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이화러우 萃华楼
순위 매기기를 대단히 좋아하는 중국이다. 10대 명주, 5대 명산, 4대 기서 등 예로부터 각종 문화를 차트화 시키는데 능했다. 땅덩어리가 커서 여러 지역으로 나뉜 다양한 음식문화 또한 예외가 아니다. 10대, 8대, 4대로 좁혀지는 각 지방 음식 토너먼트에서도 산동요리(鲁菜,루차이)는 준결승까지 당당히 진입해 있다.
산동요리는 우리나라에서 자리 잡은 속칭 '중화요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산동이 서울 기준 가장 가까운 중국 땅인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김포-제주 국내선보다 인천-웨이하이 국제선의 비행거리와 시간이 더 짧다. 흔히 먹는 짜장면, 유린기, 깐풍기 같은 음식들은 산동에서 건너온 화교들이 현지화한 것들이다. 뒤에 붙은 '기'는 '닭'의 중국어 발음 '鸡(지)'의 산동 방언으로서 닭고기로 만든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베이징 카오야로 대표되는 북경요리 역시 사실 산동요리의 범주에 속한다. 베이징에서 만나는 현지 음식과 산동성 성도인 지난의 요리들이 대부분 겹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북경식 샤브샤브인 슈안양러우涮羊肉 등 베이징 지역특색의 음식은 따로 라오베이징老北京 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청나라 말기부터 동북으로 대거 이주한 이들이 산동인들이었기에 오늘날 동북 요리의 상당수도 산동요리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산동요리는 중국 화북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4대 음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보인다.
베이징에서 현지 음식의 원조 산동요리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은 추이화러우 萃华楼이다. 2019년 베이징 미슐랭 리스트에 포함되며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미슐랭 선정 식당들 중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인 데다가 유일한 산동 요릿집이라는 점이 더욱 발길을 이끌게 된다.
현재도 베이징에서 또 다른 산동요리 명가로 꼽히는 곳이 동즈먼에 있는 동싱러우 东兴楼이다. 1940년, 이곳에서 일하던 마송산 马松山등이 주인의 푸대접, 횡포에 반발하여 나오면서 이곳 추이화러우를 세웠다고 한다. 베이징 첫 미슐랭의 영광은 추이화러우가 얻었으니 청출어람이라 해야 되겠다.
원래 왕푸징의 사합원에 들어서 오랜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며 동즈먼, 안딩먼 등에도 분점이 있었다 하는데 지금은 어찌 된 일인지 천단공원 인근 신세계백화점에만 남아있다. 쇼핑몰 등 다중시설 내에 위치한 식당은 선호하지 않지만 이름값을 믿고 주말 점심 지인들과 함께 찾았다.
유명 식당에 걸맞지 않은 소박한 입구에 비해 내부는 꽤나 넓고 정갈하였다. 벽을 따라 놓인 4인 식탁마다 칸막이와 커튼을 둘러 별도의 방 못지않은 안정감이 돋보였다.
우리의 방울토마토 설탕절임과 비슷하다. 그러나 껍질을 일일이 벗겨내고 얼음으로 마사지하여 탱글탱글하면서 시원한 식감이 극대화되었다. 고작 방울토마토에서 과육이라는 단어가 생각날 만큼 쫄깃하기까지 했다. 라임즙으로 버무려 시면서도 달큼한 풍미가 애피타이저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함께 한 이들이 만장일치로 베스트 메뉴로 꼽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미슐랭 식당 메뉴 중에서 하나에 3천 원 정도인(18위안) 이 꽃빵이 이 집 최고 음식이라고 생각된다. 갓 구워진 후 따근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 종업원이 눈앞에서 잘라주며 내어준다. 보통 중국요리에서 후식용의 만터우는 손으로 집을 수 있는 작은 크기로 연유에 찍어 먹는다. 그러나 이 꽃빵은 큰 식빵 크기라 4명이 먹어도 부족함이 없고 윗부분에 꿀을 발라 구워내었다. 조밀한 밀가루 반죽의 입자가 느껴지며 입안에 퍼지는 달콤한 연유 향의 조합은 베이커리에서 빵의 대용으로 따로 판매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외지인은 잘 알지 못하지만 산동요리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산동요리에서 출발했으나 지금은 강소 요리, 사천요리에서도 등장한다. 닭가슴살을 매우 얇게 저며 달걀흰자에 입혀 동과, 생강, 소금 등을 넣고 냉장 발효시킨 후 기름에 데쳐내었다. 달걀흰자가 극단적으로 얇은 고기를 둘러싸고 있어 부드러운 탄성을 만들어낸다. 씹을게 거의 없을 정도라 고기를 먹는 건지 달걀을 먹는 건지 헷갈린다.
