '플랫폼이 사게 한 것일까요?'. 나의 경험과 브랜드 신뢰도도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산 것'의 비율도 여전히 높지만, '플랫폼이 사게 한 것'의 비율도 증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의 사례를 보면 이 흐름이 더 명확하게 보입니다. 재미있는 분석이 있는데요, 2023년에서 2025년 사이 네이버를 방문하는 사람의 수(MAU)는 정체상태이지만, 개인화 추천 서비스를 강화한 덕분에 꾸준히 재방문하는 충성 고객은 오히려 늘었다고 합니다. 네이버는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을 중심으로 고객의 생애주기에 맞춘 혜택을 주거나, 특정 스토어를 팔로우하는 사람들에게만 쿠폰을 주는 식으로 혜택을 다층적으로 설계했기 때문인데요. 이것이 바로 ‘AI 추천 → 맞춤 혜택 → 재구매 → 플랫폼에만 머무는 고객(락인)’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인 거죠. 결국 소비자들은 같은 돈을 쓰더라도 나를 가장 잘 챙겨주는 플랫폼에 머무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모두에게 좋은 소식만은 아닙니다. 플랫폼 중심의 쇼핑은 개별 브랜드나 판매자에게는 ‘양날의 검’과 같기 때문입니다. 모든 노출 기회가 플랫폼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되다 보니, 예전처럼 검색 순위만 높이면 물건이 팔리던 ‘전통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오랜 셀러 상당수가 고전하고 있고, 브랜드 파워만 믿고 플랫폼 최적화에 신경 쓰지 않은 업체들은 플랫폼과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결국 소비자들은 플랫폼은 계속 찾고 있지만, 그 안의 특정 판매자나 브랜드에 대한 의리는 점점 옅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플랫폼은 정말 다양한 상품을 갖추고 있고, 주문은 편리하며, 배송은 빠르죠. 믿을 만한 후기와 평점 시스템도 잘 되어 있고요. 이런 환경에서는 소비자들이 굳이 하나의 브랜드를 고집할 필요가 점점 줄어듭니다. 이렇게 브랜드 자체에 대한 애착은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반면, 플랫폼이 나에게 맞춰 제공하는 경험과 혜택에 대한 충성심은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chapter 3.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대응방안 1. 브랜드 스토리텔링 강화

그렇다면 이런 거대한 흐름 속에서, 기존 브랜드들은 손을 놓고만 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이들 역시 마케팅 전략을 새롭게 짜면서 변화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움직임이 바로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플랫폼에서는 제품의 가격이나 성능을 비교하기가 너무나 쉬워졌습니다. 그러니 이제 브랜드들은 단순히 '우리 제품 좋아요'라고 외치는 대신, '우리는 이런 가치와 철학을 믿는 회사예요'라는 감성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사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브랜드만의 가치를 꾸준히 전달하거나, 팬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식이죠. 이렇게 쌓인 관계는 ‘정서적인 충성도’로 이어집니다. 플랫폼에서 잠시 더 저렴한 경쟁 상품을 보더라도, 결국에는 내가 애착을 가진 그 브랜드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되는 겁니다.


대응방안 2. 리테일 미디어 예산 확대

그리고 브랜드의 또 다른 움직임은, 새로운 전쟁터인 ‘리테일 미디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정면 승부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마케팅 예산을 주로 소셜미디어나 검색광고에 썼다면, 이제는 그 돈이 쿠팡, 아마존, 네이버 같은 리테일 미디어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BCG의 최근 설문조사를 보면 브랜드들이 전체 광고 예산의 약 20%를 이미 리테일 미디어에 쓰고 있고, 앞으로 이 비중을 더 늘릴 거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투자는 모든 곳에 분산되는 게 아니라, 효과가 확실하고 데이터 분석이 명확한 상위 서너 개 플랫폼, 우리나라로 치면 네이버나 쿠팡 같은 곳에 집중되는 추세를 보입니다.


이에 발맞춰 기업들은 아예 전담팀을 만들거나 이커머스 전문가를 채용해서 각 플랫폼의 검색 알고리즘에 맞게 상품 설명을 최적화하고, 리뷰를 관리하며, 플랫폼의 추천 방식에 대응하는 등 아주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상세 페이지를 더 매력적으로 뜯어고치고, 키워드 광고를 진행하며, 별점이나 고객 문의(Q&A)에 정성껏 답변하는 모든 활동이 결국 AI 알고리즘이 우리 제품을 더 좋게 보고 자주 노출하도록 만들기 위한 작업인 셈이죠. 이제는 AI 알고리즘이 좋아할 만한 ‘AI 친화적’인 상품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브랜드의 새로운 핵심 과제가 된 것입니다.


대응방안 3. 광고 집행의 자동화와 동적 예산 배분

리테일 미디어 환경은 실시간으로 광고 단가가 정해지는 경매 방식인 데다, 운영해야 할 채널도 너무 많아서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일일이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죠. 그래서 AI를 활용한 자동 최적화 도구들이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터넷광고국(IAB) 같은 곳에서도 AI 기술을 도입해서, 여러 리테일 미디어 채널의 광고 입찰 전략과 예산 배분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라고 권장할 정도입니다. 상황에 맞게 광고 디자인(크리에이티브)을 바꿔서 보여주는 것까지 포함해서요.


