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에 접어들었지만 아직은 열기가 남은 8월 말의 어느 날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 탑승구가 아니라 계류장에 세워진 비행기 탑승을 위해 보딩패스 스캔을 마치고 리모트카에 올랐다. 차 안에 가득 찬 승객들은 오랜만의 여행에 들떠 있는 듯했다. 엄청나게 큰 면적답게 10여분을 이리저리 달려서야 비행기 앞에 멈춰 섰다. 여행 가기에 딱 좋은 파란 하늘. 벌써라도 리장에 온 것 마냥 사람들은 하늘과 대비되어 더 하얗게 빛나는 비행기를 배경으로 이리저리 기념 촬영을 해댔다. 평소와 달리 사진이 찍고 싶었다. 좌석에 앉자마자 이런 희귀한 '인증샷'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이 코로나 19 이후 첫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긴가민가했지만 아직 비극의 시작을 깨닫지 못했던 설날 연휴 이후, 일상에서 여행은 지워져 왔다. 습관적으로 저렴한 항공권과 여행 정보를 검색하던 버릇은 동기를 잃고 마음 한 구석 서랍에 넣어둬야만 했다. 각종 여행 관련, 호텔, 항공사 앱들의 사용빈도는 현저히 줄었고 급기야 많은 앱들이 삭제 대상이 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 회복에 맞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 나섰다. 저비용항공사와 IT 기반 여행 플랫폼들이 사람들의 호기심에 부응하였고 공급과 수요는 서로를 북돋았다. 굴뚝 없는 산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정부들은 입국 정책 완화와 인센티브로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렸다. 사람들은 당장 내일 떠날 목적지와 항공권과 호텔을 손가락 운동 몇 분 만에 결정하여 다음날에는 다른 나라의 해변에서 석양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은 당연한 일상이자 즐거움이었지만 2020년에 들어 모두가 알다시피 일대의 변혁을 맞았다.
베이징에서의 비행기 인증샷을 한국의 친구들에게 보냈다. 충분히 예상되던 반응들이 돌아왔다. '부럽다', '대박' 같은 코로나 이전의 상투적인 표현도 있었지만 '이 시기 여행이 가능하냐?', '사람이 저렇게 몰려있어도 되는 건가?' 같은 걱정도 있었다. 행간에서 '아니 중국에서 놀러 이동한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과 시기가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고통의 근원지는 중국으로 지목되어 왔고, 초기의 '우한 바이러스' 운운 때보다는 희석되었지만 겪고 있는 쓰라림의 농도가 여전히 짙은 만큼 깊은 응어리는 은연중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1일, 베이징 보건당국은 외부에서의 마스크 착용이 필요 없도록 방역 규정을 완화했다. 6월 신파디 시장발 확진자 확산 상황이 소멸되었다는 뜻이다. 신파디 전후, 베이징에서 오는 이들은 되돌려 보내거나 현지에서 격리조치를 하는 지역도 있었다. 그래서 타 지역으로 선뜻 여행 가기가 매우 꺼려진 것이 사실이다. 혹여 갈 수 있다 해도 가있는 동안 베이징에서 다시 발생하여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두렵기도 한 것이다. 다행히도 근 두 달여 사이 베이징의 코로나 불길은 매우 빠르게 잡혔고 시민들은 일상으로 복귀했다. 신장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지방들도 모두 방역이 완화되었고 드디어 마음 놓고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중국의 국면 전환에 대해 일부 언론이나 사람들은 깊은 의구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과거의 통계 조작 사례들을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현재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큰 이슈에 관해서는 다른 문제이다. 더구나 13억의 인구가 영위하는 이 나라에서는 더 이상 숨기거나 축소하기에는 체제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 자유도가 높은 사회 및 경제활동 시스템을 가동할 자신이 없다면 감히 시행하지 못할 나라 규모이다. 알려지지 않은 무증상 감염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발생지역은 전면 봉쇄하고 전수조사를 하며 해당 지역 14일 내 방문자는 모든 건물 출입과 교통시설 이용 시 제시해야 하는 휴대폰 건강 증명에서 걸러진다. 국제선 선별 제한 정책과 해외 입국자 격리조치도 가족, 연인 간에 수많은 안타까운 사연들을 만들어내고 있긴 하지만 필수적이라고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의 이 대전환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중국은 코로나 발생 이후 타국과 비교할 수 없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첫 두세 달간 대부분의 직장은 휴업을 했고 상점은 문을 열지 않았다. 