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같은 동네 옆 건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이삿짐을 줄이기 위해 많은 양의 물건을 팔아치웠다. 중고거래를 위해 택배를 부칠 경황도 없었고 그냥 근처에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와서 저렴하게 들고 가 주길 바랬다. 그때 처음 당근마켓을 알게 되었고, 매우 알차게 이용했다ㅋㅋ
당근마켓은 '당(신) 근(처의) 마켓'의 줄임말로, 같은 동네에 사는 중고 물품 판매자와 구매자의 오프라인 거래를 연결시켜주는 앱이다. 특히 중고거래 시 신뢰할 수 있는 거래자들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냐는 서비스의 꽤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당근마켓은 위치 기반으로 동네 주민끼리 연결해주며 그들 간 신뢰 거래를 지향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고 거래를 넘어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담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연결 지점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여 정 넘치는 지역 거래 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당근마켓은 2015년 출시 이후 3년 만에 월 이용자 180만 명 달성할 정도로 고속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당근마켓의 사용법은 간단하다. 나의 현재 위치를 기반으로 우리 동네가 설정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올린 다양한 물품 리스트를 볼 수 있다. 원하는 물건의 상세한 정보를 확인한 후, '채팅으로 거래하기' 버튼을 통해 대화를 나누며 날짜와 장소를 정해 직거래한다. 거래 후 상대방의 매너를 평가하게 되고, 결과가 반영되어 프로필에서 '매너온도' 및 '리뷰'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위치 정보'와 함께 신뢰할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지표로 작용한다.
다른 중고거래 앱들(중고나라, 번개장터 등)은 '효율적인 중고거래'를 위한 기능들에 집중하고 있다. 다양한 결제 수단을 앱 자체에 포함시켜 직거래뿐만 아닌 택배 거래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거나, 과거 거래 내역을 명확하게 표시하며 판매자의 신뢰 기준을 형성한다.
반면, 당근마켓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연결시키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 당근마켓 내 '중고거래'도, 사실은 메인이라기보다 사람 간 연결이 필요한 여러 니즈 중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졌다. 이 예상은 잠시 후 설명할 '동네생활'탭을 통해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동네 사람들끼리는 택배거래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직접 거래하며 느끼는 신뢰감이 훨씬 간편하고 좋다. 오며 가며 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사기 매물도 적고, 거래 성사율도 좋으며, 부담이 적어서인지 정말 소소한 물건들이 올라온다. '부추'를 어느 중고거래 앱에서 볼 수 있을까..?ㅋ매물들을 보면 막 찍어 올리는 것도 많다ㅋㅋ근데도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가치를 이용한 당근마켓만의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당근마켓에 눈 여겨볼 만한 큰 업데이트가 있었다. 바로 '동네생활'이라는 탭이다. 여기에서 중고거래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관심 주제보기'를 탭 하면 동네 맛집, 카페부터 요리, 인테리어, 아이들 돌보기, 어르신 돌보기 등 여러 주제들이 쏟아진다. 이를 통해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주제들을 공유하는 공간임을 알 수 있다.
평소 외부 커뮤니티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친구들을 만나 교류하는 것을 즐기는 나다. 이들 중엔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근처에 있었는데 조금 더 쉽게 알 방법은 없을까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언젠간 이 당근마켓이라는 플랫폼에서 바로 근처에서 가치 있는 관계를 맺어나가는 게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세대주택에 살고 있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집 밖을 나가려다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면 오히려 조금 기다렸다가 나가며 마주치는 것을 꺼릴 정도..ㅎ 각자 단절된 영역에서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개인주의적, #Untact, #혼술 등의 키워드가 난무하는 요즘 좀처럼 예측하기 쉽지 않은 가치였을텐데, 문득 나도 몰랐던 마음 깊은 곳 갈증을 깨달았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월평균 실행 횟수 및 페이지뷰가 가장 많았던 앱은 ‘당근 마켓(85.2회)’. 평균 체류시간의 경우 앱 부문에서는 ‘당근마켓(264.1분)’"을 기록하며 “중고 거래를 위해 사용하지만, 판매하는 물품들을 통해 동네 사람의 일상을 보는 재미 때문인지 체류 시간이 길다”는 피드백을 받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례로는 어떤 판매자가 과실주를 담그는 병을 팔았는데, 구매자가 고맙다며 귤이랑 배추, 무를 줬다고 하더라. “이웃끼리 만나서 거래하다 보니 서로 덤으로 물건을 더 얹어준다는 훈훈한 사례도 많다”
그렇다, 당근마켓은 확실히 다른 노선을 타고 있었다.
만약 당근마켓이 ‘중고 거래’라는 컨셉 자체에만 집중했다면 Multi-Homing(사용자가 동시에 여러 플랫폼을 사용하는)의 위험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엔 중고나라와 당근마켓 둘 다에 중고물품을 올리고 더 빨리 입질(?)이 오는 곳에 판매를 했었다. 근데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어차피 안 쓰는 물건이라 남에게 줄 때, 생판 모르는 남에게 주는 것보다는 가족이나 친구, 회사 사람들에게 먼저 물어보게 되는 그런 심리? 심적으로 조금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거래해야 서로가 덜 피곤하다. 누군지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중고거래 시 발생하는 경계하고 탐색하는 시간을 줄여줄 수 있거든. 이런 심리가 깔린 당근마켓에선 쿨거래 확률도 높았다.
