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막연하던 그이와의 교재가 1년째 접어들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장난스러운 대화중이었고 결혼이라는 의미 없고 가벼운 소재에 대해 몇 마디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그이에게 ‘나랑 결혼하자’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나보다. 그이가 이런 대답을 했다.
“아직 안 돼. 넌 아직 희생할 마음이 없잖아.”
꽤 아주 꽤 내게 자극적인 문장이었다. 예전부터 그이가 자주 하던 ‘어떤 농담’을 하는 장면들이 영화 속 장면처럼 팔랑팔랑 넘어갔다. 그이가 내 뭉친 어깨를 토닥여 주면서 '우리의 사랑은 나의 희생과 봉사로 이루어져 있지'라고 거드름을 피우면 나는 좋다고 깔깔거리면서 맞다고 맞장구쳤다. 그이가 내 차가운 손을 녹여주면서 ‘우리의 사랑은 나의 희생과 봉사로 이루어져 있지’라고 거드름을 피우면 나는 좋다고 깔깔거리면서 맞다고 맞장구쳤다. 그이가 매주 나를 보러 서울에 와서는 ‘우리의 사랑은 나의 희생과 봉사로 이루어져 있지’라고 거드름을 피우면 나는 좋다고 깔깔거리면서 맞다고 맞장구쳤다.
좋다고 웃어넘길 농담이 아니었다. 희생과 봉사라는 단어들로부터 현실적인 결혼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개인주의 성향의 내가 희생과 봉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따져보게 되었다. 엄마라는 역할, 아내라는 역할, 며느리라는 역할, 서류상으로 일어난 본가 식구로서의 역할, 한 가정의 책임자로서의 역할을 가늠하면서 내가 감내해야 할 희생의 크기를 그려보았다.
나는 이따금씩 스스로에게 희생과 봉사를 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를 물었다.
“나는 지금의 나를 포기할 수 있는가?”
결혼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한번 더 질문한다.
“잘 모르겠다”
그 크기와 파급력이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희생과 봉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주 쪼끔 인지했다. 사용을 잘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준비물은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