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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사진관 Jan 11. 2019

에필로그_ 아마추어 사진관

일요일의 게으름 _ 에필로그 

런던, 옥스퍼드, 바스, 브라이튼, 본머스, 파리, 아스뚜리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비엔나, 잘츠브루크, 프라하, 뮌헨, 도쿄, 홍콩, 마카오, 괌,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골드코스트, 크라이스트처치, 퀸즈타운, 방콕, 베이징.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14개국 약 28개 도시를 여행하며 찍어온 사진이 10000장은 족히 넘는다.     

‘이번 주말에는 꼭 여행 사진 정리해야지.’

‘이번 방학 때는 여행 사진들을 모아서 꼭 포토북을 만들어야지.’     


사진들로 넘쳐나는 외장 하드를 보며 매일 같은 다짐을 했지만 몇 년째 작심삼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 독립 출판 축제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내가 찍은 사진들을 엽서로 만들어서 독립 출판 축제에 참가해 보면 어떨까?’     


이 기회를 핑계 삼아 사진 정리를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어쩌면 나의 막연한 꿈이었던 사진전에 대한 예행연습이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첫 엽서전 준비가 시작되었다.     


사실 전부터 이름 없이 표류하고 있는 내 사진들을 아우를 수 있는 이름을 하나 정하고 싶었고 고민 끝에 ‘아마추어 사진관’이라는 이름을 지어두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아마추어라는 말은 사람에 붙어야 어울리는 말인데 사진관이라는 말에 붙어서 어색하다며 지극히 학문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나는 시적허용이라며 이를 반박하고 아마추어 사진관이라는 이름을 밀어붙였다. 어쨌든 나는 아마추어 사진관이라는 이름하에 첫 작은 전시회 준비에 돌입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이런 의미겠군.’     


무수한 사진 중에 내 나름 A컷을 선별해 보겠다며 큰맘 먹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비슷한 사진은 왜 이리 많고, 다들 각자만의 아름다움을 어찌나 외쳐대는지. 결국 A컷이라고 만들어 둔 폴더에는 처음 사진 폴더와 비교했을 때 정리를 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진이 쌓이게 되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의 인고의 작업 끝에 나의 작은 전시회가 시작되었다. 말이 전시회이지 사실 그냥 준비된 오픈 부스를 꾸미고 옆에 이젤 하나를 세워 엽서를 전시하는 게 다였다.     



‘내 엽서를 살 사람이 있을까?’     


준비하는데 초기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적자를 감수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저 내 작품이 얼마나 상품 가치가 있고, 얼마나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부스를 꾸며 놓고 떨리는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공사장 인부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뚜벅뚜벅 내 부스로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내 부스로 인해 공사에 방해가 되어 항의하러 오신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무슨 일이지? 나 잘못한 것 없는데.’     


군데군데 흙먼지가 묻어있는 남루한 차림의 아저씨는 험상궂은 얼굴로 나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가씨. 이것들은 다 뭐요?”     


예상외의 질문이었다. 나는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고. 부럽네.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그런데 왜 아마추어 사진관이요?”

“아 제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여서…. 아마추어 사진관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이게 무슨 아마추어요. 프로 같구먼. 그래서 여기 있는 이 엽서들을 판다는 말이지? 잠시만 내 점심 먹고 다시 오리다.”     


‘점심 먹고 다시 오리다. 참 좋은 거절이네.’     


나는 아저씨의 마지막 말을 단지 좋은 거절이자, 작별 인사쯤으로 받아들였다. 왠지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내 엽서를 살 리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분이 지났을까? 거짓말처럼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내가 오늘 동창회에 가거든.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데 네 장만 골라 줄 수 있겠소? 여기 이 엽서는 제외하고.”     

아저씨가 제외해 달라고 한 엽서는 샌디에이고의 키스 동상을 찍은 엽서였다. 아무래도 어르신 눈에는 남사스러웠던 모양이다. 나는 나이든 어른의 눈으로 내 엽서를 찬찬히 살폈다.     


“여기는 방콕인데요. 야경이 너무 예쁘죠? 친구분들이 이거 좋아하실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엽서는 런던의 국회의사당을 담고 있는데 이것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음…. 그리고…. 또….”     

아저씨의 취향은 나름 확고했다.     


“흑백은 말고, 화려한 거로.”     


그렇게 네 장의 엽서 선별이 끝났고, 아저씨는 한마디 덧붙이셨다.     


“이거 다 해서 그냥 이천 원에 주면 안 되나?”     


한 장에 천 원인 엽서를 네 장에 이천 원에 달라니. 반값을 그냥 후려치다니!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나에게 프로 같다는 칭찬을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데, 친구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다는 아저씨의 마음이 너무나도 따스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아저씨의 차림새를 보고 엽서를 살 리 없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쥐구멍으로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졌다.     


이 세상 누구든 사진을 볼 수 있는 두 눈과 아마추어의 작품이라도 기꺼이 감상하겠다는 열린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인데 왜 나는 아저씨의 옷차림새만으로 내 엽서를 살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내 사진이 유럽 어느 왕궁 한켠에서 위용을 뽐내며 왕족들에게만 감상하는 것이 허락된 엄청난 예술 작품쯤 이라도 된다고 생각했던 건가? 괜히 아저씨께 미안해졌다.     


“물론이죠. 네 장에 이천 원에 드릴게요.”

“그럼 이거 하나씩 그 비닐에 좀 넣어줘요. 선물할 거니까. 예쁘게.”

“아저씨 사실 아저씨가 제 첫 손님이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친구분들과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렇게 나는 할인된 가격으로 아저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내 멋대로 퉁치려 했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듯 미안한 마음도 그깟 돈 몇 푼으로 사라질 리 없었다.     


아저씨의 손에 곱게 쥐어진 네 장의 엽서가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엽서를 선물 받은 사람들은 엽서를 볼 때마다 아저씨를 떠올리며 웃음 지을 것이다. 그리고 내 엽서가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담은, 웃음을 전해 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부지런히, 비록 게으른 사람이지만 부지런히,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사진을 찍을 것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내 사진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갈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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