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호사다. 원래 가톨릭 세례명이 로사(Rosa)인데, 언젠가 만난 프랑스 친구가 나를 '호사'라고 부르더라. 그 때부터 나는 호사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뒤늦게 세례를 받은 편이었다. 원래 가톨릭이었던 어머니는 결혼 후 성당에 나가지 않았는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성당을 나가기 시작하셨다. 마침 대학에 들어간 나는 왠지모를 호기심에 나도 성당에 다니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서야 세례를 받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세례를 받게 되면 세례명을 직접 찾아보게 된다. 많은 성인들의 삶이 기록되어 있는 책자를 뒤적뒤적하면서 내 생일과 축일이 비슷한 날짜에 어떤 성인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는데, 나는 내가 태어난 9월 축일을 가지고 있는 '로사'라는 인물에 딱 꽂히더라. 뭔가 장미꽃같이 향기로운 느낌이었다. 사실 그녀의 삶이 더 나를 이끌었는데,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성인으로 추앙받은 인물이었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병치레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웠을 정도라. 나도 멋진 '로사'가 되겠노라! 이 이름을 선택했다. 영어이름도 자연스레 로사가 되었다. 나는 내 본명보다도 로사라는 세례명이 더 내 이름 같았다. (실제로도 많은 이들이게 이 이름으로 불린다.)
언젠가 만난 프랑스 친구가 나를 '호사'라고 부르는 데, 순간 나는 다른 사람을 부르는 줄 알았다. 고개를 뒤로 돌려서 누군지 찾아봤을 정도니깐. 그 '호사'는 나였다. 아, 맞다. 프랑스에서는 R발음이 '르'보다는 '흐'로 나지... 그 친구와 일주일정도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왠지 부캐가 생긴 것 같았다. 내 원래 부캐는 로사였다면, 부캐의 부캐는 호사가 되었다. (이러다 다중이로 살겠네)
코로나가 시작되고, (다른 모든 이들과 동일하게) 나는 뭘 먹고 살아야하나 수많은 고민을 시작하면서 끄적거리는 유튜브를 괜히 하나 오픈했다. 이름은 뭘로 하지? 맞아! 내 부캐의 부캐인 '호사'를 써야겠다. 사실 호사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실제로 '호사'라는 단어의 뜻이 편안하다, 사치스럽다, 편안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호사스럽다. 호사를 누리다. 뭐 나는 그닥 호사스러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어쨌든, 나는 지금 내 삶이 나름 호사스럽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이 편하고 (물론 하루의 세 번 정도는 매우 불편하다), 특별한 걱정이 없으며 (물론 나름의 걱정은 있다),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다고 확신하는 데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다음 기회에... 아주 장편 소설 하나는 뚝딱 나올만한 기구한 스토리가 있다. 어쨌든 이리 호사스러운 내가 '호사'라는 이름을 갖다니! 너무 딱이 아닌가.
그래서 내 이름은 호사다. 호사스럽게 호사를 누리며 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