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 도시락에 관하여

누가 좀 봐주세요

by 약쟁이Life
나는 브런치에서의 첫 번째 리뷰가 냉동 도시락에 관한 것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바로 이 전에 프롤로그 겸 나의 원대한 포부와 고민과 잡다한 생각들이 뭉쳐진 글에서는 '사람들이 이걸 보고 경악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을 하며, 내 브런치는 아주 밋밋한 글이 이어질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그것은 아주 주제넘은 생각이었고, '아무도 안 보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이 오히려 더 적절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전 글은 마치 내가 로또가 되면 어떡하지, 와 같이 허무맹랑했다. 그러니 오늘의 글을 누구라도 좀 보고 공감해주면 참 행운이겠다. 그런데 나는 왜 냉동 도시락에 대해서 리뷰를 쓰게 된 것일까?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걸 찾아내는 일에 인생의 즐거움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적당히 때워야 하는 평일 점심은 작은 기쁨이자 큰 숙제다.


직장인의 점심시간이 어려운 이유는 매우 한정적인 조건으로 만족감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점심 선정에 실패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새로운 국밥집에 도전해서 갔는데 국물 안에 머리카락이 나온다던가, 사람들과 점심메뉴를 결정하다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선정된다던가, 애써 메뉴를 정해서 식당에 갔는데 이미 대기 인원이 길어서 30분은 기다려야 한다던가(12시 3분에 만석이라면 도대체 이들은 몇 시에 나온 것인가). 이런 일은 최대한 배제하고 싶다. 위생이나 취향은 기본, 그리고 나의 점심시간을 최대한 길게 즐길 수 있도록 하며 너무 무거운 것은 피하고 싶다. 그리고 바지 사이즈가 바뀌어버린 최근에는 다이어트도 무시 못할 요인이 되었다.


이런 요인들을 고려했을 때, 내 취향으로 도시락을 싸는게 적절해보였다. 그래서 한동안 도시락을 싸 보기도 하고 쿠팡 이츠나 배민으로 식단 조절 전문 도시락을 시켜보기도 했지만 매일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냉동 도시락을 주문해보았다.


주문은 간단했다. 도시락을 싸야하는 아침 시간도 절약되었다. 최소주문금액이나 배달팁으로 점심에 1~2만원 결제해야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냉동도시락을 매일 같이 먹을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회사 동료 중 3개월 넘게 매일 냉동 도시락을 먹는 사람이 있는데, 솔직히 '저 사람은 미각이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걸 먹느니 단백질 셰이크를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명력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판매 가격의 절반 이상은 도시락 케이스와 배송비에 들어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밥과 반찬들. 한 입 먹자마자 나의 소중한 점심시간을 망쳐버리는 도시락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냉동 도시락에 도전했고 그 결과 적당히 만족할만한 제품들을 찾아냈다.


1. 고온어다이어트 시즌 3

사진출처: 고온어다이어트

고온어다이어트 도시락 시즌 3에서도 소시지&렌틸콩 고구마밥, 미트볼&퀴노아영양밥, 떡갈비&현미영양밥, 이렇게 3가지를 먹어보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냉동 도시락 중에서는 나름대로 퀄리티가 높은 편이다. 우선 '밥'에 신경을 많이 썼고 단백질과 섬유질을 적당히 배합했으며 맛도 좋았다. 장점은 맛있다는 것, 단점은 양이 적다는 것. 냉동 도시락은 전자레인지에 데운 후에 양이 더 줄어드는데, 나는 대식가가 아님에도 양이 적다고 느껴졌다. 가격은 3,500원~3,700원대.


2. 탄단지 도시락

사진출처: 마켓 컬리

고온어다이어트 도시락은 양이 적어서 오후 간식이 필수였다. 배고파서 시계를 보면 항상 오후 4시. 결국 다른 도시락을 찾게 만들었고 탄단지도시락은 양에 있어서 제법 괜찮은 대안이었다. 시래기밥&매콤오징어볶음, 연근우엉밥&춘천닭갈비 2가지를 먹어보았는데, 채소가 들어간 밥이 잘 지어졌고 반찬도 모자라지 않게 적당했다. 가격은 4,200원으로 고온어다이어트 도시락에 비해 약간 높다.


3. 더바른도시락

사진출처: 맛꾼 푸드

아주 초창기에 먹었던 도시락인데 퀴노아영양밥&매콤제육볶음, 탄두리닭가슴살 현미밥&해물닭가슴살 완자 도시락 2가지를 먹었다. 이 제품도 밥에 신경을 많이 썼고 단백질 반찬도 맛깔난 편이다. 다만 이 제품도 양이 적은 편. 가격은 판매처마다 다르지만 3,500원~3,700원 정도.


4. 마이비밀 컬리블러썸 도시락

출처:마이비밀


혹시 키토 제닉 식단이라고 들어보셨는지? 흔히 저탄 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구성) 식단이라고 말하는데, 요즘 유행하는 다이어트 식단이기도 하다. 아이허브에서 본 글에 따르면, 인류는 선사시대에 단백질과 약간의 섬유질을 섭취했던 유전형질이 달라지지 않았는 데, 현대인은 그에 비해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섭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의견이었다. 선사시대의 인류는 평균 수명이 25세였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트렌드와 마케팅의 노예로서 이런 도시락은 나의 궁금증을 야기시켰고 시험 삼아 주문한 도시락은 먹을만했다. 나는 크림소스&순살치킨과 토마토소스&미트볼 도시락을 주문했는데 밥 대신 컬리플라워가 채워져 있다. 너무 짜거나 싱겁지도 않았고 밥과 반찬이 정석인 도시락을 먹다가 가끔 특식으로 먹기도 좋았다. 미트볼 도시락은 가공육 냄새가 많이 느껴져서 다시 먹을 일이 없겠지만. 판매처마다 가격대가 다른데 본사 홈페이지에서는 3천 원대로 구입이 가능하다.


5. 키플 키토제닉 도시락


사진출처: 마켓 컬리

대놓고 키토제닉이라고 표방하는 도시락으로, 나는 위 사진에 있는 참치김치컬리볶음찹 제품을 먹었다. 내가 먹어본 냉동도시락 중에서는 채소의 함량이 가장 높았다. 그리고 이 도시락을 먹어본 결과 인간이 탄수화물을 얼마나 갈망하는지 깨달았다. 이 도시락을 먹은 후 나는 곧장 뺑 오 쇼콜라를 사러 갔고 다시는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격은 7,500원으로 약간 갸우뚱한 금액. 이유는 단백질 함량이 너무 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도시락을 먹어보았지만 굳이 리뷰에 올릴 만한 도시락은 이렇게 5가지였다. 이렇게 먹어본 결과 냉동 도시락은 절대로 매일 같이 먹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먹어야 한다면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가 적당하며, 그마저도 연일 먹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먹으면서 든 생각인데 냉동도시락은 뭐랄까, 내 자신이 좀 처량맞아진다. 이럴 바에는 감자칩에 캔맥주로 때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한 편으로 다 먹고 나면 고스란히 남는 플라스틱 쓰레기도 죄책감의 일부였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지만 점심에 대한 문제는 인생에 대한 문제와 비슷했다. 완벽한 해답을 찾기는 어렵고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여건에 따라 다르게 선택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한 끼 때워야 한다면 최선을 다해 때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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