사람들은 집을 포함한 모든 건물을 드나들 때마다 체온을 재고 거주나 재직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시해야 했다.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은 극히 드물었고 거리에는 배달하는 전기 오토바이만 오갈 뿐이었다. 사실상의 한국의 사회적 거리 5단계 시행이었다. 한국은 광복절 이후 상황이 악화되자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을 고민하다 2.5단계로 현실과 타협했다. 자영업자 비롯한 실물경제 악화를 우려한 탓이다. 중국은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제어하기 위하여 한국보다 2배 이상의 강력한 조치를 취했고 사람들은 극심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수준의 통제를 겪고 나니 이렇게 다시 여행을 갈 수 있는 이유가 납득이 된다. 가혹했던 시간의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자유와 방임을 혼동하여 선량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는 한국의 특정 집단이 이곳엔 없어서 다행이다. 코로나가 단시일 내에 종식되지도 않을뿐더러 이러한 팬데믹이 앞으로 또 닥칠 확률이 높다 한다. 조속한 일상의 복귀를 위하여 정부와 개인은 어떤 조치와 행동을 해야 할까? 첫 코로나 발생국이자 수습대상이 가장 대규모이며 빠른 속도로 회복 중인 중국의 사례를 유심히 관찰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원인 규명도 중요하지만 신속한 사태 수습이 급선무이다. 시진핑 주석이 방역 유공자들 훈장 줬다고, 하지도 않은 코로나 종식 선언 운운하며 부들부들 거릴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어떠한 배울 점이 있는지를 연구해보는 게 우리 삶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공항에 들어갈 때 베이징 건강코드 제시가 필요했고 비행기 타기 전에는 리장이 위치한 윈난의 건강코드 등록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도 지상 직원이 또 비행기에서 승무원이 계속 안내를 해줬다. 공항에서도 비행기에서도 마스크를 벗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리장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윈난의 건강코드 상 적격 한 지 제시가 필요했다. 호텔 체크인 때는 중국 입국일, 항공편명, 주소 등 인적사항을 모두 알려줘야 했고 주요 관광지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매우 형식적이 되었지만 어딜 가나 체온 측정은 아직 필수였다. 고통 끝에 얻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시스템과 생활 방역이 작동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일을 하고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국내선 항공편은 작년 기준 80%가 회복되었고 리장 공항은 관광객들로 인해 일일 항공편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한다. 미디어의 편향된 정보 때문에 한국의 지인들은 중국에서의 생활을 딱하게 보곤 한다. 이번 상황을 보자니 미세먼지 보도와 다를 바가 없다. 몇 년 전 극심했던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날 저녁에는 어김없이 한국 저녁뉴스에 노랗게 물든 베이징 하늘이 나왔다. 그러나 강한 바람에 씻긴 파아란 하늘이 보도된 적은 없다. 대기질이 상당히 개선된 몇 년 사이의 베이징 하늘을 제대로 알려주는 기사도 당연히 없었다.
코로나를 극복하고 돌아온 일상에 대해서도 불신의 어조로만 글을 쓰고 있다. 이성이 마비된 혐오로만 가득 찬 반응들도 보인다. 그런 글을 쓰는 이 중에 몇이나 지금 중국에 직접 와서 보았는지 모르겠다. 은폐한 것은 잘못이고 이겨낸 것은 잘한 일이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쥐가 국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염병 앞에서도 국적은 필요 없다. 인간이라면 연대해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든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나타나지 않아야 종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다시 여행을 하고 정상적인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그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