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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운 May 18. 2024

이토록 대단한 엄마들 사이에서

나 나아갈 수 있을까?

결혼을 하기 전에는 나의 삶에 큰 욕심도 큰 불만도 없었다.

나의 일을 사랑했고 나의 일을 즐겨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입는 일들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것을 보는 일들이 행복했다.

나 하나만 만족시키는 일은 수많은 실패들이 꺾을 수 없는 에너지로 가득했던 살만한 일상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 부모의 책임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 한 책임과 의무감이 생겼다.

그 무게는 태어나서 겪어보지 못한 상상할 수 없는 책임과 의무감이었다.

그 무게를 감당하기에 나는 방법도 모른 체 매일을 때려 맞으며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었다.

그 무게를 인지하기까지도 시일이 걸리었다.

그 무게는 나만 짊어지고 가야 하는 무게는 아니었다.

나의 상황 또한 그 무게에 허덕이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쏟아지는 폭포수 같은 역경 속에서 내가 가진 영육의 체력이 바닥이 나는 나의 고난을 방패 삼아 내가 이렇게 발버둥을 쳐도 부족함이 미흡함이 보이는 것은 이 상황과 배우자가 본인들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결론을 내리고 힘들 때마다 그것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와중에 그만큼 한 것도 장한데.. 스스로 부족함이 죄책감이 되어 스스로를 더 괴롭혔던 것 같다.

최근 2년 동안 나는 많은 것이 변했고 아이는 달라진 엄마와 살고 있다.

사랑하는 것은 알고 있겠지만 나의 아이도 힘들 것이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시간 동안 내가 집중해서 에너지를 올리고 있다.

결핍이 미안하긴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아이의 선택과는 관계없이 나는 나를 조금 더 보호하고 있다.


홀로 엄마 아빠의 역할을 다 하려고 온갖 노력을 했다.

몸이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부모니까


나는 나를 과대평가했다.

나는 그렇게 바다와 같이 너그러운 사람도 이타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긍정적이지도 지혜로운 사람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온갖 육아서과 이론서를 공부하고 잠을 줄여서 준비하는 매일을

실천하는 매일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단히 큰 착각과 당장에 급급해서 타협했던 생활은 나의 영육을 바닥나게 하였다.

나는 그 지옥 속에서 몸을 먼저 회복해야 했다.

그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운동을 해야 했고

매일 잘 챙겨 먹고 매일 날 위한 투자를 해야 했다.

나 자신을 뒷전에 두고 아이에게 미안하고 싶지 않아서 냅다 달린 결과는

6년 만에 슬슬 바닥을 향해 달려갔고 작년에는 바닥을 찍고 깊은 나락으로 치닿기 바빴다.

결단해야 했다.


내가 살아나야 한다.  
내가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를 살릴 수 있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내가 지금 그 일을 선택해야 한다.

지금 바로 그 생각을 행동으로 해야 한다.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다른 결과를 만날 수 있다.


내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의 상황에서 눈을 돌려서 오랜시간 지켜 볼 수 있었던

씩씩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그 아이들의 부모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다 다르고  빛나는 부분이 다르듯이 각자 모습은 달랐지만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모두 매우 부지런하였다.

어떻게 돈도 벌고 아이 학습을 시키고 숙제를 봐주고 운동도 함께하고 여행도 가지?

저렇게 바쁜 사람들이?

크든 작든 사업을 활발히 하고 아이든 성인이든 학생들을 가르치고

본인들의 성장을 위해 쉴새없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언제 여행을 계획하고 언제 운동하고 어떻게 본인의 여유 시간을 충실히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 와중에 어떻게 아이의 재능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 깊이 있게 들어가고 실패하고 극복할 수 있게 곁에서 함께 연습하고 함께 도전하는 시간들을 확보할 수 있지?

부부 모두가 어떻게 저토록 힘을 모아 나아갈 수 있지?

어떻게 저렇게 웃으며 아이와 즐길 수 있을까?

어떻게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면서 저렇게 많은것들을 가르쳐주고 경험 시켜주고 준비해주고 스케쥴을 조절하고 해야하는 이유를 알려주고 이끌어주지?

저렇게 마음이 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도대체 어떤 노력을 한 걸까?


일 년 이년 한해 한해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더 가속도를 붙여서

아이의 성장길을 그토록 바쁜 중에도 기꺼이 즐겁게 함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의 상황과 그들의 상황이 같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야 했다.

그 아이들의 엄마.

그녀들의 시간 활용을 관찰해야 했다.

그녀들이 지켜 나가는 것을 알아내야 했다.

나는 6년 7년 만에 떨어진 에너지를 그녀들은 한해 한해 지날수록 키워가는 방법을 나도 실천해야 했다.

그녀들이 워킹맘이든 아니든 홀로 반짝이고 활력 있고 나아가는 그 에너지를 나도 가지고 싶었다.

그녀들은 양보하지 않는 무언가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기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그 기쁨을 스스로를 위해 기꺼이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은 본인 홀로 있을 때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녀들은 스스로 본인을 가꾸는 것을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의 환경은 모두 달랐지만 아이와 함께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나고 있는 엄마였다.


어리석은 내가 부재한 것들을 채우려고 죄책감이 가득한 채로

그 잠깐의 시간을 나에게 허용하지 않고 모든 것을 오롯이 쏟아부으며

20년 동안 나의 부모가 쏟아붓고 10년 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쏟아부어 쌓인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동안,

그녀들은 본인 쓴 에너지를 바로바로 충전하고

아이가 필요한 적절한 시기에 폭발적으로 함께 즐기는데 쓰고

다시 더 큰 에너지를 채우는 에너지를 남겨 놓는 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물론 상황이 다르지만 그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을 지키고 성장시키며 에너지를 키웠다.


나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나도 힘든 상황에 눌려가는 동안 바꾸어야 했다.

빨리 바꾸었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으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절대 피할 수 없는 부모라는 자리에서 책임을 지기 위해 나는 선택해야겠다.

내게 주어진 이 상황에서 내가 선택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당장 나를 표현하고 나의 마음을 다시 충만할 때로 에너지를 올려야 했다.

아프면 쉬고 사람을 만나고 내가 나였을 때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나에게 시간을 써야 했고 나에게 상처 주는 것들을 끈어야 했고

그 상황에서 나를 구해야 했다.

아이에게까지 화를 내며 야단을 치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고 집도 덜 돌보게 되었다.

나의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억해야 했다.

나보다 훨씬 바쁜 그녀들도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해내고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나의 에너지와 그녀들의 에너지가 같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이 전제를 핑계로 지금에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라는 것.

이 사실을 인정하기엔 버거운 이 상황이 더 무겁고 무섭고 두려움으로 나에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도망갈 수 도 없었다.

나는 엄마이기 때문에 해야 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지금은 완벽할 수 없지만 서투르게 쟁취했던 나의 시간을 조금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는 계속 서투를 수만은 없다.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지는 시간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를 쓰길 집중해야 했다.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 나를 독립시키기 위해 조금 더  집중해야 한다.

나는 지금 나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도 언젠가는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서

그녀들처럼 지혜롭고 아름다운 삶을 스스로 만드는 힘을 만들기 위해서

진정으로 나의 자녀를 제대로 책임지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버둥거림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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