이밖에 동네 사람들 간 연결의 가치는 다양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데,
중고 거래 물품 중 무거운 것들은 동네 용달 업체를 연결시켜주는가 하면, 과거 ‘강원 산불’ 사태 때 중고물품을 구호물품으로 보내는 따뜻한 캠페인도 실시하며 그 가치를 전달했다.
다른 중고거래 서비스에 비해 다소 한정적인 ‘오프라인 거래’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오프라인’에서 비롯되는 가치들을 잘 조합하여 당근마켓만의 차별화된 생태계를 구축하여 사용자를 홀리고(?) 있는 듯하다. 이때 동네 주민끼리만 거래할 수 있는 물건들은 일종의 Unique inventory인 셈이다.
어쩔 수 없는 동네빨
다행히 내가 사는 동네엔 당근마켓이 꽤 활성화되어 있어 물건도 많이 올라오고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지인에게 물어보니 그쪽 동네는 활발하지 않아 그냥 중고나라에 팔아버렸다고 한다. 동네마다 편차가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말한 가치들이 잘 전달되려면 기본적으로 많은 동네 사람들이 써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당근마켓에선 사용자를 더 끌어들이기 위해 지인을 초대하면 스타벅스를 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의 입장에서 활발하게 이용하려면 우리 동네 사람들이 많이 가입해야 하는데, 그냥 학교에서, 회사에서 만나는 나의 지인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도 하고, 지나며 자주 보는 이웃 주민 연락처를 알 리가 없다. 차라리 이런 프로모션보다는 위치 기반 광고를 통한 마케팅을 진행하는게 훨씬 좋을 것 같다. '000님이 살고 있는 송파동 주민 10,540명이 가입했어요!' 라는 phrase와 함께?
생각보다 넓은 동네
과거 중고 거래 시에는 경계심이 많아 사람 많은 지하철 출입구에서 주로 거래했는데, 당근마켓으로 거래할 땐 거의 집 앞까지 와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었다. 물건이 너무 무겁기도 했지만, 거래를 조금 더 편하게 해도 된다는 안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처음 기대했던 건 정말 동네 사람이라서 동네에서 유명한 카페 앞에서 만나자고 하면 알 줄 알았는데, 자기는 모른다고 했다. '송리단길 근처에 살아요', '송리단길이 뭐예요?' 이런 경우..? 그때 느끼는 읭스러움이란.. 그 순간 '우리' 동네 사람이고 '주변'사람이라는 생각이 조금 덜해졌던 것 같다. '00동'이라는 게 생각보다 넓구나 생각했다.
분석을 하며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당근마켓의 가치이지만, 사실 이런 분석 이전에 한 사용자의 입장에선 그 가치가 덜 느껴졌던 것 같다. 사용자가 당근마켓의 가치에 더 잘 공감할 수 있을만한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기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신 근처의 마켓' 그 본질에 조금 더 집중하여 '동' 보다 더 가까운 '동네'로 거래 범위를 좁힐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예를 들어 반경 500미터 접속자의 구분하여 볼 수 있게 한다면, 정말 근처에 사는 사람들과의 연결이 가능해지고 그에 따른 활발한 사용자 간 인터렉션이 발생하지 않을까?
예로써 내가 사는 동네엔 1인 가정이나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 등 소수의 가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세대가 많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에도 배달 가능한 최소 금액을 맞추기 위해 불필요한 디저트를 추가로 주문하거나,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대량(사실 아주 대량도 아니다 5-6개 묶음?)으로 저렴하게 샀다가 다 못 먹고 상해버린 적이 많았다. 내 양파.. 내 아보카도.. 이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정말 근처의 사람들을 연결시켜준다면 아래와 같은 시나리오도 가능하지 않을까?
위에서 은근슬쩍 추가로 제안한 부분은 다대다 채팅 거래 기능이다ㅋㅋ 기존에 거래를 위한 1대 1 연결에서 나아가 다수를 연결해줄 수 있다면, 불편한 댓글이나 따로 플랫폼을 이탈하지 않고도 구매대행 품앗이나 원데이 클래스, 독서 모임 등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파헤칠수록 앱 전반에서 느껴지는 '동네 주민들을 연결해주겠다'는 긍정적 가치는 개인적으로 정말 흥미로웠다. 그래서인지 이번 포스팅은 유독 앱을 해석하는 부분에 더욱 편중되어 버렸지만 ^^; 물론 이를 악용하거나 반대로 신뢰를 저하시키는 요소가 발생한다면 이건 또다른 숙제겠지만, 밀고 싶었던 가치에 조금 더 집중하며 상쇄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가는게 중요할 듯 하다. 앞으로도 당근 마켓이 추구하는 가치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능들을 제공하여, 더 많은 사용자들이 이에 공감하고 잘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근이가 이렇게 써보세요, 저렇게 써보세요 가이드 주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아 참고로 최근에 추가된 동네생활 탭은 개인적으로 정말 센세이셔널했다ㅋㅋ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조금 더 분명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