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O年1月
결혼식의 로망은 없어도, 신혼여행의 로망은 있었다. 내 경우에는 '신혼'보다 '여행'에 포커스를 둔 로망이었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해외여행은 없었으니까. 내 환상 속의 '신혼여행'이라는 것은, 예산과 시간에 눈치를 봐가며 허덕이지 않고, 마음껏 먼 나라를 선택하고 마음껏 시간과 돈을 써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여행이었다.
나는 가슴에 한아름 반짝이는 희망을 품고 반짝임에 눈 못 뜨는 마음을 붙잡으며 말했다.
“나는 신혼여행 호주 케언즈로 가고 싶어”
“그래”
내가 케언즈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이 찾아보고 준비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이가 한 번은 조심스럽게 내게 질문했다.
“거기 가는데 얼마가 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1인당 250만 원 정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보태서 불렀다.
“그래”
차후에 여행상품으로 실제를 문의해보자 아침 두 끼, 점심 두 끼가 없음에도 1인당 300만 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사 이외에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추가하면 700만 원은 거뜬히 들 것 같았다. 마침 그이는 나의 엄마가 이모와 동유럽 여행을, 말도 안 되는 금액 1인당 195만 원에 간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이는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럽보다 호주가 더 나은 점이 있어? 같은 가격이면 유럽이 더 좋지 않아?”
"그러니까...."
할 말은 산더미였지만, 굴러 나가려는 모든 말들은 이기적인 나의 로망일 뿐이어서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나는 나폴레옹 피시를 보고 싶었다. 그 커다랗고 못생겼다는 물고기를 마주하고 싶었다. 녀석은 다른 물고기와 달리 강아지처럼 자신을 만져달라고 사람들한테 다가온다고 했다. 나폴레옹 피시와 함께 헤엄칠 수 있다면 나에게는 충분한 여행이었다. 못해도 쿼카와 인사할 수 있다면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여행일 것이었다. 못해도 멀리 평소에는 선택할 수 없을만한 먼 곳으로 떠난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말하지 못했지만, 이후에 나폴레옹 피시를, 쿼카를, 머나먼 나라를, 보고 싶다는 말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의 희망사항을 듣고도 그이는 아무런 설렘도 들뜸도 없었다. 내게 크고 만질 수 있게 해주는 물고기와 헤엄을 치는 일은, 동화 속에 들어가는 환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이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로망'이라는 것은 비논리적인 개인의 취향이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어렵다. 그이에게 케언즈는 그만한 돈을 지불할 만한 이유가 한 가지도 없었다.
그이의 신혼여행 로망은, 멋진 오션뷰 침대에서 눈을 뜨고 평화롭고 느긋한 휴식을 취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먹고 자며 뜨겁게 힐링하는 것이었다. 입장을 바꿔놓고 남의 로망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이와 똑같이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만 되었다. 나는 침대 위에서 즐기는 근사한 오션뷰에 큰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무룩한 나무토막을 끌고 다니며 내 로망을 밀어붙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목표를 바꿔야 했다. 내 로망은 접어두고 그이의 로망을 쫓되 나는 가성비를 뽑기로 했다. 그이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급선회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것이야 말로 내게 더 필요한 작업일 수도 있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욕망에서 해탈한 나는 여행사 사장님에게 현재 가성비 있는 곳으로 세네 개 뽑아달라고 해서 그중에서 대충 신혼여행지를 정했다. 예전에는 언제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동남아로 신혼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참 신기했다. 그런데 나도 동남아라니. 그렇다고 풀 죽어 있을 수는 없다. 내게 주어진 신혼여행을 즐기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니까. 장기간 꿈꿔왔던 로망이 없다면 단시간에 만들 수 있는 의미부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여행지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린이 영웅물의 주인공 뺨치게 힘차게 외쳤다.
"여기를, 언제든 또 와서 기억하고 새로운 추억을 또 쌓아나갈 수 있는 우리 둘의 아지트로 정하자."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