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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빡쌤 Jun 05. 2024

리나야, 머리에 있는 이 상처 뭐니?

"제가요. 제가요"

리나는 우즈베키스탄인 11살 여자 아이다. 

엄마, 아빠도 우즈베키스탄인이고 우리말이 서툴다.

리나는  눈도 크고 얼굴도 하얀 예쁜 아이다. 체격은 중간이지만 몸이 다부지다. 

귀여운 장난감이나 스티커를 좋아해서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과 모여서 항상 뭔가를 만든다. 

풀칠도 하고 가위질도 하고 색칠도 하느라 리나의 책상 위는 항상 어질러져 있다. 


하지만 수업 시간이 되면 종이  리나의 얼굴과 자세가 완전히 달라져버린다. 

밟게 웃던 표정은 사라지고 태엽이 풀린 인형처럼 큰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군다.

거의 5분 안에 모드가 바뀌어 버리는 듯하다. 


쉬는 시간 리나와 수업시간 리나 2명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리나야, 일어나야지. 여기 보세요." 그때뿐이었다. 

'그래, 한국말을 이해 못 하면 저럴 수 있겠다.'


시간이 갈수록 리나는 수업태도가 더욱 안 좋아졌다. 

자는 것이 일상이 되어갔고 4월이 되면서 결석이나 지각도 잦아졌다.


리나 아파요. 학교 못 가요. 

한 두 번은 "네, 알겠습니다."라고 단순하게 응답을 했지만 리나를 불렀다. 

"리나야 너 어제 어디 아팠어?" 

리나는'배'라는 단어를 희미하게 말하며 아픈 표정을 짓기도 하고 안 하던 기침도 내게 해 보였다. 

앞으로 리나가 등교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아질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확신까지 들었다.


리나 아빠에게 전화가 오면 단호하게 말해야겠다.

리나에게 수학 문제를 가르쳐 주다가 리나의 머리카락에 사이에 붉은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50원 동전 크기의 붉은 상처가 3군데  보였다. 


리나야, 이 머리 상처 어떻게 해서 생긴 거야?

리나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저으면서 두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흔들리는 눈빛과 동요하는 몸의 움직임이 과하게 느껴졌다. 

"누가 너 머리 당겼니?" 

더 큰 제스처로 자신을 다시 한번 가리켰다.  


그렇다고 아빠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한 주가 흘러 또 아침에 리나가 결석을 했다. 

리나의 부모님은 결석을 내게 알리지도 않았고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아동학대 관련 뉴스들이 내 머릿속에서 생산되어 갔다.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아이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는다면 어떡하지? 

금요일 오늘 내가 못 만나면 토일 동안 또 확인을 하기가 어렵고.... '

온갖 생각들이 스쳐갔다. 


아이를 직접 보고 괜찮은지 직접 보아야만 했다. 

쉬는 시간 리나의 집을 아는 시우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리나의 집은 학교 후문과 3분 거리였다. 70평 크기 정도의 진흙 더미 같은 밭에 샛길을 걸어갔다. 

샛길 끝에는 허름한 2층 주택이 보였다. 리나의 집은 2층이었다. 

아래에서 봤을 때 창문에 비친 잡다한 물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선풍기가 2대, 여러 상자들이 모양이 흐트러진 채 안쪽 창문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2층 현관문 앞에는 초인종이 없었는데 신기하게 계단옆에 큰 열쇠가 놓여 있었다. 

누가 봐도 이 열쇠는 현관문 열쇠다. 


계단 옆에 아무렇게나 놓인 열쇠가 마치 지금 현재 리나의 상황을 내게 알려주는 듯 했다.

"리나야, 리나야! "를  부르고 또 불렀다. 

아무 반응이나 움직임이 없었다.

10시 30분이 넘어서야 리나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리나 오늘 아파서 학교 못 가요." 
"리나 아버님, 학교에 아파서 결석을 하면 어디가 아픈지 담임교사가 확인을 해야 합니다. 
"리나 어디가 아픈가요?" 
"리나, 배 아파요." 
"아버님, 병원 가셔서 진찰받고 병원봉투나 병원 다녀온 후 서류 사진 찍어서 보내주세요."


결국 병원을 가지 않았고 리나는 월요일 등교했다. 

뭔가 이상했다. 머리가... 어깨만큼 내려오는 길이였는데 귀 밑으로 울퉁불퉁 마구 잘려 있었다. 

윗 머리는 더 심각했다. 

어른 손으로 한 움큼 들어서 자른 모양이다. 이마 위 머리카락이 잔디밭 마냥 짧게 잘려 있었다.

상담교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의 생각을 끌어내봐 줬음 한다고 전달했다. 

그리고 머리 상처와 잘린 머리, 팔 뚝에 있는 상처 2군데도 봐달라고 했다. 


상담교사는 리나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리고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상처를 보건교사에게 보여줬더니 두피에 난 상처는 머리를 강하게 잡아당겨 상처가 난 것 같다고 하였다. 


교육청에 문의를 했더니 러시아권 사람들이 아이 훈육을 할 때 체벌도 하고 강하게 한다고 한다. 

부모에게 전화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라고 한다. 


고민이 되었다. 

"아이 상처 난 거 부모님이 하셨죠? 그러시면 안 됩니다." 이럴까? 정말 묻고 싶었다. 아니 따지고 싶었다.


(전화를 했다)


"아버님, 오늘 미나 건강하게 온 거 보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미나 건강을 체크하다 머리에 상처가 3군데 보이고 팔에도 긁힌 흔적 같은 것들이 보입니다." (..... 조용)



"한국에서는 아이 몸에 상처가 보이면 어떻게 다쳤는지 알아보고 

지속적으로 아이 건강을 살펴보도록 되어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리나 머리에 상처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더 붉게 보이네요.

머리카락도 그냥 잘라버렸네요.  

앞으로 미나 다친 곳이 있는지, 상처가 나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아이 몸에 상처가 계속 생기면 

경찰에 신고를 할 예정입니다. 

리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학교 잘 등교할 수 있도록 살펴봐 주세요."


"결석하면 병원 다녀오셔야 되는데 이모님 말씀으로는 

우리나라(우즈베키스탄)에서는 병원 안 가고 약 먹고 쉰다고 하셨잖아요. 

우리나라(대한민국)에서는 결석하면 서류가 필요합니다. 병원 꼭 데리고 가시고요. "


리나가 또 아프면
저와 교감선생님이 아이 건강상태를 살펴보러 집으로 가겠습니다.


이후, 리나는 결석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머리도 한 달이 안 되었지만 잘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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