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게으름_ ep11
“뭐? 여기서 뮌헨이 두 시간 밖에 안걸린다고?”
그랬다. 독일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잘츠부르크에서 뮌헨은 단 두 시간 거리였다. 대학시절 인천에서 서울로 편도 두 시간 왕복 네 시간 통학을 해본 유경험자로서, 친구들을 만날 때면 집에서 한 시간이나 걸리는 홍대가 가까운 곳이라 여기는 수도권 시민으로서 두 시간이면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은 꽤나 매력적으로 들렸다. 더군다나 잘츠부르크와 독일 사이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바이에른 티켓을 구입하면 23유로, 한국 돈으로 약 30,000원에 국경을 넘나들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을 수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섬에 갇혀 사는 나에게는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만 같았다. 물론 잘츠부르크도 오래 머물며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지만 꼬박 이틀을 잘츠부르크에서 보내고 나니 볼만한 것은 이미 다 본 것 같았다. 참고로 오스트리아 여행의 테마는 첫째도 힐링, 둘째도 힐링이었다.
무튼 나는 점심을 먹고 오후 1시가 넘어 뮌헨에 가기로 급 결정했다. 그리고 무작정 잘츠부르크 중앙역으로 향했다. 3시에 뮌헨가는 열차가 있었다.
‘3시에 출발하면 5시즘 도착하겠지? 그럼 거기에서 저녁을 먹고 8시나 9시즘 오면 되겠다.’
뮌헨에서 3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여행 안에서 즉흥적인 또 다른 여행을 한다는 것이 뭔가 멋있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역시. 이런게 혼자하는 여행의 묘미지.’
룰루 랄라. 그렇게 뮌헨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는 쉴 틈 없이 달렸고, 내 여행에 날개를 달아준 유심으로 뮌헨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사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3시간 밖에 없었으므로 딱히 뭔가를 하거나, 대단한 것을 본다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그래 많은 것을 보려고 욕심내지 말자. 일단 가장 번화가처럼 보이는 곳이 마리엔 플랏츠니깐 거기로 가자. 모든 길은 통하니까 거기가서 다른 곳도 둘러보지 뭐.’ 다시말하지만 내 여행의 테마는 첫째도 힐링, 둘째도 힐링이었다.
어느새 큰 목적 없이 탄 뮌헨행 열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시 두 시간 동안 기차를 타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설렘을 가득 안은 채로 중앙역에 내린 나는 유일한 목적지인 마리엔 플랏츠로 갈 길을 찾기 위해 나의 No.1 여행 동반자, 구글 맵을 켰다. 그 순간! 띠로리~ 뮌헨은 비록 잘츠부르크에서 두 시간 거리이지만, 우리 집에서 강남까지 가는 것과 같은 시간이 걸렸을 뿐이지만, 명.백.히. 다른 나라였다. 당연히 오스트리아에서 산 유심이 작동할리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어디에나 있는 법! 적지 않은 여행을 통해 습득한 스킬 중 하나인 카페 와이파이 이용하기 기술을 이용할 때였다. 그렇게 스타벅스 와이파이 절도범이 되어 겨우 구글 맵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역시나 구글 맵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유일한 목적지인 마리엔 플랏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용한 소도시인 잘츠부르크와는 다르게 큼직큼직한 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큰 상점들, 압도적 크기의 건물들은 나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와, 역시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안 왔으면 어쩔 뻔 했어. 진짜 좋다.’
특히 뮌헨 신시청이 보이자 내 심장은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게 바로 유럽이지!!’
대도시의 번화함과 신시청사의 화려함에 한껏 취한 나는 어느새 시청이 보이는 노천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맥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 붓고 있었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임을 망각한 채로.
‘그래 역시 술은 분위기로 마시는 거지. 캬. 뮌헨의 눈동자에 건배. Cheers.’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그저 가만히 시청사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다. 그렇게 맥주 한 잔을 다 비워갈 때 쯤, 해가 지기 시작했다.
‘헉. 벌써 8시잖아!’
그랬다. 귀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저 신시청사의 아름다움에 조금 취했을 뿐인데, 노천 카페에 앉아 햄버거와 맥주를 한잔 했을 뿐인데 귀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잘츠부르크가 안전한 시골 마을이라지만, 아무리 태권도 1단 소지자라지만, 여자 혼자 밤 늦게 다니는 일에는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떠나기에 뮌헨의 밤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 딱 1시간만 더 있다 가자!’
나는 바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신시청사에서 정처 없이 발길 가는대로 마구 걸었다. 그리고 멋있어 보이는 건물들은 모두 사진으로 담았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그냥 멋있어 보이는 것들은 모조리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 쫓기듯 9시 기차를 타기위해 뮌헨 중앙역으로 향했다. 짧은 만남, 긴 여운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 듯 했다. 그렇게 다음에 또 오겠다는 짤막한 인사를 남긴 채 뮌헨을 떠났다.
그리고 밤 11시 무렵 숙소에 도착했다. 밤 늦게 들어온 나를 보며, 사람들이 물었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뮌... 뮌...헨이요 헤헷 ^^;;”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못했다.
“독일 뮌헨이요?”
“독일 말하는거 맞죠?”
“아까 점심때 잠깐 숙소에 오지 않으셨어요?”
분명 점심 때 나를 숙소에서 봤는데 아침 일찍도 아니고, 점심 늦게 뮌헨으로 출발했다는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와 정말 대단하세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괜히 우쭐해진 나는 별거 없는 뮌헨 여행기를 대단한 모험기라도 되는 듯 술술 풀어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팩트 폭행을 날린 이가 있었으니.
“그럼 뮌헨에서 총 네 시간 정도 있다 오신거죠? 그 네 시간을 위해 왕복 네 시간을 기차에서 보낸 거고요.”
허를 찌른 코멘트였다. 네 시간을 위해 왕복 네 시간을 쓰다니. 듣고 보니 이보다 더 비효율적인 여행은 없어보였다. 가능하다면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침착해. 침착해.'
일단 내 뮌헨행의 흠이 더 부각되기 전에 어서 화제를 넘겨야 했다.
“다른 분들은 오늘 어디 다녀오셨어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여행담을 풀어 놓았다.
“저는 장크트 길겐에 다녀왔어요. 정말 아름다운 마을이더라고요.”
“저는 헬브룬 궁전에 갔는데요. 투어를 했는데 막 물을 뿌려주더라고요.”
“엇. 저도 그거 어제 했는데! 재밌었죠?!”
“저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를 했어요.”
‘뭐야. 나는 왜 저런거 몰랐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도시는 이미 다 봤기 때문에 더는 볼 것이 없다 생각한 것이 얼마나 큰 자만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여행 책자에 나온 주요 관광지만 봤다고 이 도시를 다 안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이 도시의 볼거리를 과소평가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동시에 이 도시만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채 다음 날 떠나야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랬다. 가진 것에 대한 고찰 보다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나의 성격이 여행에도 투영된 것이다. 어쨋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눈 또 다른 다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에 잘츠부르크에 한 번 더 와야겠군. 아차차. 맥주만 먹다 허둥지둥 떠나야했던 뮌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