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소식을 공개하면서 오래 연락 없던 사람들에게서 연락들이 왔다. 이 사람 역시 결혼 소식을 듣고 전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뭐야 몇 년 만이야'하고 전화를 받았고, 이 사람은 '결혼한다며 축하한다'라고 했다.
본인은 예쁜 아이와 예쁜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던 그때 내가 해줬던 현명한 말들이 아직 교훈이 된다고 어쩜 항상 철들 수 있었냐며, 고마웠다는 말과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사람의 말은 나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니까 하나만 묻자, 나랑 결혼했으면 어땠을 것 같아?”
“??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해ㅋㅋ 절대 안 해”
“왜??”
“주말이 어떨지 빤히 보여서 하고 싶지 않아.”
“어떨 것 같은데??”
"오후 늦게 일어나겠지. 아는 동생한테 전화해서 사우나 가겠지. 저녁이 되면 친한 친구들 불러서 술 한 잔 하고 기분 좋으면 집에도 데리고 오겠지. 한 번 더 반복하면 주말이 끝날 거야. 어때 비슷해?"
“........... 응 현명하네”
“내가 좀”
아무튼 이 사람의 전화는 신선했고 고마웠다. 덕분에 반려인과 절대 보내고 싶지 않은 주말 풍경에 대해 상기하게 되었다.
그이와 도란도란 주말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결혼식 날짜를 세어보고는 그이가 결혼을 물릴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며, 우리 자신의 단점에 대해 집고 넘어가자고 했다. 그이는 내 눈을 바라보며 담백하게 말했다.
“나는 주말에 나들이 계획을 짤 수 없을 것 같아”
이 무슨 망언이란 말인가.............. 내 남자는 다를 줄 알았는데 다를 것 없구나. 아, 나 사람이랑 결혼하는구나. 슈퍼맨이랑 결혼하는 줄 알고 착각했는데 아니구나. 어른들이 말하길 ‘백날 천날 골라봤자, 다 똑같다. 웬만하면 살아라.’라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구나.
그래. 주중 내내 영혼 털리면서 일한 남자에게 주말까지 일하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분명 힘든 일이다. 하필이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의 아버지가 슈퍼맨이었던 것은 문제지만.
빠르게 현실을 파악하고 제안을 했다.
“오케이 그럼 내가 계획 짜면 보조석에 타기나 해”
“아니야 계획 짜면 운전은 내가 해줄게”
“그래 계획 없이 나가고 싶은 날에는 그럼 내가 운전할게”
“그래 그럼 그날 돌아오는 길은 내가 할게”
“굿”
그렇게 협상을 깔끔하게 마쳤다.
세상에 완벽한 남자도 완벽한 여자도 없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처럼 보여도 세상 사람들 다 가진 단점들 중 한두 개는 꼭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단점이라고 이름 붙인 그것을 인정하고, 차선의 최선을 누려야겠지.(나 떨고 있니)
상견례 날, 나의 엄마는 딸의 단점을, 누구보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들 앞에서, 누구보다 당당하게 질렀다.
“우리 딸 음식 못해요!”
당당하게 까발리는 소리에 나는 부끄럽고 통쾌한 양가감정이 들어 배꼽을 잡고 웃었다. 더 웃겼던 것은 거기 대고 예비 시어머님 왈,
“괜찮아요. 우리 아들 모아둔 돈 없어요.”
당연한 것인데 미안하듯이 말하는 어머님 태도에 감사했고 내가 떳떳하다는 생각에 기뻤다.
아, 웃겨. 얼핏 듣기에 최악의 여자와 최악의 남자가 결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자도 남자랑 똑같이, 살림이 처음인데 못 하는 것 당연하잖아. 남자도 여자랑 똑같이, 모아둔 돈이 있다면 그동안 모험과 경험을 안 해봤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모험하겠다고 하는 것이 더 난감한 일이다. (일하면서 요리 잘하고, 모험도 해봤고 돈 모아둔 슈퍼 피플들은 따로 존경하는 바)
살다 보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상대의 단점들이 쏟아질 테고
나 역시 몰랐던 나의 단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단점’이라고 이름 붙일 것인가 ‘그 점’이라고 이름 붙일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