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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Sep 18. 2020

우렁이 쌀국수, 뤄쓰펀

 이 음식을 처음 만났던 것은 무려 약 20년 전이다. 당시 중국 남부 광시广西좡족자치구의 성도 난닝南宁에 머무르고 있었다. 인구 5천만의 광시에서 제일 큰 도시였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아직 도시는 촌티를 벗지 못하였고 이제 막 경제가 꿈틀거리려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내가 있던 학교는 광시 각지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WTO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유치를 목도하던 시골 동네 광시의 '빠링허우八零后'들이 대학생활을 펼치고 있었다. 아직 가진 것은 없지만 무엇인가 이전과는 다른 기회가 오고 있다는 걸 누구나 감지하고 있었다. 이런 친구들로 캠퍼스는 늘 활기가 넘쳤다.

중국 남부의 광시는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광시의 여러 지역에서 온 학생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학교 주변은 다양한 음식들이 많았다. 사실 그곳의 맛은 중국의 여러 음식들 중에서도 한국인에게는 가장 이질적인 편에 속한다. 옆동네 광동과 비슷하게 식재료가 굉장히 많기도 하고 고온다습한 환경 아래 식문화가 발전되었다. 소수민족들의 생생하고 거친 음식도 많았기 때문에 나 또한 적응이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현지 친구들의 소개로 이것저것 맛보면서 차츰 광시의 맛에 눈뜨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음식은 단연코 우렁이 쌀국수, 뤄쓰펀螺蛳粉이었다. 교정 뒤 강을 따라 흙바닥 골목길에 줄지어선 허름한 음식점들 사이로 유달리 코를 찌르는 집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생전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 난닝 시내에서 가끔 맞닥뜨리기는 하지만 아직 도저히 먹을 용기가 나지 않던 취두부의 그것과 비슷하나 다른 향이었다. 외국 친구에게 여러 가지 먹여보게 하고 싶은 친구들은 나를 기어이 거기로 데려갔다. 

 적당히 굵은 하얀 쌀국수 면발을 그릇에 담고 우렁이 삶아 낸 육수를 부었다. 튀긴 두부피 토핑을 올리고 죽순 장아찌와 샹차이, 시금치, 무말랭이, 그리고 고추기름을 한껏 부어 완성되었다. 이것이 대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처음에는 거부감을 들게 하는 쿰쿰한 냄새에 갸웃거리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그릇을 비워내자 곧 이 국수에 빠져들었다. 입안에 닿은 우렁이 육수는 마치 삭힌 홍어처럼 겉보기와 달리 숨은 내공을 갖추고 있었다. 쌀국수 특유의 부들부들한 면발과 어우러진 감칠맛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식감이었다. 국물 바닥 면을 훑어 건저 먹고 나면 튀긴 땅콩들을 골라 먹는 재미도 있었다. 지나고 보니 현지의 맛은 굉장히 매운 편이었는데도 40도의 온도와 80%가 넘는 습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난닝의 무더운 여름날에도 이열치열로 줄곧 뤄쓰펀 집을 찾곤 했다. 

 


 사실 뤄쓰펀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정확한 기원은 전해지지 않으나 1970년대 말 광시의 도시 류저우柳州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국수 자체의 역사는 길지 않으나 류저우에서는 줄곧 우렁이를 식용으로 사용해왔고 양식도 활발하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남부, 베트남 등 벼농사를 짓는 지역은 우렁이가 식재료로 사용되기 마련이다. 광시와 인접한 베트남 하노이에 가도 '분옥 bún ốc'이라는 우렁이 쌀국수를 만날 수 있다. 명나라 말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고추가 류저우의 우렁이 그리고 광시의 주식인 쌀국수와 만나며 뤄쓰펀이 탄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처음 먹은 20년 전만 해도 지방의 특색음식에 불과했으나 최근 5~6년 사이 경제성장, 유통과 미디어의 발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젊은 층의 호기심과 지지를 받으며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매운맛에 열광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훠궈와 마라탕, 촨촨샹串串香 등을 사랑하는 것처럼 쏸라펀酸辣粉이나 단단몐担担面 등의 사천 계열 마라의 맛과는 다른 광시의 매운 국수 뤄쓰펀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거기다 현재 중국과 유네스코 비물질 문화유산 등재를 신청 중이라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매니아 층이 생기면서 포장 제품 판매처도 늘어나고 있어 국내에서도 맛볼 수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올 상반기 뤄쓰펀 포장제품의 총생산액은 약 9천억에 달해 수출액이 지난해 대비 8배 증가했다고 하니 인기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며칠 전, 이 포장제품으로 뤄쓰펀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년 전 나를 처음 이 음식에 입문하게 했던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졸업 후 고향 류저우의 대학교수가 되어 방문학자로서 미국에 머물던 친구는 연구기간 종료 후 귀국하려 했으나 COVID19로 인해 발이 묶였다. 작은 도움을 준 결과 긴 여정을 거쳐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맙다는 사례로 고향 음식 뤄쓰펀 두 상자를 택배로 보내왔다. 

이걸 언제 다 먹는담
깔끔한 포장의 두 종류 뤄쓰펀

 재료들이 개별 포장되어 있어 편리하게 조리할 수 있다. 일반 라면과 다른 점은 건조 처리된 면을 불리는데 시간이 다소 소요된다. 미리 한 시간 정도 물에 담가 불리던가 아니면 따로 국수만 7~8분 삶아 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흔히들 뤄쓰펀은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특유의 냄새로 인해 호불호가 갈린다. 이 냄새의 원인은 사실 흔히들 생각하기 쉬운 우렁이에 있지 않다. 뤄쓰펀에 우렁이가 직접 고명으로 올라가는 것은 매우 드물고 대부분은 육수로 우려낸다. 범인은 죽순 장아찌酸竹이다. 십여 일간 시큼하게 발효된 죽순 장아찌는 우렁이, 돼지 사골로 푹 우려진 육수의 감칠맛을 더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니 빠질 수 없는 재료이다. 

 다만 이 냄새로 인해 조리하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옷에 냄새가 베이게 되기 십상이다. 사실 주방과 식탁에서도 이 냄새가 빠져나가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때문에 집에서 조리하여 먹을 때는 죽순 장아찌는 빼는 것도 추천한다. 

  친구 덕에 집에서 편안하게 이 귀했던 음식을 먹게 되었고 옛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조만간 본고장 류저우를 찾아 친구와 긴 회포를 풀며 원조 뤄쓰펀을 먹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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