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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Sep 18. 2020

베이징 대운하 유적

천년 물길의 흔적

 흔히들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떠올리게 되는 베이징이지만 이 곳에는 수많은 유적과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중에서도 보통은 지나치게 되는 특이한 장소로는 대운하 유적이 꼽힌다.

전 세계 대부분의 큰 도시, 더구나 수도의 특징이라면 대개는 강을 끼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강, 파리의 센 강, 런던의 템즈 강 등 강은 도시와 뗄 수 없는 중요한 자연 요소이다. 하지만 베이징은 유달리 강이라고 할 만한 수자원이 없는 곳이다. 작은 하천이나 자금성과 외성을 둘러싼 해자의 흔적들 말고는 지도 상의 이 넓은 평원에서 굵은 물줄기의 흐름을 발견할 수 없다. 

 중국 역사 상 원나라 이전까지 전국을 통일한 나라들의 도읍은 모두 황하나 양자강을 끼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물이 그다지 풍부하지 않았던 먼 북쪽 지역에서 온 몽고가 원나라를 세우면서 이 도시는 수도로서의 운명을 시작하였다. 뒤이어 난징에서 다시 옮겨온 명나라, 또 다른 북쪽에서 온 지배자 청나라를 거치며 강이 없는 베이징은 수도의 지위가 오늘날까지 공고히 되었다. 

 지방에 대한 왕권의 영향력 파급과 조세 확보를 위한 물자의 이동을 용이하게 위하여 수나라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대운하는 원나라 때부터 베이징에서 다시금 본격화되었다. 그 흔적이 바로 오늘날 남아 있는 대운하 옥하고도 유적 Grand Canal Yuhe Old Riverway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을 코앞에 두어 온 수도가 들썩 거리던, 가을이 완연 해진 9월 말 유적을 찾았다. 이 곳은 관광지로 유명한 스차하이(什刹海)와 난뤄구샹(南锣鼓巷)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난뤄구샹의 북쪽 입구에서 시작하여 남단까지 이른 후 스차하이로 가는 길목으로 향한다면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다. 

지금은 흙바닥을 드러낸 채 주춧돌들 만이 남아 있지만 과거의 모습을 가늠 하기에는 충분히 잘 보존이 되어 있다. 특히 명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리 ‘동부야차오(东不压桥)’는 유적에 맞닿아 있고 지금도 사람과 차가 오가는 역할을 하고 있어 수백 년 전의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유적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쪽의 사합원은 최근 매우 깔끔하고 현대적인 카페로 변모하였다. 근대에 도입된 문물을 즐기며 천년의 시간을 바라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소이다. 카페 정문 앞에 유적에 대한 설명과 버려진 돌들, 수운이 이루어졌을 당시의 풍광을 묘사한 부조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오늘날 다리 밑에서 대운하의 물길은 멈춰져 있지만 바로 옆에서 스차하이까지 위허(玉河)가 흐른다. 대운하의 북쪽 시작 베이징에서도 시작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허는 발음이 같은 ‘御河’라고도 불린다. 황제가 있는 궁성과 매우 가까운 곳인 이유일 것이다. 


 원나라 시대의 저명한 천문학자, 수학자이자 수리공학자인 궈쇼유징(郭守敬)에 의해 보수되기 시작하여 통후이허(通惠河)라는 이름으로 배를 이용한 운송, 조운이 이루어졌다. 명나라 이후로 조운의 기능은 점차 상실되었고 1956년에는 복개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시기를 보냈으나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2006년, ‘위허 역사문화 회복 프로젝트’가 가동되면서 480미터에 이르는 700년 전의 위허의 옛 모습이 되살아 났다.  

 스차하이가 시작되는 동쪽 끝 다리, “后门桥”라고도 불리는 완닝차오(万宁桥) 까지 10여분 정도 운하를 따라 동부야차오후통(东不压桥胡同)을 걷는다. 여름 내내 온 운하를 뒤덮었을 연잎들이 아직 제법 남아있다. 운하의 양쪽으로는 정돈된 사합원들이 줄 지어 있고 일부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간의 다리 3곳은 훌륭한 포토스팟이 되어 베이징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물을 배경으로 한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수초를 걷어내는 등 운하를 깨끗이 보호하고 있는 관리인들의 작은 배는, 비옥한 강남에서 쌀과 소금을 싣고 유유히 수 천리 물길을 거쳐 도성에 막 도착했을 조운선을 떠올리게 한다

 곳곳에 놓인 의자에서 잠시 등을 기대어보자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 달리기와 걷기 운동을 하는 이들, 그리고 환담을 나누는 주민들을 볼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에 한숨을 돌리게 된다. 후통의 절반쯤 이르면 스차하이를 향하여 서향이 시작되기 때문에, 해 질 녘에 찾는다면 석양에 비치는 운하의 물결이 은은히 부서져 흐를 것이다.  

 완닝차오에서 끝나는 위허를 뒤로 하고 북적이는 스차하이로 건너갈 것인지, 아니면 바로 옆에 있는 베이징 전통 훠궈 솬양러우(涮羊肉) 맛집 쥐바오위안(聚宝源)에서 방금 느꼈던 천년의 정취를 마무리할 것인지 잠시 고민하게 된다. 어디로 가던 지금 이 지역은 베이징 도심에서 물이 가장 많은 곳 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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