'겉바속촉'을 일컬을 때 이보다 적정한 예는 찾기 어려울 듯하다. 두부의 종주국이라 자처하는 중국에는 여러 종류의 두부가 있다. 그중에 넌더우푸嫩豆腐 는 우리의 순두부보다도 더욱 부드럽다. 너무 연해서 깨지기 십상인데 균일하게 잘라 흐트러지지 않게 튀겨내었으니 기술만으로도 칭찬받을만하다. 소스에 곁들인 바삭한 겉감에 이어 혀의 힘만으로도 눌러 터뜨려지는 두부의 여리여리한 촉감이 마치 초콜릿처럼 기분을 좋게 해 준다.
산동요리의 주된 조리법 중에 바오爆 가 있다. 육즙을 보존하고 재료 자체의 맛을 살려내기 위하여 양념 베이스와 함께 폭발할 듯이 순간적으로 볶아낸다. 기름, 소금, 탕수, 생강 등 여러 가지 베이스가 있지만 산동요리는 주로 간장 베이스이다. 산동요리 자체가 간장을 많이 쓰기도 하지만 내장 요리가 발달하여 잡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런 듯하다. 세 가지 재료를 볶아낸 이 바오싼양爆三样 은 그 재료에 따라 신구가 나뉜다(老爆三样-돼지등심, 콩팥, 간 / 新爆三样-돼지등심, 새우, 오징어). 오늘 맛본 것은 옛 바오싼양이다. 위에 언급한 이 식당의 원류 동싱러우의 시그니처 메뉴가 바오싼양이다. 그곳 출신들이 만들어내었기에 분명 완성도가 높아 보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샤오야오를 비롯한 콩팥이나 내장은 즐겨먹는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에 제대로 음미하지 못해 아쉬웠다.
중국요리 중에 내장과 함께 손이 잘 가지 않는 재료가 민물생선이다. 그래도 가장 바다 생선의 탱글한 육질에 가깝고 비린내가 적은 것이 바로 쏘가리이다. 쏘가리를 조리하는 방법 또한 다양한데 쑤저우나 난징 등에서는 살을 정교하게 칼집을 내고 탕수소스를 부은 송슈구이위松鼠桂鱼 가 유명하다. 오늘의 쏘가리 요리는 역시나 간장을 애용하는 산동답게 간장소스로 조리했다(지금은 중국 전체 간장 생산의 절반을 광동성이 담당하지만 산동성도 여전히 TOP5에 든다). 진한 간장과 마늘이 비린내를 잡아주어 정말 바다 생선 같은 식감을 안겨준다.
조리법 바오爆가 드디어 빛을 발했다. 국적불문 베지테리언이 아닌 이상 좋아하는 닭고기와, 견과류 알레르기가 없다면 좋아하는 호두를 간장소스로 달큼하게 폭발적으로 볶아내었으니 안 좋아할 도리가 없다. 위의 두 간장 형제들과 함께 등장하는 바람에 약간 물릴 위기였으나 재료의 힘으로 극복해냈다. 맥주와도 충분히 어울리는 조합이다.
오늘 가장 논란이 된 대창 요리. 돼지 대창을 물에 데쳐 기름에 살짝 튀겨 낸 뒤 한입 크기로 잘라 십여 가지의 재료로 만든 소스를 부어 완성한다. 문제는 이 '한입' 크기인데 곱창, 막창 요리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선 굉장히 부담되는 크기이다. 한국에서 창자는 주로 쫄깃한 식감과 잡내를 이기는 매운맛이나 구운 조리법으로 잘게 잘라 즐긴다. '한입'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 음식을 입에 물었을 때 입안을 가득 채우는 창자의 사이즈는 오감을 자극하는 풍미는 인정하게 하면서도 지금까지의 관념에 배치되어 쉽게 소화활동을 하기 어렵게 한다. 칼을 달라 하여 조금씩 맛보길 권한다. 참고로 이 지우좐다창九转大肠이라는 음식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청나라 광서제 때, 산동 지난의 九华楼라는 식당에서 만든 요리이다. 원래 이름은 홍샤오다창红烧大肠 이었다. 어느 날 연회 상에서 문인들이 이 음식을 맛본 후 특별한 맛에 반하여 식당 이름의 "九"자와 요리사들이 오랜 기간 기술 연마를 거듭하여(九炼)이 맛을 만들어 낸 것을 칭찬하며 九转大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출처: 바이두 백과사전)
베이징에서 이 지역 요리를 많이 먹어보면서도 그 원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한강의 시작은 강원도이나 수도 서울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이치일 것이다. 발원지인 상류의 옹달샘 물맛을 찾듯 베이징 요리들의 원래 모습과 근원인 산동요리를 제대로 느껴보기에 좋은 장소이다. 더구나 미슐랭 식당을 이렇게 저렴하게(일인당 2만 원 내외) 즐길 수 있기란 정말 쉽지 않다.
본 고장 산동 외에서 가장 현지의 맛을 가깝게 구현했으리라 생각되는 추이화러우를 추천한다.
위치: 北京市东城区崇文门外大街3号新世界一期二层北端
전화: 010)67062320 다종디앤핑 앱으로 예약하는 것이 편하다(룸은 15% 서비스료 발생)
영업시간: 10:00~21:30
예상금액: 약 140위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