이미 발 빠른 광고주들은 DSP(Demand Side Platform)라는 광고 자동화 솔루션에 탑재된 AI 기능을 활용해서 캠페인 운영을 자동화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광고비 대비 매출(ROAS)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있죠. 예를 들어 스냅챗의 스마트 캠페인은 AI가 알아서 광고 입찰가와 예산을 조절해 목표 전환 비용(CPA)을 맞춰주고, 유튜브 역시 쇼핑이 가능한 광고를 선보이면서 리테일 미디어와 전통 미디어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구글 AD, 네이버 광고, 쿠팡 광고, 토스 광고, 당근(마켓) 광고 등도 빠르게 DSP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시간 최적화 기술 덕분에, 브랜드들은 이제 어떤 채널에, 어떤 타이밍에 광고비를 더 쓸지 혹은 줄일지를 아주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광고비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대응방안 4. 플랫폼과의 협업 및 데이터 활용

브랜드들은 이제 플랫폼과 ‘경쟁’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손을 잡고 ‘협력’하며 데이터를 함께 활용하는 길을 택하고 있기도 합니다. 리테일러가 가진 고객 데이터(1st-party data)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맺는 건데요. 예를 들어 대형 브랜드들이 네이버에 공식 브랜드스토어를 열고, 멤버십 회원을 모으거나 팔로워에게만 특별 쿠폰을 주는 활동을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브랜드데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팬들과 소통하기도 하죠. 이건 플랫폼의 엄청난 방문자 수를 이용하면서도, 그 안에서 우리 브랜드만의 ‘찐팬’, 즉 고객 풀을 따로 만드는 아주 영리한 투트랙 전략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옴니채널 캠페인을 위해 유통사와 광고 데이터를 공유하고 성과를 함께 측정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닥터지(Dr.G)와 올리브영이 진행한 캠페인을 통해 대응방안의 힌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닥터지는 주력 제품인 ‘레드 블레미쉬 클리어 수딩 크림’의 올리브영 단독 기획 세트가 출시되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통해 대대적인 광고를 집행합니다. 이 광고는 올리브영 앱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추가 할인 쿠폰이나 증정품 혜택과 연결됩니다. 고객은 앱으로 제품을 구매한 뒤 ‘오늘 드림’ 서비스를 통해 매장에서 바로 픽업할 수 있으며, 이 기간 동안 오프라인 매장 내 가장 눈에 띄는 매대와 디지털 스크린에는 닥터지 프로모션이 집중적으로 노출됩니다. 구매가 완료된 고객에게는 올리브영 앱을 통해 리뷰 작성 시 포인트를 제공하는 등의 푸시 알림을 보내 참여를 유도하고 데이터를 축적합니다.


이 과정에서 닥터지는 제품과 마케팅 콘텐츠를 제공하고, 올리브영은 자사의 강력한 온·오프라인 플랫폼과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공동 캠페인을 설계하고 성과를 분석합니다. 이런 접근 방식을 ‘리테일 미디어 3.0’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브랜드와 유통사가 경계를 넘어 함께 움직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렇게 서로 협력하는 것이 소비자의 경험을 더 풍부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최고의 전략이 되는 셈입니다.


대응방안 5. 제품 라인업과 가격 전략 자체를 새롭게 구성

소비자들은 이제 한 가지 모습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한 명의 소비자 안에도 가성비를 따지는 모습과, 특별한 만족감을 원하는 모습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들은 이제 한 가지 포지션만 고집하기보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고객 데이터를 아주 세밀하게 분석해서 가성비 라인과 프리미엄 라인을 모두 갖출 수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같은 제품이라도 어느 채널에서 파느냐에 따라 구성이나 프로모션을 다르게 적용하는 등 아주 정교한 전략도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유통사와 손잡고 '브랜드 상품을 사면 PB 상품 할인권을 주는' 식의 교차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서로 적인 줄만 알았던 브랜드와 PB가 손을 잡고,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시장 전체를 키우자’는 상생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것입니다.


브랜드의 시대는 끝났을까?

이제 웬만한 제품은 다 품질이 좋아졌고, 소비자들은 온라인 리뷰 등을 통해 얼마든지 똑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전처럼 브랜드 이름만 믿고 물건을 사는 일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제품의 진짜 실력, 즉 ‘제품력’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쿠팡이나 네이버 같은 플랫폼과 리테일 미디어를 만나면서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편리한 환경과 AI 추천 속에서, 소비자들은 브랜드보다는 당장의 가격이나 조건, 실제 사용 경험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충성심은 이제 특정 브랜드가 아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브랜드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좋은 브랜드는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서 품질과 신뢰를 상징하는 등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다만, 알고리즘이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이 등대가 계속 빛나려면, 브랜드들 역시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야기를 통해 감성을 터치하고, 데이터와 AI라는 도구를 활용해서 소비자 한 명 한 명과 소통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플랫폼과 손잡고 함께 이기는 전략을 고민하면서도, 브랜드만이 가진 고유의 매력은 잃지 않는 지혜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처럼 변화의 물결 속에서, 변화에 잘 맞추면서도 자신만의 중심을 잃지 않는 브랜드만이, 소비자의 눈길과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는 미래의 승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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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트렌드의 변화, 제품력의 시대가 온다 / 이미지제작 : 제미나이, CAN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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