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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Jan 10. 2021

중국의 김치 원조 논란

리즈치의 김치 영상 관련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투버인 리즈치(李子柒, Li Ziqi)가 2021년 1월 9일 올린 영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름 아닌 '김치'가 소재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Life Series'라는 주제로 자연에서 얻는 다양한 먹거리의 활용을 소개해왔는데 시리즈의 마지막 동영상으로 무를 다루며 김치와 김치찌개가 등장했다.

 "The last episode of the “Life Series”: The life of white radish!一生系列产品最后一个视频——萝卜的一生)" https://youtu.be/B6bJ_vTslyo

 영상에서 김치를 만드는 장면은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배추를 다듬고 소금에 절이고 배춧잎 사이마다 김치 속을 채워 넣어 항아리에 차곡히 쌓아 올린 후 숙성을 시킨다(그동안 먹거리들을 만드는 과정에 굉장한 디테일을 보여줬던 리즈치가 이 김치 속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생략한 점은 생각해볼 부분이다). 중국식 소시지인 라창(腊肠)으로 삼겹살 또는 목살을 대신하여 냄비에 볶은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낸 익은 김치를 넣어 김치찌개도 만들어낸다. 

 음식은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여 맛보고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영상 자체의 내용과 소재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상이 올라온 시기와 인플루언서로의 그녀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을 듯하다. 


 리즈치의 유튜브 팔로워 수는 1,400만 명이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이다. 2021년 1월 현재 기준 전 세계에서 407위에 해당되고 제니퍼 로페즈, 비욘세, 애플보다 많은 팔로워를 거느렸다. 한국으로 대입해보면 빅뱅, 트와이스를 제치고 12위에 오를 수 있다. 2015년부터 쓰촨성 고향의 소박한 일상과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면서 몇 년 사이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중국인 유투버가 되었다.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그녀의 영상을 통해 중국의 깨끗한 자연과 신기로운 식문화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정작 중국 현지에서는 중국의 낙후된 환경을 보여주며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다는 여론이 일었다. 수십 년 간 성장 가도를 바삐 달려왔고 막강한 국력을 과시하는데 몰두하던 중국인들이 보기에 익숙지 않은 기현상이 생긴데 대해 의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철저하게 실용적이 아니던가. 논란 직후 2017년 즈음부터 중국 관영 CCTV와 인민일보에서 일제히 그녀를 지지하고 나섰다.

리즈치는 영상을 통해 중국 전통문화를 다루며 전 세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을 더 사랑하고 이해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지혜롭고 아름다운 개척자이다.

 중국에서 관영언론이 움직인다는 것은 곧 당의 의도가 표출된다는 것이다. 공산당이 리즈치가 전 세계에 미치는 파급력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여러 이유일 것이다. 

 첫째, 그녀의 채널을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자기 체제하에 규제와 감시망이 구축된 국내의 웨이보, 위챗, 틱톡 등과는 달리 국외의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생산되는 컨텐츠와 이슈는 통제 불능이다. 리즈치와 같은 막강한 채널에서 전달되는 내용이 자칫 국가 이미지나 체제에 부정적인 요소로 변질될 리스크를 미리 차단하고자 함이다. 

 둘째, 그녀의 채널을 활용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해외 여론과 홍보사업에 관하여 여태까지 거대하고 화려한 발전상을 널리 알리는데 많은 자본을 투입해왔다. 하지만 리즈치를 통하여 새로운 각도의 소프트파워를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의 아리랑과 비슷한 역할을 하며 그 많은 인력과 돈이 들어가는 CCTV의 영어방송채널 CGTN의 유튜브 팔로워 수는 200만 명으로 리즈치 1명의 7분의 1이다. 이보다 가성비 좋고 효율적인 중국 선전 플랫폼은 없다.

 리즈치는 2020년 8월, 중국 공산당 산하 중국청년연합회 위원으로 당선되었다.


 2020년 11월부터 중국의 절임채소 '파오차이'의 국제표준 ISO 인증을 둘러싸고 한중 언론의 난타전이 벌어졌다. 사실은 국내 일부 언론의 가짜 뉴스로 촉발된 이슈이다. 파오차이가 인증을 받은 것인데 김치 종주국의 지위를 도둑맞은 치욕으로 부풀리면서 일이 커졌다. 중국에서 보통 파오차이라 하면 절임채소를 일컫는 말이고 김치도 같은 범주 내에서 통칭된다(일상에서는 맵다는 '辣'를 붙여 '라바이차이'라고도 함). 이 파오차이(Paocai)가 중국 절임채소와 김치 모두를 포함하여 부른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영문 기사를 구글 번역 돌려서 오보를 낸 것인지, 알면서 의도적으로 중국 혐오를 만들어 낸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결국 한국의 농림수산식품부까지 나서 김치와 파오차이는 완전히 다르다는 해명까지 내야 했으니 어떠한 경우이든 해당 기자(?)나 특파원들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중국 언론까지 보도했던 이런 해프닝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쓰촨성의 리즈치가 김치를 만든 시점이 미묘하다(공교롭게도 중국 절임채소의 고장이 쓰촨성이다). 내부 문서가 있다 해도 공개되지 않으니 가설일 수밖에 없지만 리즈치의 김치는 의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가설이 맞다면 그 주체는 공산당일 것이다. 파오차이 인증이 이렇게까지 논란이 될지는 몰랐겠지만 적어도 중국으로선 유용한 힌트가 되었을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플랫폼을 통해 김치를 내보 내보자, 적어도 수천만명의 외국인들이 친근하고 익숙한 중국인이 만드는 김치를 목도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의도가 있었을 때는 분명 한국의 반응이 계산에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영상의 댓글에서 각 나라 시청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름다운 영상미에 매료된 제3국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했던 김치를 둘러싸고 양국 유저들이 뒤섞인 논쟁을 목격하기도 하고 중국의 입장에 찬동하기도 한다. 적어도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득이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들, 특히 정부나 당이 개입한 일들이 대개 그렇듯 더구나 외국인의 입장에서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리즈치의 김치도 그렇다. 다만 과거의 경험과 현장의 이해로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현상을 이해하려 노력할 뿐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안타까운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원래 태생의 목적이 그러한 환구시보는 차치하고, 의도에 휘말리거나 이용하려는 국내 언론의 자세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속이는 사람보다 속는 사람이 더 나쁘다." 지금의 언론은 속는 것을 넘어 일부러 속아주기도 하니 국익에 더욱 해가 된다. 

 두 번째는 우리 것을 지키고자 함에 대한 대응 방식이다. 이슈가 생기면 흥분하고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들고일어나는 행태를 지양했으면 좋겠다. 일이 더 커질 뿐이다. 2001년에 이미 김치 국제인증을 받아놨듯이 평소에 차근차근 조용히 챙기면 된다. 그래도 BTS, 블랙핑크의 세계적 인기는 리즈치를 단연 압도한다. 중국이 아무리 부러워하고 아시아의 영웅이라고 발을 담그고 자기 위안을 삼아도 손흥민은 한국인이다. 

 김치도 한국이 만들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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